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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항암 일기] 연재

[항암 일기] Prologue 2. 불안과 우울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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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예약하고 한 달을 기다렸다. 

한달이라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게 체감되었다. 

별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사이즈가 심각하게, 그리고 급격하게 커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간단히 치부하기에도 심리적 어려움이 있었다. 

브라를 차면 한 쪽 가슴이 패드 바깥으로 불룩하게 튀어 나왔다. 

압박감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런닝이나 걷기 운동이 약간 불편해졌다. 통증도 조금씩 생겼다. 

 

불안한 마음이 생기자,

개인적 인생사와 겹치면서 우울감이 문득문득 올라왔다. 

기왕이면 4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책임한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어떤 허세보다 제일 심한 허세이겠지만. 

적당한 인생은 이제 그만했으면 싶기도 했다. 

이 생각이 예상보다 오래 지속되었기 때문에, 

검사 당일이 될 때까지 감정적 무감각이 일상을 뒤덮었다. 

연말이었지만, 다 무의미했다. 

아이의 성탄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삶을 추동하는 것은 무엇일까. 

오늘 우연히 들른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에서 본 

강격덕 할머니의 인터뷰가이런 내 생각과 대조적이어서 의아했다. 

할머니는 '오래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셨다. 

자신의 존재 그 자체가 의미이자, 이야기였던 분이셨다. 

수십년이 지난 후 할머니들은 아마도 더욱 당혹스러운 순간을 맞이하셨을 것이다. 

할 말을 수 십 번, 수 백 번이고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새롭게 해야 할 일들이 더 생겼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 남성단체와 싸워야 했고, 손자보다도 어린 세대를 설득해야 했으며, 

생각도 못했던 타 지역 전쟁 피해자들과 연대해야 했고, 

베트남 성착취 피해자들과 연대하여 한국 정부를 다시 비판해야 했다. 

이 모든 것이 할머니들 자신의 몫이 되어 버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체성 정치에 한계가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자신이 살아온 경험이 바탕이 되는 실존은 무겁다. 

 

강격덕 할머니는 아쉽게도 병으로 인해, 조금 더 일찍 돌아가셨다. 

살아야 할 사람이 떠나고, 존재감 없는 사람은 살아 있는 이 아이러니. 

살고 싶은 사람은 떠나고,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남는, 모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