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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항암 일기] 연재

[항암 일기③] NCCN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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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오전, 타 병원에서 받은 결과지를 가지고 

교수님 진료를 받기 위해 아침 일찍 서둘렀다. 

아침 등원을 할머니에게 맡기고 먼저 떠나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아이는 낯설게 느꼈을 거다. 

 

교수님의 설명은 어제 우리가 공부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접근하는 방식이 달랐다. 

교수님은 가장 먼저, 결과지로 먼저 이 사안을 접하게 된 나와 우리 가족을 위로했다. 

그리고 감정에 매몰되지 말고, 비과학적인 접근법에 동요하지 말 것을 경고했다. 

결과는 역시 9cm 종양 안에 2.7cm 침윤성 유방암 존재, 2번 겨드랑이에서 림프 전이로 보이는 2개의 종양이 확인된다는 것이었다. 이제 실체를 알았으니 싸움을 시작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NCCN 사이트를 펼치시더니, 우리나라의 모든 암 치료는 이 연구결과에 근거해서 

공식대로 진행하게 되니, 이걸 함께 공부하자고 말씀하신다. 

내가 지금껏 만나본 의사 중 가장 민주적인 방식으로 대화를 이끌어 가는 분이셨다. 

이것이 과연 신세대의 의학 영업방식인가 생각했다. 

그건 잘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제법, 매우, 아주 잘 통하는 방식이었다. 

환자의 신체적.감각적 경험과 인지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교수님은 더 많은 검사를 진행할 건데, 이 검사 중 나의 치료 방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은 

호르몬 수용체와 HER2 양성/음성 반응이라는 것을 알려주셨다. 

엄마가 입원했을 때는 들어본 적 없던 것들이라 정말 공부가 필요했다. 

게다가 이렇게까지 설명해 주시는데, 다음에 교수님을 만났을 때에는 정말 공부가 되어 있어야 할 것만 같아

조금은 공부를 해보았다.

 

르몬 수용체(HR)과 HER2 단백의 발현 여부에 따라

유방암의 치료 방침이 달라진다.

그뿐만 아니라 이 결과값에 따라 치료약에 대한 신체의 반응 여부, 예후 판정 등이 크게 영향을 받는다. 

호르몬 수용체는 에스트로겐 수용체(ER)와 프로게스테론 수용체(PR)를 의미한다. 

HER2 검사는 사람표피성장인자수용체-2(Human epidermal growth factor receptor-2, HER2)의 과발현 정도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유방암을 발현시킨 요인을 찾아서 치료약을 결정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신체 내 유방암 발현 요인을 찾아내는 것이기 때문에,

유방암이 발생한 원인을 환자의 생활방식이나 죄의식에서 찾지 않을 수 있다. 

 

 

 

NCCN 사이트에서 Breast Cancer 가이드라인을 받아 16페이지를 찾으면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볼 수 있다. 

조금 간결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유방암은 크게 세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첫 번째는 호르몬 수용체 양성인 경우다.

호르몬 수용체가 양성인 경우에는 생존율이 안정적이고 유방암 환자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두 번째는 HER2가 양성인 경우다. 

호르몬 수용체가 음성이고 HER2가 양성인 경우에는 HER2치료만 받으면 된다. 

원래 HER2 양성의 경우 비교적 사망률이 높았으나, 표적치료제가 개발되면서 오히려 생존율이 더 높아졌다. 

완전관해율이 높아졌기 때문에 좋은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삼중음성인 경우다. 

호르몬 수용체와 HER2가 모두 음성인 경우다. 

위에서 사용하는 표적치료제와 독성항암제를 모두 사용할 수 없는 경우다. 유방암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낮다. 

현재 면역치료 항암제가 개발되었고, 예후가 좋다는 최근의 임상결과가 발표되었다. 

하지만 환자들에게는 여전히 무서운 케이스이며, 비용 부담도 발생한다. 

 

 

 

교수님은 CT, PET/CT, Bone scan으로 호르몬 수용체 양성/음성, HER2  양성/음성 결과를 확인하고 

빠르게 치료를 시작해보자고 말씀하셨다. 

남편의 불안한 질문에, "최근엔 치료가 잘 되니까 걱정 말라"는 희망찬 이야기를 남겨주셨다. 

내 귀에는 그다지 희망차게 들리지는 않았는데, 

누군가에게는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듣고 싶었던 말이었나 보다. 

진료실을 나서는 남편의 표정이 밝아진 것이 약간은 괘씸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렇다. 

이후부터는 삼중음성이 아니기만을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나중에 다른 환자분들께 이야기를 들어보니, 삼중양성도 치료 과정에서 꽤나 고통을 받는다고 한다. 표적치료뿐만 아니라 호르몬 항암제도 함께 맞아야 하기 때문에 항암의 기간도 길어지고 그에 따른 부작용도 심하다는 것이었다. 기술이 발전됐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암 치료란 고통을 수반한다.  

 

 

여러 검사를 하며 기다리는 동안, 쾌적한 병원을 즐기고 있는 내가 어색했다. 

그 와중에도 등과 어깨 깊은 곳에서 우우웅 하는 통증이 올라온다. 

이제 이 세상에서 내 쓰임이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함께 올라온다. 

남들이 버킷 리스트를 쓸 때 난 딱히 하고 싶은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하나하나 떠올려보니 하고 싶은 게 제법 떠오른다. 

5년을 살 수 있으면, 더 오래 살 수 있다. 

전이만 없다면. 

하지만 자꾸 옆구리를 쿡쿡 찔러오는 소리가 나를 자꾸 불안하게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