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저자 미간 모리스는 당대의 문화 연구의 흐름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한다. 하나는 장 보드리야르가 ‘진부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일상성에 대하여 언급한 것이다. ‘진부함’이라는 용어는 대중들이 반복적으로 영위하는 일상이나 일상성을 가리킨다. 장 보드리야르는 실재(reality)가 시뮬라르크에 의해 대체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대중들이 미디어를 통해 받아들이는 정보를 비롯한 일상들이 모두 진부해졌다고 말한다. 오히려 가상에 의한 사건이 현실보다 더 강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장 보드리야르의 이론에 따르면 주체는 진부한 것이 되고, 미디어에 의한 가상세계가 더 치명적인 영향력을 지니게 된다. 모리스는 장 보드리야르의 언급이 지니는 영향력을 인정하면서도 주체의 일상성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함을 비판한다.
반면, 문화연구자들은 ‘진부함’을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해석한다. 대표적으로 존 피크스의 ‘영국의 문화연구’를 볼 수 있다. 문화연구자들은 문화적인 징후를 통해서, 그리고 일상의 모든 국면에서 대중들의 저항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중문화를 통해 ‘전복’의 요소를 파헤치는 것이 문화연구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모리스는 이들의 연구 또한 너무 지나치게 긍정적이라고 비판한다. 미간 모리스는 장 보드리야르와 문화연구자들의 주장은 상반되지만, 생산과 소비의 측면에 천착하여 타자의 목소리와 그들의 실천 가능성을 소거했다는 점에서 양자를 모두 비판한다. 한 시대의 단적인 면만을 확대해서 해석하려는 단편적인 ‘지적유행’을 벗어나 타자의 실천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방법을 취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특히 문화연구자들은 ‘대중’을 자신들의 이론에 대입하여 자기도취적인 연구를 반복한다고 비판한다. 자신들의 권위를 위하여 대중의 목소리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즉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들려주지 않고 문화연구자들이 ‘재현’한다는 점에서 다시한번 그들을 ‘주체화시키고 있다는 것’(호명)이다.(328) 모리스는 그 대신에 ‘산만한 수용’을 실천해야 한다고 본다. 설명하지 않고, ‘산만함(disttaction)’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대중문화의 삶을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문화연구자들과 그 밖의 연구자들이 학문적이고 정통적인 이론을 만들어 낼 때 대중적 실천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왜곡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모리스가 주장하는 대안은 무엇인가. 그는 미셸 드 세르토의 『일상 생활의 실천』을 제시한다. 미셸 드 세르토는 일상의 실천을 분석하고, 그러한 실천들이 지니는 의미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특히 이데올로기적 시스템 안에서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대중이 “담론이 생산되는 장소를 재구성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339) 대중은 보이지 않게 “무엇인가를 만들고”, “지배를 회피하고”, 지배하는 자들의 눈을 “속이면서” 저항한다. 그렇기 때문에 장 보드리야르가 회피했던 문제, 즉 ‘진부함’에 관한 문제는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그것은 대중들이 살아 숨 쉬는 일상의 문제이며 이데올로기 시스템 안에서 벌어지는 투쟁의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