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병원에서는 입원을 시켜 항암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 주었다.
항암 치료 환자가 많아지다 보니 대형병원에서는 입원을 잘 시키지 않는 편인데,
이 병원에서는 오히려 입원을 권했다.
보험 처리를 위해 입원을 필요로 하는 환자의 요구와 병원의 수입원 확보가 잘 맞물렸기 때문일 것이다.
나로서는 환영할 일이다.
첫날은 그냥 쉬는 날이다. 간호사도 딱히 찾아오지 않는다.
1차 항암 때는 첫날에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많다.
내 경우에는 수간호사, 항암 코디네이터, 식품 영양사 등을 만났다.
먹고 있는 약을 체크하고, 항암제 사용 내역과 부작용,
앞으로 들어갈 비용, 도움 받는 방법 등을 상세히 알려준다.
부작용 설명 중 탈모 얘기에서 다들 주저한다.
나는 그보다 심장 문제나 간 문제가 발병할까봐 걱정이 되었다.
첫 번째 항암 때는 이런 상담들로 바빴지만, 2회 차부터는 여유롭다.
첫날밤부터 스테로이드제를 먹는다.
스테로이드제는 항암으로 발생할 수 있는 구토나 발진, 두드러기, 울렁증 등을 예방하는 용도라고 한다.
나는 1차 항암 이후 머릿속 두드러기와 염증성 여드름이 폭발했기 때문에 이때 먹는 약이 도움이 되었다.
가급적이면 많이 걷고 움직인다.
원래 목표는 하루 5천보였는데, 병원에서는 만 오천보를 권한다.
첫날은 실패다. 입원 전에 미리 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병원에서의 루틴을 만들어본다.
7시 반에 기상해서 급식밥을 먹고 샤워를 한다.
침구를 정리하고 환기시킨다.
피부가 뒤집어져서 얼굴에 발라야 할 화장품이 많다.
이때부터 10시까지는 부지런히 걷는다.
옥상 정원도 있지만 너무 추운 날엔 대기실 복도를 걷는다.
이 병원에는 산모들이 많다. 그래서 주로 산모들과 함께 산책을 한다.
암환자들은 잘 걷지 안하는데, 산모입장에서는 암환자가 함께 있는 게 싫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렴 어떤가, 난 그냥 이기적으로 열심히 걷는다.
10시 전에 들어와 물도 마시고 화장실을 다녀와 문구와 책을 챙긴다.
자리에 앉아 항암 치료를 준비하는 것이다.
주사를 맞기 1시간 전에는 구토 예방제인 아킨지오 한 알을 먹는다.
이 약을 먹으면 3일 후에 변비가 생긴다.
그러다 곧 항암 부작용으로 일주일 내내 설사를 한다. 미칠 노릇이다.
약을 먹고 나면 항히스타민을 주사로 주입한다.
이 역시 항암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예방하는데도 다가올 부작용들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곧 항암제가 제조되어 들어온다.
노란색 패키지에 담긴 투명한 약 4개를 받는다.
하루에 다 맞는 경우도 있다는데, 담당 교수님은 이틀 요법으로 두 개씩 나눠 맞는다고 한다.
항히스타민 부작용으로 잠이 오기 시작한다.
이때 푹 자면서 항암제를 맞으면 편하다.
잠이 오지 않을 때에는 준비해 둔 좀 쉬운 책을 휘릭휘릭 넘기면서 읽는다.
일기를 쓰는 것도 좋다.
정신없이 무언가에 집중하면 약과 나의 아픔에 집중하지 않을 수 있어서 좋다.
병실을 4인실로 신청했을 때는 외롭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암은 그 자체로 외로운 병이란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항암을 하는 동안에는 기력이 없어서 모르는 사람에게 차릴 수 있는 기본적인 예의를 갖출 여력이 없다.
그래서 병실이 이렇게나 넓은데도 모두 커튼을 치고 있다.
작은 소리도 내기 어렵다.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내는 이 시간.
결국에는 우리 모두가 이겨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