독서노트 (76) 썸네일형 리스트형 모리스 블랑쇼 <문학의 공간> 중 카프카에 대하여 한 작품은 그것이 완성된 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작품은 작품 안에서 작업하는 자가 작품을 또한 바깥에서 끝낼 수 있고, 작품을 통해 더 이상 내면적으로 얽매이지 않고, 작품이 그를 거기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데 기여하고 스스로가 거기로부터 자유롭다 느끼는 자신의 한 부분에 의해 작품에 얽매여 있을 때 완성된다.(63) 글쓰기가 카프카에게 고독을 언명하고, 그의 삶을 사랑도 유대도 없는 독신의 삶으로 만든다면, 하지만 글쓰기가 그에게는 -적어도 가끔은 한참동안- 그를 정당화시켜 줄 수 있는 유일한 행위로 보였다면, 그것은 어쨌든 그 자신 안에서 그 자신 바깥에서 고독이 그를 위협하고 있음을 뜻하고, 공동체란 단지 하나의 환영에 불과하며, 공동체 안에서 여전히 말하고 있는 법은 망각된 법이 아니라, 법.. <묵시록의 네 기사> 독서 및 발췌중. "생명은 생명이기에 소중한 것이라는 동어반복은 개발업자도, 정부도, 그들에게 반대하는 수많은 선의가 있는 사람만큼이나 갖고 있는 어떤 것이다. 모두가 생명이 소중함을 모르지 않는다고 말한다. "왜 생명이 소중할까"가 아니라 "언제부터 생명을 소중하게 취급했는가"로 물음을 바꿔야 한다. 생명은 자본주의가 발명해낸 인공품이다. 생명을 쓰레기로 취급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생명이라는 원액을 추출하려면 나머지 것들이 그대로 쓰레기로 간주될 수밖에 없는 것이 핵심이다. 발터 벤야민과 미셸 푸코가 말한 것처럼, 생명에 대한 국가나 국민의 특별한 관심은 폭력과 법, 나아가 근대국가가 성립된 계보의 중추를 받치는 권력의 어두운 비밀이다." -복도훈,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차라투스트라 노트 인간을 복수심으로부타 구제하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최고의 희망으로 나아가는 다리이며 오랜 폭풍우 뒤의 무지개다. 그러나 타란튤라는 물론 다른 것을 원한다. "세상이 우리들의 복수심으로 가득 차는 것. 바로 그것이야말로 우리들에게는 정의다." 그들은 서로 이렇게 말한다. "우리와 동등하지 않은 모든 자들에게 복수하고 모욕을 주리라. 그리고 평등에의 의지. 이것 자체가 앞으로는 덕의 이름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을 가진 모든 것에 반대해 함성을 지르리라!"타란튤라의 마음을 가진 자들은 이렇게 맹세한다. 그대 평등을 설교하는 자들이여, 무력감에서 오는 폭군의 망상은 그리하여 그대들의 마음속으로부터 평등을 외친다. 그대들의 가장 은밀한 폭군적인 욕망이 덕이라는 말을 가장하고 있다! iPhone 에서.. <다중과 제국> 부분발췌 안토니오 네그리, 정남영·박서현 옮김, , 갈무리, 2011. 써발턴 연구 그룹을 추적해봅시다. 여기서 역사 비판은 위로부터 역사 과정을 구축하는 서양 전통과의 발본적인 단절에서, 더 정확하게는 주변부의 역사나 식민지에 대한 유럽 중심적 중층결정이라는 서양 전통과의 발본적인 단절에서 시작합니다. 식민지의 역사 기술은 첫째로 유럽 식민주의의 시혜주의적 구도와 관련이 없는 요소들을 은폐하거나 신비화하는 역사 기술이었으며, 둘째로는 제국적 구성에 대한 반발을 배제하는 역사 기술, 다시 말하면 식민국가 자체가 투쟁에 대한 반응으로 구축되었다는 사실을 은폐하는 역사 기술이었습니다.(63) 불연속성. 역사적 발전 일반은 인과적 분석의 관점에서 볼 때, 결코 미리 주어지지 않으며 언제나 과정 안의 주체의 행위에 의존.. 정신분석학의 유물론적 접근, 욕망은 환상이 아니라 실재다 (들뢰즈․가따리, 최명관 옮김, , 민음사, 1994. 발제문) 자본주의 경제철학에서 말하는 “사회적 생산”과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욕망하는 생산”은 같은 층위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그 층위는 “인간과 자연의 구별 이전”(16)에, 즉 근대성의 이분법적 구분 이전에 존재했던 “생산의 과정”에 놓여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생산하는 욕망하는 기계들의 우주”이자 “인간과 자연의 본질적 현실로서의 근원적인 보편적 생산”이다.(20) 이곳에 욕망하는 기계들이 놓여있고 그들은 자유롭게 접속․생성한다. 마르크스는 자본가들이 ‘생산’, ‘분배’, ‘소비’를 구분하는 것은 ‘자본’과 ‘분업’이라는 전제를 놓치고 있다는 점을 비판했다. 그는 자본주의에 속한 잉여생산물의 비밀을 밝혀냄으로써(잉.. 포스트 콜로니얼한 글쓰기의 세 단계와 궁극적 지향점 빌 애쉬크로프트 외 지음, 이석호 옮김, , 민음사, 1996. 포스트 콜로니얼한 글쓰기의 세 단계와 궁극적 지향점 (3장. 텍스트 다시 쓰기 – 포스트 콜로니얼한 글쓰기의 해방) "포스트 콜로니얼한 담론 내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전유는 글쓰기 그 자체의 전유이다. 포스트 콜로니얼한 텍스트의 전략이 내포하고 있는 갈등 및 투쟁의 초점은 글쓰기 과정에 대한 통제에 집중되어 있다." 다시 말해 식민주의적 억압이 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면, 포스트 콜로니얼한 글쓰기는 의사소통능력을 '전유'함으로써 권력을 이양하는 전략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츠베탕 토도로프는 "통역사"라는 존재를 식민주의자와 피식민주의자를 연결하는 동시에 주변부를 중심부의 언어를 전유하는 자로 해석한 바 있다. 이는 얼핏 침략자의 문화를 지.. 슬라보예 지젝 7월 강연록 슬라보에 지젝 강연록 (정리 1/2) '정치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우선 시작하기에 앞서서 제가 한국을 방문하게 된 것을 너무나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제가 듣기로 저의 저서가 한국에서 비교적 성공했다라고 하더군요. 그러다 보니 제가 희망이 생겼습니다. 이런 다문화적인 이데올로기를 제가 신뢰한 적이 없었습니다. 완전한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하다 또 서로 간에 상호소통이 불가능하다라는 시각이 있었죠. 저는 항상 보편성이라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영적인 차원의 보편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떤 분투와 어려움에 대한 보편성이죠. 우리 각자 어려움을 갖고 있지만 공통의 영적인 본질을 공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해방, 자유 등을 위한 공통의 분투를 하고 있기도 합니다. 결.. 전체주의의 기원 11장. 전체주의 운동 1. 전체주의 선전 전체주의 ‘운동’은 선전과 테러라는 방식으로 제국주의 내/외부를 구성한다.(이후 선전과 조직이라고 수정) 테러가 제국주의 내부를 향한 것인 반면에 선전은 전체주의의 외부의 국가들, 즉 비전체주의 국가를 향한다. 이 장에서는 비전체주의 국가들을 향한 선전의 방법과 기술을 밝히고, 선전에 동화되어 간 대중의 특성까지 드러내고 있다. 선전은 항상 전체주의 운동의 외부를 향한다. 이미 ‘운동’에 소속된 사람들은 선전의 대상이 아니라 주입식 교화의 대상이 된다. 내부에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안전감을 얻는다. 전체주의는 일단 대중을 확보하게 되면 대중이익보다는 비전체주의 국가를 향한 선전에 더욱 관심을 기울인다. 이들에게 전체주의의 실증성과 정확성을 알려 세계를 자신의 휘.. 이전 1 2 3 4 5 6 7 8 ··· 10 다음 목록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