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63) 썸네일형 리스트형 [항암 일기⑦] 입원 생활 루틴 이 병원에서는 입원을 시켜 항암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 주었다. 항암 치료 환자가 많아지다 보니 대형병원에서는 입원을 잘 시키지 않는 편인데, 이 병원에서는 오히려 입원을 권했다. 보험 처리를 위해 입원을 필요로 하는 환자의 요구와 병원의 수입원 확보가 잘 맞물렸기 때문일 것이다. 나로서는 환영할 일이다. 첫날은 그냥 쉬는 날이다. 간호사도 딱히 찾아오지 않는다. 1차 항암 때는 첫날에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많다. 내 경우에는 수간호사, 항암 코디네이터, 식품 영양사 등을 만났다. 먹고 있는 약을 체크하고, 항암제 사용 내역과 부작용, 앞으로 들어갈 비용, 도움 받는 방법 등을 상세히 알려준다. 부작용 설명 중 탈모 얘기에서 다들 주저한다. 나는 그보다 심장 문제나 간 문제가 발병할까봐 걱정이 되었다. .. [항암 일기⑥] 입원 전 했던 일들 몇 가지 첫 번째, 아이와 시간 보내기 마음이 많이 괜찮아졌다고 생각했었는데도, 하루에도 몇 번씩 널을 뛴다. 왜인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받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죽고 싶다고도 생각해 봤는데, 나도 모르게 속에서 '살려주세요' 하고 외쳐버린다. 아이가 너무 예쁘다. 조금 사춘기가 와서 미운 짓도 하고, 엄마 싫어하고, 수염도 거뭇거뭇 나고, 반항도 하면 조금은 눈물이 덜 날 것 같은데. 여전히 엄마가 울면 따라 울고, 케이크 한 조각에 행복해하고, 작은 일에 뿌듯해하는 걸 보니까 약간은 미칠 것 같다. 혹시라도 올해 중 조금이라도 여유 있는 시간이 내일 뿐일까 봐 조바심이 났다. 내일 하루는 무리가 되더라도 아이와 둘이 보내는 시간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먼저 미뤄두었었던 치과 검진을 받고 어린이집 땡땡이를 .. [항암 일기⑤] 천국과 지옥 사이/TCHP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사느냐 죽느냐 하면서 심각을 떨었는데, 정작 정말로 위기에 처하고 나니 오히려 관점이 분명해졌다. 어떻게 버틸 것인가, 이 고통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대비해야 했다. 예를 들어 주변 가족들에게 알리고, 위로하고, 감사하는 일들. 주변의 시선에 대담해지고, 나 자신을 지켜가는 일들 같은 것들 말이다. 이쯤 되니 삶의 목표가 단순해지고 분명해졌다. 내가 세상에 데리고 나온 이 아이를 상처받지 않게 잘 키우는 것. 예전에는 아이가 내 인생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걸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으스러지고 부서져도, 저 한 아이 올곧은 성인으로 키우는 게 내게 주어진 임무이자 의무구나, 하는 것을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도 그 분과 딜을 한다. 오만하게도.. [항암 일기④] HER2 중성... 중성?? CT, PET CT, MRI 검사를 받은 뒤 한 주가 지났다.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갈 때까지 어떤 정신으로 살았는지 모르겠다. 나의 불안감을 키운 건 종양의 사이즈였던 것 같다. 그즈음엔 통증도 생겨서 전이가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삼중음성일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그래도 여전히 가장 좋지 않은 쪽으로 생각이 흘러들었다. 하지만 다행이도 원격 전이 없는 침윤성 유방암이었다. 겨드랑이 림프에 두 개의 덩어리가 있어 림프에 암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전이가 되지 않았고, 다른 장기나 뼈에도 전이가 없었다. 암 캐릭터가 중요했는데, 그 결과는 호르몬 수용체 음성, HER2 중성이다. 중성??? 중성이 나올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중성이란다. 교수님은 재검사를 해서 다시 양성인.. [항암 일기③] NCCN 가이드 수요일 오전, 타 병원에서 받은 결과지를 가지고 교수님 진료를 받기 위해 아침 일찍 서둘렀다. 아침 등원을 할머니에게 맡기고 먼저 떠나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아이는 낯설게 느꼈을 거다. 교수님의 설명은 어제 우리가 공부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접근하는 방식이 달랐다. 교수님은 가장 먼저, 결과지로 먼저 이 사안을 접하게 된 나와 우리 가족을 위로했다. 그리고 감정에 매몰되지 말고, 비과학적인 접근법에 동요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결과는 역시 9cm 종양 안에 2.7cm 침윤성 유방암 존재, 2번 겨드랑이에서 림프 전이로 보이는 2개의 종양이 확인된다는 것이었다. 이제 실체를 알았으니 싸움을 시작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NCCN 사이트를 펼치시더니, 우리나라의 모든 암 치료는 이 연구결과에 근거해.. [항암 일기②] 내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들 검사를 받은 날, 엄마와 남편은 큰 충격을 받았다. 엄마는 이것이 다 당신의 죄라고 생각했다. 엄마의 어린 시절, 시집 생활, 사업의 성공과 실패, 여러 차례 반복됐던 수술과 유방암, 아빠와의 이혼과 기어이 이어지는 질긴 악연에도 불구하고 이제야 조금의 평화를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딸의 유방암이라니, 게다가 전이일 수도 있다니. 엄마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생에는 그 정도의 죄를 지은 것 같지 않아, 전생에 큰 죄를 지었나 보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말에 나는 조금 웃었다. 엄마와 있으면 나는 어떤 불안에도 크게 웃을 수 있다. 남편은 얼른 믿지 않았다. 며칠 전, 회사 동료의 유방암 소식을 내게 전하면서 "오죽 스트레스를 받으면 가슴에 뭐가 생기는 거냐"면서 안타까워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딱.. [항암 일기①] 양성인가, 악성인가 기다리던 검진을 드디어 받을 수 있었다. 선생님은 내 왼쪽 유방을 만져보더니 5cm 정도 되는 '엽상종양'이 아닐까? 하신다. 나는 '엽상종양'이라는 처음 듣는 단어를 휘리릭 접하고 얼른 머릿속에 저장해 두었다. 단어가 머리에서 지워지기 전에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꺼내 검색해보았다. 유방의 엽상 종양은 비교적 드문 유방 종양 중 하나입니다. 종양 내부가 나뭇잎처럼 생겨서 엽상 종양이라고 합니다. 초음파로는 섬유선종과 구분이 안 되지만, 자라는 속도가 매우 빠르고 크게 자랍니다. 유방의 엽상 종양은 조직학적인 특징에 따라 양성, 경계성, 악성의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60~70% 이상은 양성입니다. 악성은 약 16~30% 정도입니다. 악성 엽상 종양인 경우 약 20~25%는 폐나 뼈로 전.. [항암 일기] Prologue 2. 불안과 우울감 병원을 예약하고 한 달을 기다렸다. 한달이라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게 체감되었다. 별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사이즈가 심각하게, 그리고 급격하게 커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간단히 치부하기에도 심리적 어려움이 있었다. 브라를 차면 한 쪽 가슴이 패드 바깥으로 불룩하게 튀어 나왔다. 압박감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런닝이나 걷기 운동이 약간 불편해졌다. 통증도 조금씩 생겼다. 불안한 마음이 생기자, 개인적 인생사와 겹치면서 우울감이 문득문득 올라왔다. 기왕이면 4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책임한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어떤 허세보다 제일 심한 허세이겠지만. 적당한 인생은 이제 그만했으면 싶기도 했다. 이 생각이 예상보다 오래 지속되었기 때문에, 검사 당일이 될 때까지 감정적 무감각이 일상을 뒤덮었다. 연.. 이전 1 2 3 4 5 6 ··· 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