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다반사

(63)
[항암 일기 외전] 암환자의 특권 6차 항암이다. 마지막 사전 항암이란 말이다. 더 이상 사전 항암에 대해 덧붙일 말은 없을 것 같다. (앞에 쓴 글들에는 추후에 내용을 덧붙일 예정이다) 항암 부작용은 점점 더 견디기 어려워지지만, 독성 항암은 아마도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고,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해결될 문제다. 짧은 머리카락에서 바람이 느껴진다.    매번 항암 스케줄은 동일하고, 이걸 처리하는 건 바쁘다. 입원을 일주일 하고 나면 2주차에는 정신없이 아프느라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다. 2주 차가 끝나가는 주말에 멀미가 찾아오는데, 그 멀미만 잘 이겨내면 부작용으로 인한 고통은 사그라든다. 그러면 곧바로 외래가 잡히고 면역을 확인하는 피검사를 한다. 피검사 수치가 좋다면 4주 차에 입원을 하게 된다. 그러면 나에게 ..
[항암 일기⑭] 환자의 이기심 항암제 중간 평가 결과에서 부신에 결절이 생겼다는 결과를 보더니 엄마의 불안감이 고조되었다. 나는 부작용을 겪으면서 이사 준비도 해야 하고, 육아도 하느라 정신없이 보내고 있는데, 그 와중에 병원을 옮겨보자고 닥달을 시작했다. 아직 CT도 찍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도 나오지 않았는데, 엄마의 불안감은 제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짜증부터 났다. 결과가 나오고 나서 생각해도 되는 부분인 데다가, 나는 나쁜 결과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항암 일정을 그대로 지키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다. 항암 치료 중 재발이 될 가능성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사할 집에 들어가 입주 청소를 하고 있는데, 엄마가 전화를 해서 새 병원에 예약을 잡으라고 했다. 나는 새 병원에 예약을 잡을 생각이 없고, 항암 일정을 생각하면..
[항암 일기⑬] 항암 치료 중 육아하기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다섯 살이 되던 해 1월에 암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조금 더 빨리 암이 생겼다면 이 아이를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고, 엄마의 손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에 분리되었을 수도 있다. 출생 후 4년간 나는 아이와 밀접한 시간을 보냈고, 즐거운 경험을 해주려 노력했다. 나름 프리랜서로 집에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 차를 사용할 수 있어서 아빠가 바빠도 기동력 있게 생활할 수 있었던 덕분이기도 하다.    이런 내 방식에는 큰 단점도 있었다.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서 안 그래도 외동인데 또래집단과의 소통에 어려움이 생겼다는 것이다. 응답을 빠르게 해주는 어른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 의존하는 버릇이 생겼고, 또래에게는 자기 이야기만 하다가 소통이 안 되면 자리를 피해버리는 경..
[항암 일기⑫] 항암제 반응 평가 첫 항암 치료를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났다. 세 차례 항암제를 투여했고, 네 번째 항암을 앞두고 항암제 반응 평가를 위해 항암 반응 검사를 했다. 같은 항암제를 쓰고 있다고 해도 환자마다 유전적 차이가 있기 때문에 효과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항암 반응 평가에서는 초음파 검사, MRI 검사, PET/CT 검사를 진행한다. 항암제를 넣어서 암이 줄었는지, 모양이 변했는지 확인하는 검사다. 나는 4차 항암을 진행하고, 그다음 주에 외래 진료에서 검사 결과를 듣게 되었는데, 결과가 이상하다.  항암 이전부터 있었던 2.7cm의 암덩어리는 여전히 같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다행인 건 그 주변을 감싸고 있던 9cm의 조직은 없어졌고, 2.7cm의 암은 조직이 흐물흐물해져서 경계가 흐..
[항암 일기 ⑪] 의대 증원과 항암 환자 항암 3회 차. 이번에는 용량이 어떻게 들어가는지 확인하지는 못했다. 이번이 3회차라 다음 외래 때는 항암제 반응 평가 검사를 한다. 반응 평가 검사로는 초음파, PET/CT, MRI 검사가 포함된다. 경과를 확인하고 남은 선항암의 회차를 결정하기 위해서다. 의대 증원 강제 시행으로 서울대 교수 전원이 사퇴를 한다는 기사가 났다. 전공의 사퇴때와는 결이 다른 반응들이 나타난다. 협상을 하기보다는 힘으로 찍어 누르는 데 더 익숙한 현 정부가 이 위기를, 내 앞에 놓인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갈는지 걱정이 된다. 의사들의 이야기도 들어봤지만, 결국 거대 양대 기득권의 싸움이다. 진짜 카르텔의 싸움, 피해자는 국민. 그러다보니 개인적인 연락도 꽤 많이 받았다. 다양한 연락들 속에서 은근한 공격들도 함께 들어온다..
[항암 일기⑩] 사람, 사람들 병을 알게 된 처음에는 주변에 알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든다. 아마도 스스로도 이 병을 감당하기에 버겁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동시에 내 상태를 입 밖으로 내뱉는 것이 힘들었다. '나는 괜찮다'며 단단하게 마음을 먹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려 했다. 나는 꽤 단단한 사람이다. 어지간한 일에 잘 충격을 받지 않는다. 내 10대와 20대에 한 일이란 내 마음을 단련한 것밖에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런 와중에도 내 주변에 다 알리면서 그들까지 위로할 여유분의 마음까지는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내가 그들에게서 잠시 사라져 있기로 했다. 이미 인간관계는 단출하게 정리한 상태였기 때문에, 잠깐 사라지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래도 두 명에게는 내 새로..
[항암 일기⑨] 가발을 맞추던 날 가발을 맞췄다. 머리가 잘 빠지지 않아 그냥 둘까 생각했는데, 정확히 2주가 지나니 머리가 우수수 빠지기 시작한다. 아직 보기에 불편하다기보다는, 생활이 불편해서 그냥 밀어버리기로 한다. 병원에서도 부작용으로 인한 통증보다 머리 미는 걸 더 걱정한다. 환자들이 심리적으로 무너지는 순간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머리를 미는 건 생각보다 수월하고, 마음도 괜찮은 일이었다. 얼굴 트러블이 하도 심해지니까 오히려 머리를 미는 건 아무렇지도 않았다. 엄마는 내가 심란해질까 봐 옆에서 안절부절못한다. 엄마는 옛날에 어떤 기분이었다는 둥, 요즘 가발은 이렇고 옛날 가발은 그렇고, 그래도 이렇게 요즘엔 좋은 가발 미용실이 있어 좋다며 있는 얘기 없는 얘기, 안 해도 될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는다. 엄마 잔소리에 기가 질려 ..
[항암 일기⑧] 내가 겪은 부작용 첫 번째 항암이 끝나고 하루가 지나자 곧바로 양치할 때 이 사이 시린 증상이 시작됐다. 아주 견딜만한 것이었지만, 이제 시작이구나 싶었다. 혀가 많이 매운 증상, 비데를 사용할 때 고통스러운 증상이 퇴원도 하기 전에 생겼다.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았다. 증상이 차차 나타났다. 빠른 심박동, 손발과 입안의 저림, 골반통, 관절통, 두통이 미약하게 몰려왔다. 가장 약한 부분부터 반응이 오는 걸 보니 곧 전체 몸에 반응이 오겠다. 이제 이 정도가 점차 심해질 것을 안다. 이제 시작이다. 부작용을 예방하는 약을 잔뜩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래도 올 것은 곧 오고야 만다. 속이 쓰리고 혀와 목구멍이 따갑다. 이게 심해지면 밥을 먹을 수 없다. 맑은 국을 먹어도 마라탕을 먹은 것처럼 맵다. 이 증상은 항암 치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