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미 슌야, 박광현 옮김, <문화연구>, 동국대학교출판부, 2008.
Ⅰ. 문화를 문제화하다
1. 문제로서의 문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문화’는 인류학적, 역사적 기술의 대상이 되었으며 동시대의 중대한 ‘문제’로서 광범위하게 논의되기 시작한다. 특히 1920년대부터 1930년대는 ‘문화’개념이 문제시된 최초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레이먼드 윌리엄즈는 이 시기에 등장한 ‘문화’개념은 19세기 후반의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노동자 계급에 대한 교육전략이나 내셔널리즘과 결합하면서 확립되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매슈 아놀드가 지적했던 노동자 계급의 ‘무질서’를 가르치려는 부르주아의 ‘교양’전략과 일치한다. 즉 초기의 ‘문화’연구는 ‘교양’개념과 결부된 부르주아의 엘리트주의와 합치되면서, ‘무질서’안에 놓인 노동자계급을 구출하고 국민적 문화를 통합하기 위한 연구였다.
특히 보수수적 입장의 문학연구자인 F.R 리비스와 T.S 엘리엇은 산업혁명 이후에 빠르게 변화하는 ‘문화’인 헐리웃 영화, 라디오, 광고 산업 등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전통문화를 유지할 것을 강조하였다. 엘리엇은 문화를 통해 국민국가의 통합을 이루어야 할 것을 주장하였다. 1930년대 이후에 대중문화는 테오도르 아도르노와 같은 좌파적 지식인에게도 비판을 받는다. 아도르노는 미국의 대량소비 시스템에 의해 노동자의 취향과 수준이 지배당하는 상황을 비판하며, 19세기 이후 문화산업의 파시즘적 성향을 비판한다.
2. 노동자 계급 문화로부터
아도르노의 태도와 연관하여 조지 오웰과 호가트는 영국 노동자계급의 자유롭고 전통적인 생활세계에 매스 미디어와 아메리카니즘이 침투하는 것을 경계했다. 이들은 전통적인 계급문화를 바탕으로 문화가 변화하는 과정을 ‘가치의 퇴락’으로 파악하였고, 현대문화를 멸시하는 엘리트주의적인 보수주의 연구자들과 비슷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호가트가 노동자의 생활세계 안에 계급주의적 입장과 동시에 아메리카니즘을 받아들이려는 젊은 세대층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스튜어트 홀은 계급문화를 고수하던 기존의 틀을 전복하고 대중예술을 다른 측면에서 살피려고 한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대중문화의 구체적인 스타일이나 형식이 산업계측의 조작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 사이에서 즐기고자 하는 욕망과 산업계측의 전략이 절충되면서 발생한 결과라고 보았다. 홀의 주장의 영향으로 60년대의 문화연구에서는 문학, 영화, 신문, 대중음악, 텔레비전 등의 텍스트의 정밀한 독해와 텍스트 생한, 유통, 소비의 차원을 연구하는 두 가지 경향이 발생한다.
3. 문화주의와 구조주의
문화연구에 알튀세르와 그람시가 도입되기 시작한 1960년대 말은 문화연구의 흐름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이전에는 마르크스 이론과 프랑스의 구조주의가 거의 구별 없이 문화연구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즉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의 완벽한 분리, 그리고 일방적이고 고정된 영향관계가 전제되어 있었던 것이다. 스튜어트 홀은 1980년에 「문화연구의 두 가지 패러다임」이라는 논문에서 ‘문화주의’와 ‘구조주의’를 구분한다. 홀은 모든 문화가 국가나 민족 담론에 의해, 혹은 경제적인 하부구조에 의해 결정된다는 도식을 거부하고,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집단적 영위의 소산”이라고 밝힌다. 홀은 문화주의보다 구조주의가 일방적으로 우월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양자의 관계는 상보적인 것이지 일방적인 관계가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 사회가 언어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역사를 형성하는 ‘주체적인 것the subject’을 놓치려고 하지 않았다.
윌리엄즈는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헤게모니가 일방적으로 사회의식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대항하는 대중들을 설득하면서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중문화를 주목하였다. 즉 일상적인 상황에서 발생하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힘의 ‘복잡한 뒤엉킴’에서 헤게모니가 전달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헤게모니 이론에서는 의식화된 신념체계 뿐만 아니라 무의식적 신체활동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4. 대중문화와 경계의 정치학
스튜어트 홀과 윌리엄즈의 영향으로 그 이후의 문화연구는 사회를 지배하는 대중문화의 모든 측면을 다루면서도, 주변문화와의 관계, 전복, 대안적인 문화 등을 동시에 다루게 된다. 대표적으로 존 피스크는 대중문화를 사회적 약자의 문화이며, 지배세력과 민중의 대립 사이에서 만들어진다고 정의한다. 하지만 피스크는 지배적인 문화와 대중문화가 항상 투쟁상태에 있다는 것을 본질적으로 생각하면서, 대중 개념을 단순화하고 있다.
이에 반해 미셸 드 세르토는 대항이라는 것이 항상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상생활 속의 구체적 상황 안에서 맥락화 되는 형식을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요한 것은 저항을 실현하는 ‘실천 방식’인데 세르토는 그것을 ‘소비행위’에서 찾는다. ‘소비행위’는 어느 곳에나 존재하며, 권력의 눈을 피하면서도 다양한 책략을 부리는 방식이다. ‘소비행위’를 통해 감시의 그물망을 피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항은 ‘일상의 역사성’ 가운데 형성된다. 이들의 주장에 의해 ‘대중적인 것’이란 담론의 통제를 비켜가는 것이며 대중문화를 연구한다는 것은 일종의 콜로니얼한 시선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드러낸다. 따라서 ‘대중적인 것’을 대항문화적 성격이나 계급론적으로 정의할 것이 아니라, 계급과 인종, 젠더 등의 여러 차원이 교차하는 다층적 항쟁의 장으로 파악할 것이 요구된다.
Ⅱ. 문화를 다시 읽다
제1장 하위문화sub-culture의 아이덴티티
1. 노동자계급의 문화와 하위문화
1970년대 이후 문화연구 안에서 하위문화를 둘러싼 문제의식이 확대된다. 하위문화는 지배적인 문화에서 배제된 문화로서,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를 상대화하는 문화적 세계로 인식되어 왔다. 이러한 하위문화 개념을 문화이론에 도입한 하워드 베커는 청소년의 ‘비행’이나 ‘일탈’도 하위문화로 정의한다. 그는 ‘일탈’이란 인간 행위의 본질적인 측면이 아니라 타자에 의해 규칙이나 제재를 위반한 사람에게 적용된 레테르라고 주장한다. 즉 지배적 가치규범에 의해 타자가 발생한다는 관점을 명확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필 코헨 역시 공장 노동자의 문화를 하위문화로 인식하는 것은 도시의 발생으로 인해 그들의 거주환경이 외곽지역으로 변하면서 전통적인 커뮤니티 생활이 붕괴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청소년과 노동자들의 하위문화는 자신들을 타자로 호명했던 지배문화에 저항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다. 베커와 코헨의 주장은 노동자계급의 문화가 아메리카니즘에 의해 침식되었다고 비판했던 1950년대 호가트의 주장과도 대립된다.
2. 청년문화론에서 하위문화의 정치학으로
베커와 코헨의 문제제기로 인해 1970년대의 문화연구는 ‘노동자계급 청년의 하위문화’에 집중된다. 대다수의 매스컴에서는 전후시대의 청년문화를 계급의식이 배제된 새로운 소비중심의 문화로 언급했지만, 홀은 그 매스컴들이 문화의 본질적인 문제점을 은폐한다고 비판하였다. 청년문화는 단순히 부르주아적, 풍요로움을 대표하는 상징으로만 여겨졌다는 것이다. 홀은 청소년의 문화는 지배적 계급인 부모세대의 문화나 지배적인 문화와 절충한 끝에 등장한 것이라 주장하였다. 이 두 가지 측면이 각각 어떠한 방식으로 연관되어 있는지를 추적하는 것이 홀의 문제제기였다.
3. 청소년 문화에서의 자율과 종속
폴 윌리스와 딕 헵디지는 청소년 문화를 구체적으로 분석하면서 심리적 상징들을 발견하고자 하였다. 윌리스는 ‘반항아들’이 ‘범생이들’을 배척하는 동시에 우월감을 지니면서 무시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들은 학교의 권위에 반역하면서 모범생과 상징적으로 차이를 두면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확립하는 것이다. 반항아가 범생이보다 우위에 있을 수 있는 것은 학교규범을 재해석하고 다른 의미를 취하는 독자적 관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반항아들의 이러한 행동과 신념은 코드의 재해석과 상대화, 즉 대항으로 볼 수 있다.
4. 계급과 인종의 하위문화적인 교착
딕 헵디지는 윌리스의 관점에서 더 나아가 계급과 에스니시티의 경계를 다룬다. 헵디지는 하위문화는 기존의 사물의 사용법을 파괴해고 새로운 문맥으로 전유함으로써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를 찾는다고 말한다. ‘기호=이데올로기’의 공식을 파괴하고 자신들의 방식으로 기호를 전유하는 방식, ‘스타일=기호’로 만드는 과정이 바로 그것이다. 이 관심은 인종적인 아이덴티티와도 결부된다. 예를 들어 백인 하위문화에서 유행하는 컨트리 앤드 웨스턴이 흑인의 가스펠, 블루스와 결합하면서 록큰롤을 탄생시킨 것을 볼 수 있다. 하위문화들의 이러한 결합이 다른 종류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었으며 다른 인종 간 대화의 장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청년들의 반항은 소비 스타일로 드러난다. 이들의 반항은 계급의 영역과 상업의 영역을 분리해서 볼 수 없다. 스타일로 가득 찬 그들의 신체적 영역 자체에 양자가 혼재되어 있으며, 그들의 아이덴티티를 증명하고 있다.
5. 하위문화적인 소비와 젠더의 정치
하지만 70년대의 위와 같은 하위문화 연구는 상품의 표상이나 생산의 방법은 분석하고 있지만 소비의 측면, 즉 경험하는 자들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았다. 또한 젠더론적인 관점이 결여되어 있어서 그 문화를 받아들이거나 다시 전유할 수 있는 여성의 시각이 배제되어 있다는 점도 비판을 받았다 헵디지는 1970년대 데이비드 보위와 같은 젠더적 문제제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타일의 문제로만 파악했다. 젠더문제와 일상성의 문제는 이후에 미디어의 오디언스 연구(수용자연구)에서 가능해진다.
제2장 항쟁의 장으로서의 미디어
1. 레이먼드 윌리엄즈에 있어서 미디어의 정치
영국의 문화연구는 대중문화비판, 마르크스주의 문화유물론, 노동자계급을 기반으로 한 성인교육이 결합되면서 양성된다. 레이먼드 윌리엄즈와 스튜어트 홀은 이 연구의 선두에 서 있다. 윌리엄즈는 문학보다도 미디어에 관심을 가진다. 텍스트가 어떤 산업 메커니즘에서 발생하는지, 어떠한 방식으로 표현되는지, 어떤 독자층과 만나게 되는지를 모두 고려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윌리엄즈는 문화연구의 초점을 신문기사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두었다. 그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고정된 텍스트로 보는 것을 부정한다. 프로그램 자체는 다양한 사회적 실천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양상의 ‘흐름’이기 때문에, 고유한 특성을 가진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윌리엄즈는 미디어를 고유한 것으로 파악하는 미국의 매스컴 연구와 맥루한의 주장을 비판한다.
2. 스튜어트 홀에 있어서 미디어의 정치
스튜어트 홀 역시 ‘방송’이나 ‘매스 커뮤니케이션’ 개념을 자명하게 받아들이는 매스컴연구의 방식을 비판한다. 홀은 오디언스 연구를 통해 ‘인코딩/디코딩’의 상호관계를 중시한다. ‘인코딩’이 담론적인 메커니즘을 창출한다면, 인코딩을 받아들이는 수용자는 ‘디코딩’함으로써 인코딩으로부터 상대적 자율성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홀에게 미디어 텍스트는 생산과 소비의 양면에서 서로 투쟁하는 기호적인 장이다. 홀은 양자의 상호관계가 다양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독자의 입장이 지배적-헤게모니적 위치, 절충적-네고시에이션적 위치, 대항적 위치의 세 가지로 구분된다고 분석한다. 홀은 세 가지 입장을 언급하면서도 발신자와 수신자의 관계가 투명하고 자명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스튜어트 홀은 현대를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현대는 이질적인 가치와 문화가 단순히 ‘일탈’의 문제로 취급됨으로 인해 이데올로기성을 은폐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치형성의 과정에 주목해야 하며 ‘정상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비판해야 한다고 보았다.
3. 텍스트, 미디어, 이데올로기
1970년대 말 유럽에서는 기호론이나 정신분석의 영향으로 미디어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영화나 텔레비전을 하나의 텍스트로 보고 이데올로기와 그 텍스트에 호명된 주체 사이의 관계를 찾는 연구가 다양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문화연구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연구대상을 고정되어 있는 텍스트로 볼 것이냐의 문제에 있었다. ‘리얼리즘’은 스스로 성립하게 된 배경을 은폐함으로써 ‘진리’가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숨기게 된다. 또한 수용자의 특권적 위치도 은폐한다. 따라서 프로그램과 텍스트의 개념은 구별되어야 한다. 미디어는 그 자체로 여러 가지의 텍스트가 서로 얽힌 상호텍스트적인 결과물이다. 텔레비전이 ‘리얼’한 이유는 그것이 현실을 재현하기 때문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지배적인 감각을 재생산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4. 항쟁의 장으로서의 오디언스
문화연구에서 수용자의 위치와 그 영향력을 간과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은 계속해서 강조되어 왔다. 하지만 그것은 대중문화연구가 텍스트 연구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일상적 실천의 관심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전제로 해야 한다. 즉 ‘수용자의 능동성’은 하위주체에서 발발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의 시작점이 역전되어 수용자의 주체성이 계급성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오디언스는 계급이나 젠더, 에스니시티를 둘러싼 사회적 권력의 불균등한 배분 속에 구조화 되어있다.
제3장 글로벌global/로컬local한 일상의 정치학으로
1. 세계화와 내셔널리즘의 재정의
스튜어트 홀은 영국의 신보수주의인 대처리즘을 세계화의 급속한 진행에 대한 반응으로 분석한다. 세계화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생한 대규모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변용을 의미하는 ‘새로운 시대’를 뜻한다. 좌파는 가볍게 넘긴 새로운 시대의 감각을 신우파는 빠르게 체득했던 것이다. 이전엔 미디어와 수용자의 관계에서만 머물러 있던 문화연구는 세계화와 포스트 식민지화의 권력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테사 모리스 스즈키는 오늘날의 내셔널리즘이 포퓰리즘(populism)적 성격을 지닌다고 지적하며, 내셔널리즘의 국제적 상품성, 미디어와의 연관성을 분석하기 시작한다.
2. 세계화 속의 문화개념
세계화 문제로 넘어서면 문화연구의 문제가 보다 복잡해진다. 문화가 국가나 민족, 지역집단과 같이 동질의 소속감을 형성하는 일정한 특성으로 해석되거나(문화Ⅰ), 사회현상 안에서 비문화와 구별되는 것, 비교양적인 것으로 해석(문화Ⅱ)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임마뉴엘 월러스틴은 양자를 구분하면서, 문화Ⅰ에서는 집단과 그 구성원의 행동양식이 유사하다는 것 정도밖에는 발견할 수 없는 반면에 문화Ⅱ는 자본주의의 근본적 모순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예로 인종주의를 들 수 있다. 국가를 초월하여 노동자와 사용자를 구분하면서도 불평등한 공동체를 정당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문화개념 역시 협소하여 현실의 문화상황을 파악하는데 필요한 역동성을 지니지 못한다는 단점을 지닌다.
3. 문화제국주의 모델을 넘어서
제2차대전 이후 세계화의 흐름에 따라 미국이 전세계의 자본과 문화를 규정짓는 권위를 지니게 되자, 미국중심의 새로운 제국주의가 형성된다. 이에 대한 이론을 문화제국주의론이라 하며, 대대적인 비판의 대상이 된다. 이는 미국의 자본과 정보가 국경을 초월하면서 제3국이 미국적 생활양식을 욕망하게 되는 것, 그와 동시에 제3세계의 문화가 자율적으로 발전할 수 없게 되는 것을 비판하는 측면이다. 그러나 앞서 반복적으로 언급했듯이, 미국의 일방적인 미디어 생산물 조작은 불가능하다. 문화제국주의론은 수용자의 해석과정 사이에 작용하는 역동성을 간과하고 다국적 기업의 힘을 과대평가하며, 스스로의 지배를 용인하는 입장이다. 이러한 비판이 대두되자 1980년대 이후부터는 소비를 이용한 저항, 신체를 이용한 정치화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진다. 흥미로운 예로 미국의 문화가 일본에 유입되면서 그 가치가 순화(domestication)된다는 것을 들 수 있다.
4. 세계화의 문화지정학
세계화에 대항하여 문화본질주의자가 될 것인가, 세계화의 흐름에 맞추어 자신의 존재를 시장화 할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한 문화연구는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상상력’에 희망을 둔다. 90년대의 문화연구자 아르준 아파 두라이는 에스노스케이프, 미디어스케이프, 이데오스케이프, 테크노스케이프, 파이낸스케이프라는 다섯 가지 관계를 언급하면서 다방면에서 볼 수 있는 지역적인(local)한 힘의 이동에 주목한다. 스케이프(scape)라는 접미사를 사용한 이유는 이 이동들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주체의 위치에 따라 굴절되고 다른 방식으로 구성된다는 점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헤게모니적 힘을 ‘글로벌’로, 그에 맞서는 대항적 힘을 ‘로컬’로 두는 이항대립에 빠지지 않고 다층적 변용과정으로서 세계화를 파악하려는 노력은 계속된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과 유럽에 ‘글로벌’한 강력한 권력이, 제3세계는 그에 맞서야만 하는 로컬적인 위치에 놓여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5. 글로벌/로컬적인 미디어의 공간정치
최근 십여 년 동안은 문화연구와 지리학, 세계화와 로컬화를 둘러싼 논의들에 경계선이 사라지고 있다. 데이비드 하비 는 ‘시간=공간의 압축’으로 세계화를 설명한다. 그 과정에서 세계의 모든 공간은 ‘탈영토화’되었고, 공간이 그 전에 지녔던 의미 또한 박탈되었으며, 식민지와 제국의 행정관리의 정도에 맞춰서 ‘재영토화’되었다. 데이비드 하비는 이처럼 지역, 장소의 의미가 사라지는 동시에 장소의 의미가 다시 발생할 수 있다고 보았다. 시=공간의 압축 속에서 아이덴티티를 추구하는 운동이 한 장소에 뿌리내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D.매시는 그것을 비판하면서 하비가 다시 이원화에 빠지고 있음을 경계했다. 그는 젠더, 인종, 계급이 다중적으로 절충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미시적 공간에서 발생하는 모든 관계가 전 지구적 공간과 서로 작용하면서 다시 창출될 수 있다고 결론 맺는다.
※ 문화연구는 은폐된 권력구조·이데올로기를 드러내는 작업으로서, 오늘날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이 수행하고자 하는 목적과 부합한다. 경제·사회·문화·미디어에 갇혀있는 인간들의 문제와 정치·인종·계급·젠더의 폭력을 받는 사람들의 문제가 다르다고 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연구를 정치적 맥락에서 떼어내어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적 문제는 무엇일까. 푸코의 작업이 바로 정치적 맥락에 닿아있다고 볼 수 있다. 일상의 인간들을 훈육함으로써 권력의 충실한 노예로 만드는 것. 그 노예화에서 벗어나고자 함이 아닌가. 혼종적·다층적·상호연관적이라는 단어들은 여전히 모호하며 실천가능성의 영역을 비켜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연구는 끊임없는 비평작업의 힘을 신뢰한다. 정당의 유무, 정치적 집단행동의 유무를 떠나 대중들의 사소한 실천과 그 실천을 공론화하는 비평의 힘을 신뢰하는 것이다.
다만 걱정되는 점이 있다. 미시적 실천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계급적 관계가 전제되어야만 한다는 것, 그렇다면 이 뫼비우스의 굴레를 벗을 수는 있을까 하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