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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항암 일기] 연재

[항암 일기⑭] 환자의 이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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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제 중간 평가 결과에서 부신에 결절이 생겼다는 결과를 보더니 
엄마의 불안감이 고조되었다. 
나는 부작용을 겪으면서 이사 준비도 해야 하고, 육아도 하느라 정신없이 보내고 있는데, 
그 와중에 병원을 옮겨보자고 닥달을 시작했다. 
아직 CT도 찍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도 나오지 않았는데, 엄마의 불안감은 제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짜증부터 났다. 
결과가 나오고 나서 생각해도 되는 부분인 데다가, 나는 나쁜 결과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항암 일정을 그대로 지키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다. 
항암 치료 중 재발이 될 가능성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사할 집에 들어가 입주 청소를 하고 있는데, 엄마가 전화를 해서 새 병원에 예약을 잡으라고 했다. 
나는 새 병원에 예약을 잡을 생각이 없고, 항암 일정을 생각하면 시간도 없었다. 
새 병원에 가려면 진료 기록을 요청해서 가져가야 했고,
그러려면 지금 담당하고 있는 의사와 라포가 깨질 우려도 있었다. 
우선 CT나 찍고, 결과나 보고 생각하자고 말하는데, 
역시 내 말투가 거슬렸는지 중간에 전화를 끊어버리는 엄마다. 
 
엄마와 나는 내가 어릴 때부터 친구처럼 지냈다. 
물론 엄마의 권위가 있었지만, 그래도 엄마는 딸에게 의지했다. 나 역시 그랬다. 
엄마와의 관계가 나의 철없는 기간을 더 길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많은 엄마와 딸의 관계가 그렇듯, 우리는 친밀하면서도 낯선 존재였다. 
 
그런 엄마가 2차 항암치료 즈음에 그런 말을 했다. 
"네가 죽으면 나도 따라 죽으려 했어.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를 키울 사람이 필요할 것 같아서 
따라 죽지도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자식은 결국 언젠가 다가올 부모님의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자식의 죽음을 생각하는 부모는 결코 없을 것이다. 
왜 이 말을 듣고서야 그 생각이 들었는지,
내 죽음 앞에서만 착잡했지, 엄마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엄마가 날 따라가겠다고 했을 때,
그제야 엄마의 먼 미래에 존재할 죽음, 하지만 예견된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엄마가 유방암이 완치되었을 때 했던 말을 기억한다. 
암이 재발하면 그 땐 항암치료를 받지 않고 죽음을 준비하겠다는 말이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일 거라고. 나는 그때 가서 생각하자고 말했지만,
엄마의 마음이 상당히 이해가 되기도 했다. 
엄마 자신을 생각하면 죽음을 맞이하고 준비하는 것이 건전한 방식이기도 할 것이었다. 
그래도 자식의 입장에서는 우리가 이별을 해야 한다는 건,
인생의 가장 큰 버팀목을 놓치게 된다는 건 슬픈 일이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엄마는 나에게 특별한 사람이다. 그토록 부정했음에도 불구하고. 
 
4차 항암치료 입원. 
시간이 정신없이 빨리 간다. 항암치료 퇴원 후 열흘간은 정신 못 차리고 아프다. 
그런 뒤에는 육아를 포함한 밀린 일들을 처리하느라 한 주가 급히 흘러간다. 
그래도 이번엔 입주 준비를 하느라 바빠서 그런지 기분은 제법 좋았다.
 
아프고 난 후에는 J성향이 더 강해져서 사람들과 내 일을 통제하려는 성향이 강해졌다 
나의 체력과 정신이 약해져서 혼자서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가하자 
사람들을 통제해서 일을 해결하려는 성향이 생겨버린 거다. 
그 와중에도 가장 큰 피해자는 역시 엄마다. 
나에게 힘듦을 토로하려다 내가 튕겨내버리는 바람에 다시 속상함을 꾸욱 삼키는 모습을 보았다. 
엄마는 나에게 맞추어 다시 엄마의 불안감과 속상함을 숨겼다. 
이번 기회에 좀 더 반성하고 행동을 교정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환자의 이기심을 좀 줄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