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티스토리챌린지

(8)
[항암 일기 ⑳] 유방암 성형 수술 수술 전 성형외과 교수님과 미팅이 잡혔다. 수술의 방향을 정하기 위해서이다. 가슴을 전절제한 후에 암 부위를 박박 긁어내어 최대한 남은 암세포가 없게 수술을 한 후에는 가슴의 모양을 잡기 위해 유방성형외과와 수술이 연계된다. 예전에는 가슴보형까지는 건강보험 급여로 인정해주지 않았었는데환자의 자존감 회복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요소라고 인정받게 되어 보정수술까지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성형외과 외래가 잡혀 아무런 정보도 없이 어리둥절 성형외과 대기실에 앉았다. 검색을 해보니 보형물을 넣는 방법과 자가지방을 넣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이런 걸 결정해야 하는 건가? 어떤 걸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뭘 생각하고 준비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성형까지는 내 계획엔 없었기 때문이다. 몇 개월 전만..
[항암 일기 ⑲] 항암 환자 운동하기 - 1 나는 운동 마니아는 아니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도 아니고, 근육질 몸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다만 생활체육인으로서 몇 가지 즐겨하는 운동들은 있었다. 어려서부터 단거리 달리기는 못해도 장거리 달리기는 곧잘 하던 학생이었기 때문인지, 지구력을 필요로 하는 운동, 그리고 혼자 하는 운동은 즐겨하기도 했다. 가장 좋아하고 오래 해왔던 운동은 수영이다. 인터넷에서 수영하는 사람들과의 공감대를 쌓으며, 혼자 영법을 연구하는 즐거움도 있었다. 워낙 쉴 때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어느 정도 수영을 할 수 있게 된 다음부터는 강습을 잘 안 듣고 자유수영만 다녔기 때문인지 특정 수준 이상으로 실력이 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혼자서 즐길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은 되었다. 제대로 마음 먹고 1년을 열심히 다..
사라 아메드, <감정의 문화정치> 중 취약함에 대하여 pp.90-91 역사를 내가 연루된 것으로 이해하는 지식은 역사를 다르게 느낄 때, 몸과 세계의 표면을 다르게 살아낼 때 비로소 지식으로 인정되고 '받아들여진다'. 내가 연루된 역사를 알고 나면, 즉 역사를 잊어버리는 일을 그만두게 되면, 나는 이전과 같을 수 없다. 고통의 역사에 연루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일은 '집이 없어지는' 폭력적인 상황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p.98고통은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기초한 정치가 아니라 화해할 수 없다는 사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정치, 다른 이들과 함께, 다른 이들 곁에서 살면서도 우리가 하나가 아님을 배우는 정치를 우리에게 요청한다.  p.159"두려워하는 몸"의 구조화. '취약함'의 허상취약함은 여성의 몸의 본질적 특성이 아니다. 취약함은 ..
[항암 일기 ⑱] 수술 후 퍼제타 급여 사실 약은 잘 들은 게 맞다.  TCHP로 항암치료를 했음에도 몸에 암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수술을 진행한 교수님께서 환부를 열어보니 암 자체는 5mm 정도 남아 있었다고 하셨다. 일단 9cm로 발견된 종양에서 2.7cm 악성 종양이 있었고, 그중 6회의 항암치료로 5mm만 남겨두었으니  약효는 어느 정도 있었다는 셈이 된다. 항암제가 잘 듣지 않는 경우에는 항암제를 다른 종류로 바꾼다고 하더라도 약의 효과가 떨어진다는 연구가 있었다. 기존에 사용하던 약이 잘 듣지 않았다면 앞으로의 치료 방향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었기 때문에수술 전 불안감이 컸었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암이 완전히 사라졌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너무 낙담하지 말고 그에 맞는 후행 치료를 하면 된다.  약의 종류를 바꾼다거나 치료의 방..
[항암 일기 ⑰] 수술 입원 5일 차 유방암 수술 입원 5일 차. 목, 금요일이 되니 대부분 퇴원하고 4인실에 두 명만 남았다. 북적거림이 줄어들어 넓은 방을 혼자 쓰는 듯한 즐거움이 있다. 고요함과 적적함이 제법 마음에 든다. 흉터 부위가 아직 아파서 신체활동이 자유롭지는 않지만 아무 생각 없이 있을 수 있다는 건 지금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오늘 아침 퇴원하신 한 어머님은 나에게 '특히 자기는 더 밝게 지내라'며 긍정적인 마인드를 훈수 두고 가셨다. 나만큼 밝게 지내는 사람이 어딨나, 수술해서 아픈 사람한테 할 말인가, 나에 대해 뭘 아느냐며 발끈하는 마음이 솟아올랐지만 또 한편으로는 내가 알지 못하는 내 어떤 부분을 보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좋게 받아들이기로 했다.발끈하는 횟수도 줄여야지. 그분은 나름 애정을 담아..
마크 그리프, <모든 것에 반대한다> 중 "시민 불복종"에 대하여. 모든 것에 반대한다수전 손택은 해석에 반대한다. 로라 키프니스는 사랑에 반대했다. 그리고 마크 그리프는 ‘모든 것에 반대한다’. 장폴 사르트르, 수전 손택의 뒤를 잇는 작가이자 에세이스트로, 음악, TV 등 문화와 라이프 스타일에 관한 날카로운 통찰로 크게 호평받는 전방위적 문화비평가 마크 그리프의 비평 에세이 《모든 것에 반대한다》가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출간됐다. 습관적인 공감은 다양한 의견이 설 자리를 빼앗는다. ‘좋아요’는 엄청나게 달리지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는 SNS의 글들이 지금 우리 시대를 대변하고 있다. 저자 마크 그리프는 이런 현상에 이의를 제기하며 운동, 음식, 성 상품화, 음악, 리얼리티 쇼, 경찰, 파병 등 현대 사회의 논란거리들을 보란 듯이 가져와 조목조목 반론을 제기한다. 옳다..
[항암 일기 ⑯] 고상하게 늙고 싶다 크게 아프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고 한다. 확실히 죽음을 생각했을 때, 처음 발병을 알았을 때,종교적 깊이가 생겼던 것 같다. 하지만 난 원래도 삶에 집착하지 않았었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약간의 경쟁심도 별로 가지고 있지 않았다. 육아에 진심이었고, 가족들과 사람들을 사랑했고, 친절하게 대하려 애썼다. 갖지 못한 것에 욕심을 부린다거나 더 가진 것에 자만하지 않았다. 여력이 된다면 내 힘이 닿는 곳에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아프고 난 뒤에도 병을 모두 치료한 뒤에도 나의 삶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그렇게 생각하니 반대로 또 약간 억울한 마음이 든다. 약이 잘 듣지 않아 전절제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나, 모든 일이 빙빙 돌아 우회하는 것 같은 불안함. 그런 것들이 지금 내 마음에 ..
마크 그리프, <모든 것에 반대한다> 중 "진정한 재산"에 대하여 모든 것에 반대한다수전 손택은 해석에 반대한다. 로라 키프니스는 사랑에 반대했다. 그리고 마크 그리프는 ‘모든 것에 반대한다’. 장폴 사르트르, 수전 손택의 뒤를 잇는 작가이자 에세이스트로, 음악, TV 등 문화와 라이프 스타일에 관한 날카로운 통찰로 크게 호평받는 전방위적 문화비평가 마크 그리프의 비평 에세이 《모든 것에 반대한다》가 은행나무출판사에서 출간됐다. 습관적인 공감은 다양한 의견이 설 자리를 빼앗는다. ‘좋아요’는 엄청나게 달리지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는 SNS의 글들이 지금 우리 시대를 대변하고 있다. 저자 마크 그리프는 이런 현상에 이의를 제기하며 운동, 음식, 성 상품화, 음악, 리얼리티 쇼, 경찰, 파병 등 현대 사회의 논란거리들을 보란 듯이 가져와 조목조목 반론을 제기한다.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