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애쉬크로프트 외 지음, 이석호 옮김, <포스트 콜로니얼 문학이론>, 민음사, 1996.
포스트 콜로니얼한 글쓰기의 세 단계와 궁극적 지향점
(3장. 텍스트 다시 쓰기 – 포스트 콜로니얼한 글쓰기의 해방)
"포스트 콜로니얼한 담론 내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전유는 글쓰기 그 자체의 전유이다. 포스트 콜로니얼한 텍스트의 <다시 쓰기> 전략이 내포하고 있는 갈등 및 투쟁의 초점은 글쓰기 과정에 대한 통제에 집중되어 있다." 다시 말해 식민주의적 억압이 <의사소통 기제>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면, 포스트 콜로니얼한 글쓰기는 의사소통능력을 '전유'함으로써 권력을 이양하는 전략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츠베탕 토도로프는 "통역사"라는 존재를 식민주의자와 피식민주의자를 연결하는 동시에 주변부를 중심부의 언어를 전유하는 자로 해석한 바 있다. 이는 얼핏 침략자의 문화를 지지하는 행위로 보이지만, 사실 양쪽 담론의 교차승인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저자는 이러한 언어의 <교직>현상이 '언어적 관행'(구비언어)보다 '언어적 실재'(글쓰기)에서 실재적으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책과 펜은 권력의 열쇠이다." "피식민자의 콘텍스트에서 '지식'은 '글쓰기'를 의미"하며 곧 "<의사소통능력>의 소유를 의미"한다. 따라서 피지배인은 의사소통 능력인 글쓰기를 전유하려고 하며, 이를 식민지 조선의 상황에 적용하면 토도로프가 언급한 "통역사"의 역할을 조선의 지식인들, 문학가들이 수행하고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포스트 콜로니얼한 글쓰기는 지배자의 언어를 전유함으로써 '자기주체화'과정을 겪을 때 등장하며, 그 과정에서 정복자들은 이방인들에게 '낯섦'이나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저자는 이 장에서 "의사소통 기제"를 통제하는 제국주의적 단계에 대항하는 포스트 콜로니얼한 글쓰기적 특성를 세 단계로 구분한다. 첫째는 식민주의적 침묵으로, "문자적 침묵"과 "전유행위로서의 침묵" 구분된다.(142) 전자는 국가적 통제에 의한 검열로 구분되는 침묵이며, 후자는 포스트 콜로니얼한 영어를 사용하는 글쓰기가 철저한 전유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이라는 자의식 때문에 발생하는 침묵이다. 국가으로 "개별적인 목소리"를 통제하는 이유는 지배자는 "피지배자가 지식을 습득하게 되면 권력을 획득하게 된다는 사실"에 "공포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피지배자가 검열을 통해 침묵을 하는 그 자체보다는, 검열을 하는 지배자가 지니는 "공포감" 자체이다. 백인문화가 흑인문화의 침묵을 강요하는 것은 그들에게 지니는 공포감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 사이에서 문학적으로는 피지배자의 <침묵>은 피지배자와 지배자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여기에서 "문자적 침묵"과 "전유행위로서의 침묵"에 해당하는 작가들을 분리해서 배치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일제말기 작품활동을 하지 않았던 작가들의 침묵을 어떻게 구별하고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의사소통능력의 전유>에 실패하여 좌절한 인물과 그렇지 않고 제국주의에 협력한 인물로 분류할 수 있는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둘째는 텍스트 속에서 제국주의적 중심을 폐기하는 작품들이다. 식민지 본국은 중심부의 경험만을 진정성이 내포된 경험으로 인식하고 주변부의 경험은 비진정성으로 매도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권력의 지정학적 구조>라고 할 수 있는데, 제국주의적 권력이 중심부와 주변부로 양분되어 언어의 <변두리>에 해당하는 '주변부의 무질서', 혹은 '변종'을 권력의 변방으로 밀어내는 과정으로 작동하는 것을 의미한다.(150) 이에 대항하여 주변부의 경험이 온당한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중심부의 경험적인 특허권이 <폐기>되어야 한다. 따라서 포스트 콜로니얼한 글쓰기는 <권력의 지정학적 구조>를 파악하여 표면화하고, 소외된 주변부의 경험을 소재로 삼는다. "소외된 주변부"는 스피박의 용어로 중심담론에서 배제된 "하위주체"로 볼 수도 있으며, 권력구조에서 상대적 약자로 볼 수도 있을 것이며 피식민지 전반을 가리키기도 한다.
저자는 마이클 앤소니의 <샌드라 거리>에 등장하는 어린 학생 스티브를 교사인 블레이즈 선생의 주변부로 해석한다. 스티브는 블레이즈 선생의 가르침을 자기식으로 해석하고 전유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중요한 것은 그 저항이 블레이즈 선생의 <교육적이고 문자적인> 가치 안에서 등장했다는 것이다. 진정한 적은 자신의 내부에 잉태되는 것처럼 지배자로서의 중심부는 타자를 배태함으로써 그 양가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본제국주의가 일본정신을 "보편적인 것"으로 규정할 때, 그 "보편성"의 모순을 폭로하고 "진정성"이라는 담론을 해체하는 작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광수의 태도가 이와 연관된 대표적인 케이스로 보인다. 일례로 이광수의 <진정 마음이 만나서야 말로> 배일가로 낙인찍힌 김영준은 일본인의 훌륭함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민족적 독립에 대한 의리와 식민지 토착민으로 천대받지 않기 위한 비분 때문에 내선일체를 쉽게 주장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김영준은 일본인이 허용하는 범위, 인간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일본인을 향한 질타와 요구를 멈추지 않는다. 그 결과로 타케오는 김영준과 그의 아들 충식에게 정식으로 사과하고 일본인을 순수하게 '받아줄 것'을 부탁한다. 이는 제국 안에 포섭되기를 일방적으로 원했던 조선인의 태도와 역전된 상황을 보여준다. 마지막 특징은 중심부의 언어와 문화를 능동적으로 전유하기이다. 여기에서는 식민주의적 억압이 타자성을 배제하는 한편 동시에 공포로 느끼고 있음을 다시한번 강조하면서 지배담론이 내포하고 있는 <불안한 권위>를 드러내는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즉 제국주의적 중심성을 폐기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사실은 중심부의 오리지널리티는 없으며, 주변부와의 관계 안에서 의미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중심은 스스로 존재하지 않으며, 주변부성의 끊임없는 차연화가, 다시 말해 "무한히 교차하는 주변부 담론들의 집합"(183)만이 존재한다.
스피박의 이론에 따르면 '하위주체'라고 불리는 주변부들은 항상 중심에 의해 배제되어 왔다. 그러나 사실 중심을 유지하기 위해서 주변부들의 존재는 필수불가결한 것이었고, 더 나아가 주변부가 중심이라는 환영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핵심적인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 포스트 콜로니얼적 글쓰기의 단계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도시/시골, 남성/여성, 정상인/비정상인의 이분법에서 우측의 하위주체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중심은 존재할 수 없다. 이렇듯 포스트 콜로니얼한 글쓰기가 식민지 본국에 저항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식민지 전단계의 문화적 조건이라는 순수한 이상으로 되돌아가려는 시도는 어불성설"이라고 주의한다. "<순수한> 문화적 가치의 재구성이란 항상 근본적으로 달라진 권력관계의 역학 내에서만 실행 가능한 것"이라는 지적이다.(183) 이는 탈식민의 공간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민족주의적' 회귀운동을 타겟으로 하는 지적으로, "식민주의적 권력을 다시 전유함으로써 상징표상만 대치하게 될 수 있는 위험성"을 지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앞선 중심-주변의 관계가 얼마든지 전치될 수 있다는 가능성과 위험성을 지적함으로써 우리 스스로가 모순적 상황에 빠지게 될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해방 이후 한국의 민족성을 강조하는 순수주의 담론뿐 아니라 오늘날의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문제를 직접적으로 목표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여기의 권력들이란 것은 지난 오랜 역사의 문제의식의 틀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으며, 스스로 자신의 지위를 '탈중심화'함으로써 타자의 가면을 쓰고 있다. 저자의 마지막 지적은 포스트 콜로니얼리즘 연구의 핵심이자 현 연구의 궁극적 목적이 되어야 한다.
4장. 교차로에 서 있는 이론. -토착 이론과 포스트 콜로니얼한 책읽기
이 장에서는 '탈식민'국가에서 볼 수 있는 <본토>문화운동들을 살펴, 자신들만의 특유한 문화를 향유하고자 하는 의식의 심층을 살펴보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인도, 아프리카, 백인정착 식민지의 사례를 통해 각각의 "토착적 문학 전통"을 전유하는 방식과 그 의미를 찾고자 한다. 이는 '탈식민'국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양식으로 1930년대 조선의 '조선적인 것'의 열풍과 1960-70년대 "본토"문화 논의 등을 통해서도 볼 수 있는 사실이다. 식민주의의 억압에서 어떠한 방식으로든 벗어난 '탈식민' 사회에서는 그 이전에 '보편적'이라고 교육받아왔던 양식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전통의 양식들을 통해 "저항적인 미학 모델"을 제시하고 의미를 재구성하는 것이 탈식민 사회의 목표가 되는 경향이 많다. 즉 민족주의의 방식으로 국가적 주체성을 얻고자 하는 경향이 높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저자는 인도의 경우에 "식민지 본국의 영어"를 사용하는 것이 "자신이 처해 있는 입장의 모순"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식민지배의 증표"로 오인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포스트 콜로니얼한 글쓰기가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것을 "문화적 역량의 부족"이 아니라 "창조적인 잠재력의 한 증표"로 끌어안아야만 한다는 것이다.(197) 아프리카에서는 치누아 아체베나 볼레카자 비평가들은 <보편적>이라는 가치를 부인하고 아프리카의 특성을 강조하는 네그리튀드 운동을 강조하였다. 이들의 노력은 "과거를 회복하려는 노력"으로, 인도 텍스트와 전통을 부흥시킴으로써 과거과 현재 편재되어 있는 "제국"의 원심력을 폐기해버릴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들의 "민족주의 모델"은 과거의 한 시대적 문화적 순간성을 <본질적인 것으로 특권화>하고 자신들의 전통적 가치를 기존의 식민주의적 문화의 특징과 범주로 대치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또한 아체베와 볼레카자 비평가들의 의견을 비판한 소잉카는 모든 대상을 "원주민들의 눈에 비친 자연 풍경으로 <환원>"하는 것을 비판하였다.(215) 그것이야말로 아프리카 사회를 "재현"하는 허구적 방식이라는 지적이다. 마지막으로 백인이 정착한 식민지인 미국, 호주, 뉴질랜드에 정착한 유럽 백인들은 그들 스스로 <토착성>을 강조하는 독특한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기존의 정착민들과 다른 <토착성>을 창출하여 이주의 정당성을 마련해야 했다. 이렇듯 '탈식민'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사실은 그들이 새로운 주체를 구성할 때 필요로 하는 '민족성'이란 것을 어떻게 다시 구성할 것인가의 문제가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식민지배하에서 강요되었던 제국주의적 '보편성'을 버리고 새로운 '보편'을 찾아야 할 때 그들이 찾아야 할 민족성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특히 1940년대 동아시아 전반에 구축되었던 "일본정신"이 폐기되자마자 각국의 민족성은 어떻게 구성되었는가가 문제시될 수밖에 없다. 인도의 경우에는 '식민지 본국의 영어를 계속 사용할 것'과 '인도의 전통 미학'을 재생해야 한다는 의견 사이의 논쟁이, 아프리카는 네그리튀드를 강조하는 입장과 환원주의, 본질주의를 비판하는 입장 사이의 논쟁이 있었다. 이와 비교하여 "조선문화를 재건"하고자 했던 해방 이후의 한국은 1946년의 제1회 전국문학자대회를 열어 "조선문학의 기본임무가 민족문학의 수립"에 있다는 점을 확실히 하였다. 또한 그 방법으로 "극좌적 편향을 가진 분들에게 솔직한 과오의 청산을 요구" 했으며 "반동적 진영에 의한 봉건적"이고 "제국주의적인 반민주주의적 민족문학수립의 표에 대하여 가책 없는 투쟁을 선언"한 것이다.(김남천, <조선문학의 재건>, <<민성>>6호, 1946.4) 적어도 김남천은 1946년의 전국문학자대회에서 해방 직후의 조선문학의 기본임무를 ‘민족문학’의 설립 이전에 반제국주의적 "민주문화모델"을 건설해야 한다는 당위를 읽어내고 있는 지점이라 하겠다. 식민주의의 그림자에서 벗어났음에도 균형감각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자의식을 볼 수 있는 지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50년 이후에 보인 ‘순수문학’의 정전화는 앞서 저자가 끊임없이 경계하고자 하는 “식민주의적 권력의 재전유”, 혹은 “본질주의적 환원주의”의 길을 걸을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그와 함께 일본식민주의를 함께 경험했던 타이완의 경우에도 1960년대에 들어서면 ‘타이완적인 것’을 찾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이른바 “본토화 운동”으로, 제국주의적 억압에 저항하기 위해 이루어진 운동이다. 본토화 운동은 “그동안 지배, 주류 세력에 의해 위축되고 무시되어져 왔던 대중들의 고유한 하위 문화를 부흥시킴으로써 식민주의인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일종의 탈식민적 문화 기획의 측면을 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에는 타이완의 본토의식이 ‘중국적 보편성’과 ‘타이완적 특수성’ 가운데 어디에 속하는지에 대해 논쟁이 벌어진다. 1945년 ‘탈식민’과 동시에 만나게 된 ‘타이완’이란 주체에는 중국이라는 또 다른 제국이 깃들여있는가, 독립적인 타이완적 ‘본토의식’으로 구성된 것인가를 규정해야 했다. 이렇듯 ‘탈식민’ 국가들이 지니는 ‘토착’ 지향성, 그리고 그것이 내포하는 환원주의적 위험성을 동아시아 국가들도 공유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민족주의적 위험성을 넘어서는, 문화적 위계관계와 차별을 넘어서는 진정한 포스트 콜로니얼리즘의 도래가 필요한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