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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및 기고문들

일본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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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얘기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그동안 인간 본성의 부정적인 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도 미래와 인간, 자연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따뜻한 환타지 세계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아오던 미야자키 하야오. 특히 한국에서 얻은 대중적 인기는 대단해서 지브리 스튜디오 레이아웃전이 성황을 이룰 정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바람이 분다>의 개봉을 앞두고 한국인들의 배신감을 불러일으킨 듯한데요. <바람이 분다> 역시 기존의 작품들처럼 일본의 위기를 감싸려는 애틋한 시도를 품고 있지만, “군국주의 시절에 대한 향수와 함께 가미카제 전투기 제로센의 설계자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렇습니다. 2차 세계대전의 전범이었던 일본이 자국을 향한 비판적이고 반성적인 태도를 보여주지 못한 상태에서 곧바로 위안,회상으로 건너 뛴 듯한 인상을 주었던 겁니다. 더군다나 영화 개봉에 앞서서 지브리 스튜디오 계간지인 열풍에 발표한 내용들이 문제시되면서 영화 해석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는군요. 아베 정권을 비판한다거나,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할 것을 촉구한다거나 하는 식의 개념 발언(??)마저 본인의 우익성을 숨기기 위함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까지 불러일으킨 겁니다. 덕분에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의 발언에 대해 열심으로 해명을 해야만 했죠.

그는 인터뷰를 통해 <바람이 분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열심히 하는 사람의 방향성에 대해 말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들의 정치적 태도, 역사를 다루는 방식들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비판할 점들이 많이 있으며, 그에 대한 평들이 가지각색으로 등장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직 <바람이 분다>가 개봉조차 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의 진술이 어떻게 영화적 장치로 표현이 되었는지, 그리하여 스토리텔링의 완성도와 방향성이 적절했는지 평가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여기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사상검증을 하고자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제가 아직까지도 불편한 지점은 일본에 대한 거의 경기(驚氣)에 가까운 한국 민족의 반응입니다.

 

한국 민족이라는 말로 특정 사람들을 묶어버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인들에게 행동의 변화를 촉구한다거나 요구하는 주체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한국의 민족성을 완장으로 차고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경향이 점차 심해지고 있다는 점은 최근의 한일전과 <진격의 거인>의 우익심판 등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축구, 야구, 최근의 격투기를 포함한 국제경기에서 한일전이 있는 날에는 호프집에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한일전은 그야말로 광분하기 좋은 대상이기 때문이지요. 최근의 한일전에서는 욱일기와 안중근?이순신의 사진이 대비되면서 한창 입씨름이 벌어지기도 했고요. 그리고 그렇게 한일전의 열기는 경기의 종료와 함께 또 휘발되어버리고 맙니다. 이 모든 건 너무 오래 지속되어온 일이고, 흔한 일이 되어버려서 두 번 말하기 입이 아플 정도지요. 한일전에서 매번 볼 수 있는, 끓어오르는 애국심 자체를 비판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습니다. 그렇지만 매번, 이렇게 변함없이 민족의식을 발휘하는 대상이 스포츠 경기나 만화, 드라마, 영화 등의 오락거리들이 되는 것, 그리고 스트레스 배출식으로 발휘되는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이걸 언젠가 회귀할지도 모르는 제국주의나 파시즘 대한 두려움이 표출되는 것이라 보아야 할까요? 아니면 타자를 설정하고, 그것을 꼭 부여잡으며 놓아주지 않으려는 일종의 애증의 표현으로 보아야 할까요? 실제로 일본 애니매나 소설, 드라마 등등의 콘텐츠를 향한 한국인들의 문화적 애착들은 그 이상으로 강하지 않은가요? 그리고 왜 개개인의 취미나 기호는 민족이라는 이름 앞에서 항상 뒷전이 되는 것일까요.

개인이 한국인으로 호명될 때, 혹은 스스로 한국인으로서 무장할 때에는 그 개인이 추상화됩니다. 각각의 특성을 갖는 특수한 존재가 아니라 공통의 감각을 공유하는 존재가 되고는 하는 것입니다. 일본의 제일조선인 지식인인 서경식은 이렇게 묻습니다. “한국은 일본과는 다른가?” “‘그래도 지금은 생활이 나아졌다. 지금 잘 살고 있다. 이 넉넉한 생활의 바탕은 우리 국가를 위해서 희생한 국가 수난자, 국가 유공자 여러분 덕분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과연 그러한가? ~ 과거를 막연하게 포괄적으로 정당화하는 그런 논의에는 문제가 없을까? 문제가 있는데도 문제가 없는 것처럼 넘어가는 것은 국민주의적인 심성 때문이 아닐까?”라고.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우리 민족 역시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비판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 말은 너희나 먼저 반성하고 일본에게 따져라라고 따져 묻는 것이 아닙니다. 일본이 책임지고 사과한다고 해서 요이 땅하고 미래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건 국가, 민족적 차원에서 역사를 기억하고 따지기 이전에, 개개인이 사회?문화적으로 교류하고 연대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도 이 생각에 공감하며 개개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교류와 이해, 접점들이 변화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래서 화면을 통해 보이는 축구 경기장의 관중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전체 화면으로 보이는 그런 관중이 아니라 클로즈업으로 잡히는, 예를 들면 엄마와 아빠 사이에 앉아서 경기를 관람하는 아이나, 연인이 손 붙들고 경기를 관람하는 그런 광경들을 보면 그들 역시 개인들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개개인들이 붉은 악마와 같은 수식어로 추상될 때 많은 것들을 잊게 되는 것만 같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국민국가주의를 쉽게 극복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인터뷰를 통해 열심히 인생을 산 사람이 단죄를 받을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 단순 비교하는 건 곤란하지만 한 사람이 좋은 생각으로 열심히 산다고 꼭 의도한 좋은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라고 했지요. 그리고 (아마도) <바람이 분다>의 주제 역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영화의 평가를 뒤로하고서 이 발언만 가지고 생각해 본다면 개인이라는 존재는 국가라는 토대를 벗어나서 존재할 수 없다, 국가는 개인을 양성하는 토대가 될 것이며, 이 개인의 방향성을 정초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뭐 그런 의미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물론 이 발언은 아주 중요한 것이라 생각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군국주의의 시대, 모든 개인이 국가와 집단으로 수렴되는 시대에 개인이 있었으며 그 개인의 자유의지라는 것이 어떻게 발휘되는지를 조명하면 새로운 가능성을 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 개인의 판단이나 사고가 진정 개인에게 오롯이 부여되었다고는 볼 수 없을 겁니다. 국가라는 토대에 입각해서 자유로운 사고가 불가능하게 된 개인은 추상화됩니다. 이 추상성을 극복해야만 몰이해로 인한 복수와 분노, 반복과 경쟁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즉 문화와 취미가 개성으로 발휘되어 인간적 이해심으로 확장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일본, 보수, 우익을 향한 일시적이고 외형적인 분노의 표출이나 책임의 추궁 이전에 스스로를 향한 비판적 사고의식, 그리고 책임의식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역사의식이나 책임의식이란 건 무엇일까요. 타인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현 시대의 문제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를 비롯한 여러 작품은 일본 내부의 선량한 일본인을 위로하는 내재적 온정주의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위로는 일본 내부를 향한 것이어서 그 때문에 상처를 받았으나 그들에게 선량한 일본인으로 선택받지 못한 외부의 사람들은 충분히 위로할 수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일본 내외적으로 비판을 받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떤 주제의 콘텐츠가 필요할까요. 다음은 1946년에 발표된 허준의 <잔등>이라는 소설의 일부입니다.

 

꺼풀을 뒤집어쓴 혼령이면 게서 더 할 수 있으랴 할 한 개의 혼령이 문설주이기도 하고 문기둥이기도 한 한 편짝 통나무 기둥에 기대어 서 있었다. 더부룩이 내려덮인 머리칼 밑엔 어떤 얼굴을 한 사람인지 채 들여다볼 용기도 나지 아니하는 동안에, 헌 너즈레기 위에 다시 헌 너즈레기를 걸친 깡똥한 일본 사람들의 여자 옷 밑에 다리뼈와 복숭아뼈가 두드러져 나온 두 개 왕발이 흐물거리는 희미한 기름불 먼 그늘 속에 내어다 보였다. 한 팔을 명치끝까지 꺾어 올린 손바닥 위에는 옹큼한 한 개의 깡통이 들리어서 역시 그 먼 흐물거리는 희미한 불 그늘 속에서 둔탁한 빛을 반사하고 있으며-

저겁니다.”

할머니는 떨리는 낮은 목소리로 불시에 이러하였다. 낮으나 그것은 밑으로 흥분이 전파하여 들어가는 날카로운, 그러나 남의 처지에 자기의 몸을 놓고 생각하는 은근한 목소리였다.

저것들입니다.”

이렇게 되뇌는 소리에 나는 정신이 들어 노인이 밥 양푼에서 밥을 푸고 국솥에서 국을 떠 붓는 동안 잔 밑바닥에 남은 호주의 몇 모금을 짤끔거리고 입술에 적시고 있었다. ~

피난민도 형지 없이 어지러웠고 일본 사람들도 과연 눈을 거들떠보기 싫게 처참하지 아니함이 없었으나 생각하면 이것을 혁명이라 하는 것이었다. 혁명은 가혹한 것이었고, 또 가혹하여도 할 수 없을 것임에 불구하고 한 개의 배장사를 에워싸고 지나쳐간 짤막한 정경을 통하여 지금 마주 앉아 그 면면한 심정을 토로하는 이 밥장사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그것이 어떻게 된 배 한 알이며, 그것이 어떻게 된 밥 한 그릇이기에 덥석덥석 국에 말아줄 마음의 준비가 언제부터 이처럼 되어 있었느냐는 것은 나의 새로이 발견한 크나큰 경이 아닐 수 없었다. 경이보다도 그것은 인간 희망의 넓고 아름다운 시야를 거쳐서만 거둬들일 수 있는 하염없는 너그러운 슬픔 같은 곳에 나를 연하여 주었다.

나는 혓바닥에 쌉쌀한 뒷맛을 남겨놓고 간 미주(美酒)의 방울방울이 흠뻑 몸에 젖어들 듯이 넓고 너그러운 슬픔이 내 전신을 적셔 올라옴을 느끼었다. 그리고 때마침 네다섯 피난민들이 몸을 얼려가지고 흘흘거리고 들어서는 바람에 나는 자리를 내어주고 밖으로 나왔다.

 

중국 장춘(長春)에 머무르고 있다가 해방의 소식을 듣고 귀국하던 주인공 한국인 ’(방선생)가 청진에서 만난 어느 국밥집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묘사한 부분입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중국, 만주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가 귀국했지요. 귀국하는 것은 한국인뿐만이 아닙니다. ‘패전을 겪은 일본인들 역시 분노에 찬 중국인, 조선인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금품을 갈취당하는 등의 위험을 무릅쓰고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길입니다. ‘해방 패전이라는 이름을 사이에 두고 길항하는 두 국적의 사람들이 모두 청진을 지나 귀국합니다. 그 가운데에 서 있는 국밥집 할머니. 그 할머니는 아들을 전쟁 중에 잃고 해방의 기쁨보다는 혁명의 처참함을 몸소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 처참함을 온몸으로 지탱하는 이 할머니에게 헐벗고 지친 모습으로 찾아오는 일본인들,할머니는 이들에게 무상으로 국밥을 말아줍니다.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던 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경이를 느낍니다.

이 할머니의 태도도 위로와 온정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나 이 위로와 온정은 자신의 아픔을 밟고 있다는 데에 차이가 있지요. 일본인의 정체성을 일본이라는 단일한 민족감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함께 아픔을 견뎌내는 사람들로 인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형기(2006) <잔등>에서 볼 수 있는 허준의 태도를 3자의 윤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민족을 재건하려는 열기에서 한발자국 떨어져서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 그럼으로써 민족성에 함몰되지 않는 개인과 개인의 유대를 보고자 하는 태도를 말함입니다. 우리에게는 지금 이 할머니의 온정과, 이 온정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제3자의 윤리가 필요하지 않은가, 그것이 책임의식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축구경기의 플랜카드. 물론 역사의식은 반드시 필요하며 그것이 민주주의를 성장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에서 원하는 역사의식의 이중성과 고착성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역사란 어떤 역사인가요. 기억하고자 하는 것만 기억하는 역사는 건강하지 못합니다. 우익 아니면 민족, 민족주의 아니면 좌파 빨갱이라는 식의 속단은 이제 지겨울 정도입니다. 민주의식이 성장했다는 현 시점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국밥집 할머니가 보여주는 경이에 가까운 포용력이 아닙니다. 오히려 스포츠 경기장에서나 볼 수 있는 극단적인 분노의 표출이며 일본이라는 타자를 향한 위악에 가까운 경쟁의식입니다. 민주주의 의식이 충분히 성장하지 않은 채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단계는 지났습니다. 아니 이미 너무나도 후퇴했는지도 모릅니다. 일본을 향한 분노나 위악의 표출보다는 한국이라는 국가가 지니는 역사의식의 이중성을 반성하고 관용을 먼저 보여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뜨거운 민족의식보다는 냉정한 제3자의 정신이 더 필요한 것은 아닐지.

 

 

 

고모리 요이치?타카하시 테츠야 엮음, 이규수 옮김, 국가주의를 넘어서, 삼인, 1999.

서경식,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철수와 영희, 2009.

허준, 서재길 엮음, 허준 전집, 현대문학, 2009.

신형기, 허준과 윤리의 문제, 상허학보 17, 2006, 171-200



(critic-al.org 2013년 8월 16일자, 이원경 <일본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