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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 일기 ㉒] 근황 그리고 Q&A 그간 글을 쓰지 않았다. 그냥 쓰고 싶은 마음이 처음에 비해 많이 줄어든 것 같다. 처음 발병했을 때는 세상 창작욕이 마구 생기더니, 이제는 조금 지치는 것 같다. 그래도 그동안 블로그에 찾아와 이것저것 물어보시는 분들도 있고, 궁금해하시는 것도 있는 것 같아서 그분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오늘은 글을 쓰지 못했던 시기의 내 근황 살짝과 자주 물어보시는 질문에 답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1월에 방사선 검사를 시작했고, 32일 정도 치료를 받았다. 처음에는 별 느낌이 없는 것 같더니 보름 정도 지나고부터는 체력 이슈가 생겼다. 나도 모르는 새에 살이 쭉쭉 빠지고 힘이 빠지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 보름 동안에는 살이 4 킬로그램이나 빠져서 다이어트에 성공한 거라 생각했다. 아무..
카롤린 엠케, <혐오사회> 메모 혐오사회혐오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는 좋은 출발점이 되어줄 『혐오사회』. 전 세계적 이슈로 떠오른 혐오와 증오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이 책은 그동안 혐오 문제가 주로 혐오표현과 여성혐오의 층위에서 다루어졌던 것과 달리 혐오가 발생하고 전염되고 확산되는 근본적인 메커니즘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15년 넘게 전 세계 분쟁지역을 누빈 저널리스트이자 여성 성소수자로서의 경험을 살려, 현실 문제를 세밀하게 분석해내는 동시에 따스한 공감의 시선으로 사회적 약자가저자카롤린 엠케출판다산초당출판일2017.07.18  * 감정의 원인과 대상이 일치하지 않는 정서적 상태 : 감정은 실제로 그것이 향하는 대상이나 본질이나 사건과는 전혀 다른 어떤 것 때문에 촉발될 수도 있다.(38) : 공장을 닫아버린 기업에 대한 분노를 당..
[항암 일기 ㉑] 항암 환자 운동하기 - 2 자리에 앉아 핸드폰으로 우리 동네 맨발 걷기 공원을 찾아보자.놀랍게도 꼭 한 두개씩은 나올 것이다.나는 개인적으로 놀라웠는데, 평소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평소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암에 걸리고 나면 맨발 걷기를 꼭 권유받게 된다. 처음에는 맨발로 어떻게 걷나 생각하던 사람들도 옹기종기 모여 비슷한 머리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이 걷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마치 무언의 동호회에 참여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위안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맨발걷기를 처음 권유받은 건 항암 4회 차 정도 진행이 되었을 때였다. 엄마의 거래처 사장님이 투병중이시라는 이야기는 1년 전에 들어서 알고 있었다. 좋은 분인데 잘 이겨내셨으면 좋겠다며 걱정하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워낙 진행이 많이 된..
[항암 일기 ⑳] 유방암 성형 수술 수술 전 성형외과 교수님과 미팅이 잡혔다. 수술의 방향을 정하기 위해서이다. 가슴을 전절제한 후에 암 부위를 박박 긁어내어 최대한 남은 암세포가 없게 수술을 한 후에는 가슴의 모양을 잡기 위해 유방성형외과와 수술이 연계된다. 예전에는 가슴보형까지는 건강보험 급여로 인정해주지 않았었는데환자의 자존감 회복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요소라고 인정받게 되어 보정수술까지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성형외과 외래가 잡혀 아무런 정보도 없이 어리둥절 성형외과 대기실에 앉았다. 검색을 해보니 보형물을 넣는 방법과 자가지방을 넣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이런 걸 결정해야 하는 건가? 어떤 걸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뭘 생각하고 준비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성형까지는 내 계획엔 없었기 때문이다. 몇 개월 전만..
[항암 일기 ⑲] 항암 환자 운동하기 - 1 나는 운동 마니아는 아니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도 아니고, 근육질 몸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다만 생활체육인으로서 몇 가지 즐겨하는 운동들은 있었다. 어려서부터 단거리 달리기는 못해도 장거리 달리기는 곧잘 하던 학생이었기 때문인지, 지구력을 필요로 하는 운동, 그리고 혼자 하는 운동은 즐겨하기도 했다. 가장 좋아하고 오래 해왔던 운동은 수영이다. 인터넷에서 수영하는 사람들과의 공감대를 쌓으며, 혼자 영법을 연구하는 즐거움도 있었다. 워낙 쉴 때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어느 정도 수영을 할 수 있게 된 다음부터는 강습을 잘 안 듣고 자유수영만 다녔기 때문인지 특정 수준 이상으로 실력이 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혼자서 즐길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은 되었다. 제대로 마음 먹고 1년을 열심히 다..
사라 아메드, <감정의 문화정치> 중 취약함에 대하여 pp.90-91 역사를 내가 연루된 것으로 이해하는 지식은 역사를 다르게 느낄 때, 몸과 세계의 표면을 다르게 살아낼 때 비로소 지식으로 인정되고 '받아들여진다'. 내가 연루된 역사를 알고 나면, 즉 역사를 잊어버리는 일을 그만두게 되면, 나는 이전과 같을 수 없다. 고통의 역사에 연루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일은 '집이 없어지는' 폭력적인 상황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p.98고통은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기초한 정치가 아니라 화해할 수 없다는 사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정치, 다른 이들과 함께, 다른 이들 곁에서 살면서도 우리가 하나가 아님을 배우는 정치를 우리에게 요청한다.  p.159"두려워하는 몸"의 구조화. '취약함'의 허상취약함은 여성의 몸의 본질적 특성이 아니다. 취약함은 ..
[항암 일기 ⑱] 수술 후 퍼제타 급여 사실 약은 잘 들은 게 맞다.  TCHP로 항암치료를 했음에도 몸에 암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수술을 진행한 교수님께서 환부를 열어보니 암 자체는 5mm 정도 남아 있었다고 하셨다. 일단 9cm로 발견된 종양에서 2.7cm 악성 종양이 있었고, 그중 6회의 항암치료로 5mm만 남겨두었으니  약효는 어느 정도 있었다는 셈이 된다. 항암제가 잘 듣지 않는 경우에는 항암제를 다른 종류로 바꾼다고 하더라도 약의 효과가 떨어진다는 연구가 있었다. 기존에 사용하던 약이 잘 듣지 않았다면 앞으로의 치료 방향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었기 때문에수술 전 불안감이 컸었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암이 완전히 사라졌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너무 낙담하지 말고 그에 맞는 후행 치료를 하면 된다.  약의 종류를 바꾼다거나 치료의 방..
[항암 일기 ⑰] 수술 입원 5일 차 유방암 수술 입원 5일 차. 목, 금요일이 되니 대부분 퇴원하고 4인실에 두 명만 남았다. 북적거림이 줄어들어 넓은 방을 혼자 쓰는 듯한 즐거움이 있다. 고요함과 적적함이 제법 마음에 든다. 흉터 부위가 아직 아파서 신체활동이 자유롭지는 않지만 아무 생각 없이 있을 수 있다는 건 지금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오늘 아침 퇴원하신 한 어머님은 나에게 '특히 자기는 더 밝게 지내라'며 긍정적인 마인드를 훈수 두고 가셨다. 나만큼 밝게 지내는 사람이 어딨나, 수술해서 아픈 사람한테 할 말인가, 나에 대해 뭘 아느냐며 발끈하는 마음이 솟아올랐지만 또 한편으로는 내가 알지 못하는 내 어떤 부분을 보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좋게 받아들이기로 했다.발끈하는 횟수도 줄여야지. 그분은 나름 애정을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