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보고 왠지 글을 쓸고싶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레미제라블은 프랑스 혁명기를 살아가던 한 남자가 그 당시를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면서 쓴 글이다. 그만큼 고통스러운 작업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동시에, 절망속에 빠져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렇게도 구체적으로 묘사를 해 나갔던 그 남자는 참으로 독한 인간이었으리라고도 생각한다.
일개의 도둑이 성인으로 변화하는 장발장이라는 인물을 그리면서 그는 기도하는 마음을 가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동시에 한 명의 개인에게서 희망의 섬광을 보았으리라. 그것이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처음 느낀 점이다. 장발장과 판틴, 그리고 혁명군들, 죽어간 시민들의 신념이 남아서 프랑스를 지킬 것이라 예언했던 위고의 시선과 절망감은 너무나도 위대했다. 죽음 속에서 꽃피는 삶을 향한 열정과, 그 삶이 계속 되리라는 믿음이 프랑스의 미래를 만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듬해 공화정을 얻어낸 프랑스의 역사도 끝이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프랑스, 지금까지의 세계사도 위고가 바라본 것에서 그치지 않았으며, 그렇기에 지금까지도 레미제라블은 보편적 공감대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그 작품이 2013년 1월, 대한민국에 찾아왔다. 하지만 그 공감대가 그다지 달갑지가 않다.
레미제라블에 격하게 공감을 하는 이들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는가. 어느지점에서 공감대를 얻었는가.
움직이지 않는 시민들을 바라보며 답답해 하던 혁명군들을 바라보면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평생을 도망자 신세로 살아야만 했던 장발장을 보면서? 어두운 삶 속에서도 사랑을 꿈꾸었던 코제트를 보면서?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감동할 새가 없었다. 너무나도 차갑게 영화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3개월 전에 이 영화를 접했다면 나는 열광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이 영화를 보면서 쉽게 공감하고 쉽게 감동해버려선 안 된다. 고 생각한다.
영화속에는 등장하지 않는(뮤지컬은 모르겠다) 당대 왕정의 모습, 혁명군들이 반기를 들었던 바로 그 대상들. 대상없는 전쟁이 영화 안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또한 자베르라는, 레미제라블 속에서 태어난 하나의 악마같은 인간이 대상화되어 절대악처럼 그려지고,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는 그런 장면은 지금 우리에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장발장이 성인이 되어간 만큼 자베르 역시 극단의 악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지금 우리에게 대상지우기와 이분화는 오히려 위험하다.
이는 현실이다. 영화로 도피해선 안 된다. 감동적인 목소리에, 음악에, 배우들의 표정연기와 스토리에 감동해버려서는, 그렇게 상쇄시키고 분출해버려선 안 된다. 우리는 당대를 살았던 그, 위고의 시선으로 지금 우리 사회와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위고의 원작이 단순하게 소비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바라보아야 한다. 냉철하게, 날카롭게, 그만큼 뼈저리도록 고통스럽게, 그러면서도 빛을 찾으려는 절망적인 심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