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대신해서 쓰는 글.
요즘에는 일기를 다시 자주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잘 쓰려고 하기보다는 이것저것 주저리 주저리 쓰다 보면 뭔가 언젠가는 정리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박사논문 주제라고 선생님께 보여드린 글은 결국 엎어졌다. 사실 나 스스로도 정리되지 않던 주제라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글을 쓰면서 정리가 되었다고, 해볼 수 있겟다고 생각하면서 보여드리게 되었었는데. 공부를 제대로 한 것 같지 않다는 피드백을 받고 충격을 적지 않게 받기도 했다. 공부가 부족한 건 사실이었고, 한 공부도 다 보여드리지 않은 것도 있었다. 난, 조금이라도 정리된 나의 글을 보여드리고 싶었던 거니까. 그분들의 충고가 틀린 것도 아니지만 약간 억울한 것도 있고. 어쨌든 엎어진 주제니까 새로운 주제를 잡아야 한다. 그리 좌절할 것도 아닌 상황인 것 같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무슨 글을 다시 시작해야 하나, 그러는 것보다 차라리 다른 일을 시작하는 게 낮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박사과정에 들어선지 벌써 4년. 박사과정동안 제대로 된 논문을 써 본 일이 없다는 것이 꽤나 괴롭고, 이제는 무엇을 가지고 논문을 써야할지도 모르겠다. 이 길이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무겁게 나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꿈에 대한 글을 써보라고 권유했다. "꿈꾸는 자는 없다"고, 지금 행동하는 것이 나를 구성하는 것이라고, 책임지지 못할 아주 이상적인 이야기들을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았다. 처음 그 영화를 보여줄 때에는 나 스스로도 꽤나 확신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자존심이 상하고, 무책임하게 느껴진다.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자만한 위치가 나에게 적합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동안 이 일이 가장 나에게 잘 어울리고 적합한 것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나만의 특별한 것이 모두 사라지는 것만 같은 그런, 그런 느낌이 든다.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 무엇이었을까.
나에게는, 그 사람의 주체성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오빠 말대로 무슨 일을 하든 돈은 벌 수 있다. 내가 나이지 못하게 될 때 그것이 정말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집안이 망하는 것보다도 나의 주체성이 무너지는 게 가장 무섭고 힘이 든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겠지만, 그런 내 생각이 무시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가장 문제는, 내가 나를 잃어버린 지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공부가 재미가 없다. 무엇을 궁금해야 할지 모르겠다. 세상만사가 뻔하게 느껴지고, 그렇다고 보이지 않는 내면까지 끄집어내어 비평하는 건 피곤하다. 비인간적이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 왜 이렇게 된 걸까. 나는 누구일까.
스물 아홉 살의 방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