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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항암 일기] 연재

[항암 일기 ㉑] 항암 환자 운동하기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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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앉아 핸드폰으로 우리 동네 맨발 걷기 공원을 찾아보자.

놀랍게도 꼭 한 두개씩은 나올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놀라웠는데, 평소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평소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암에 걸리고 나면 맨발 걷기를 꼭 권유받게 된다. 

처음에는 맨발로 어떻게 걷나 생각하던 사람들도 옹기종기 모여

비슷한 머리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이 걷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마치 무언의 동호회에 참여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위안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맨발걷기를 처음 권유받은 건 항암 4회 차 정도 진행이 되었을 때였다. 

엄마의 거래처 사장님이 투병중이시라는 이야기는 1년 전에 들어서 알고 있었다. 

좋은 분인데 잘 이겨내셨으면 좋겠다며 걱정하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워낙 진행이 많이 된 4기 암이었기 때문에 회복이 어렵지 않을까, 하고 무심히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사실상 나는 모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더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랬던 분을 내가 항암 4회 차로 힘들어하던 중에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내가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엉거주춤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분과 엄마가 이야기를 나누셨다고 한다. 

딸도 암에 걸려 지금 항암 중이라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 이해해 달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분이 대번에 맨발걷기를 추천하신 것이다. 

이야기인 즉, 그분은 워낙 치료의 경과가 좋지 않아 더 이상 할 수 있는 치료가 없었고, 

유일하게 맨발걷기를 꾸준히 하셨는데, 암 수치가 90% 줄었다는 것이었다. 

여러 조사를 해보았는데, 맨발 걷기가 가장 좋을 것 같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따님을 데리고 죽어라고 맨발걷기를 하시라고 권유하고 그분은 집으로 돌아가셨다. 

가까운 분의 이야기가 엄마의 마음을 설득했고 엄마는 그날부터 나를 데리고 황톳길을 걷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우리 동네에 잘 만들어진 황톳길이 두 군데나 있었다. 

그리고 그곳은 아주 핫플레이스였다. 

 

한 곳은 공간이 넓지는 않지만 부드러운 황톳길이 잘 만들어져 있어서 암환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주말에 가보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님들이 함께 황토에서 찰박찰박 시간을 보내기도 하셨다. 

또 다른 곳은 공간이 아주 넓었는데, 중간중간 마른 흙이 있어 걷기에 약간 힘들었다.

하지만 걸을 수 있는 공간이 넓어서 사람이 많아도 여유로웠고, 운동양도 늘릴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맨발 걷기를 다니다 보니, 평소에는 가보지 못했던 곳을 걸어갈 수 있었고, 새로운 골목길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맨발걷기에 천착하고 있었다는 게 신기했다. 

마치 새로운 세계에 입성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엄마는 맨발걷기에 집중했고, 효과가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나는 긴가민가 했지만, 일단 숙면이나 피부미용에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환자는 잠을 잘 자야 한다는데, 맨발 걷기를 시작한 이후부터 새벽에 깨는 일이 줄었기 때문에

실제로 맨발걷기의 숙면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었다. 

또 하루 걷고 오면 피부가 반짝반짝해지기도 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어싱(earthing)이라는 공식 명칭이 있다는 것도 재미있었다. 

 

관련 논문이 있다고 해서 찾아보았다. 

한국 논문에서는 딱히 맨발걷기의 효과를 입증한 것을 찾지는 못했다. 

해외 논문에서 찾아볼 수 있었는데, 몇 편 되지 않았다. 

그리고 어씽 테라피의 선풍적인 인기를 만들어낸 논문인 것으로 보이는 논문을 한 편 발견했다. 

2012년에 발표된 가에탄 슈발리에Gaétan Chevalier의 <Earthing: health implications of reconnecting the human body to the Earth′ s surface electrons>이라는 논문에서 강조한 어싱의 효과는 수면효과와 만성통증의 감소, 코르티솔의 분비로 인한 스트레스 감소, 심박수 안정성 등이다.

그중에서도 이 논문에서 강조한 것은 땅과의 접지(earthing)를 통해서

전기생리학적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땅과 인간이 접지됨으로써 신체의 전기적 잠재력이 지구의 전기적 잠재력과 연동되면서 

신체 내부의 전기장을 감소시키고 불안정한 신체 에너지를 안정화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리처드 파인만의 이론을 주장의 근거로 제시한다.

신체 전위가 지구의 전기적 잠재력과 동일시되는 것의 효과를 파인만에게서 찾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의 해설 때문에, 그리고 이를 통해 효과를 보았다는 여러 증언 덕분에

맨발 걷기 운동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관련 연구가 이어지지 않았고, 이 이상의 후속 연구가 없다는 점,

그리고 전기장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충분히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았다는 점들 때문에

여전히 많은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나도 여전히 이 이론을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지만, 

이 시기에 마땅히 다른 운동을 하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그나마 할 수 있는 운동으로 맨발 걷기를 선택했다. 

정말 숙면과 피부미용에 좋은 효과가 나타났다. 위장의 정상화에도 도움이 되었던 것같다. 

하지만 다른 부분에 도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항암 치료 중인 환자들은 발 부분의 상처로 인한 감염으로 치명적인 부상이 우려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나 역시 처음에 걸을 때는 피부가 까칠까칠 벗겨지기도 해서 밴드를 감고 걷기도 했었다. 

그래서 땅이 딱딱해지는 겨울에는 걷지 않았다. 눈이 얼어 날카로워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뭐라도 하나 도움이 될 만한 운동을 찾아서

안심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여전히 맹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맨발을 걸으면서 느끼는 자유로움과 평온함은 나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괜찮은 운동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