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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항암 일기] 연재

[항암 일기⑬] 항암 치료 중 육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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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다섯 살이 되던 해 1월에 암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조금 더 빨리 암이 생겼다면 이 아이를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고, 엄마의 손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에 분리되었을 수도 있다. 출생 후 4년간 나는 아이와 밀접한 시간을 보냈고, 즐거운 경험을 해주려 노력했다. 나름 프리랜서로 집에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 차를 사용할 수 있어서 아빠가 바빠도 기동력 있게 생활할 수 있었던 덕분이기도 하다. 

 

  이런 내 방식에는 큰 단점도 있었다.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서 안 그래도 외동인데 또래집단과의 소통에 어려움이 생겼다는 것이다. 응답을 빠르게 해주는 어른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 의존하는 버릇이 생겼고, 또래에게는 자기 이야기만 하다가 소통이 안 되면 자리를 피해버리는 경향도 생겼다. 이런 행동을 교정해야겠다고 생각한 시점에 발병해 버려서 적극적인 훈육을 하기 어려워졌다. 다행한 일인지 5세가 되는 해에는 아동 수가 150명이 되는 큰 원으로 이동하게 되어,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원에서 사회생활을 배우고 있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중이다. 

 

  친정 엄마는 나의 치료를 우선해야 한다며 아이의 보육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계신다. 하지만 그동안 쌓인 내 방식의 육아나 아이의 방식에 적응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으셨고, 무엇보다 체력적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으셨다. 그래서 가급적 내가 집에 있을 때에는 직접 육아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항암 치료 퇴원 후 열흘은 심한 부작용을 겪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럴 때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건 실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요양병원 1인실에 입원해서 아이와 함께 지낸 적도 있었는데, 정작 쉬지도 못하고 고통받다가 결국 코로나에 감염돼 3일만에 집으로 돌아온 일도 있었다. 그래도 아이는 엄마와 떨어져 있을 때 엄마가 어떤 병원에 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는 안도하는 눈치였다. 

 

  항암 1회차 입원 때는 이렇게 오랫동안 분리되어 있어 본 적이 없었던 아이가 충격을 받았다. 집에 돌아온 엄마가 예전처럼 안아주지도 못하고, 놀아주지도 않고, 침대에만 누워있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엄마가 '힘이 없다'는 걸 처음 겪은 아이는 이대로 엄마가 회복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는지, 오히려 과도하게 '힘'에 집착했다. 멱살을 잡고 힘내보라며 흔들어댈 때도 나는 무력하게 쓰러지고 말았다. 그 모습에 절망하며 우는 아이를 끌어안고 함께 우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기간도 그리 길지 않았다. 

 

  항암 후 2주차에는 부작용이 줄어들며 다시 아이와 일상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차차 아이는 엄마가 '힘이 없을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곧 엄마의 체력이 원래대로 돌아올 거란 사실도. 다만 힘 없이 축 처지는 모습을 본 아이는 원에서 그 모습을 모방하기 시작했다. 하기 싫은 일이 있을 때나 음식을 먹고 싶지 않을 때마다 식탁에 축 늘어져서 쓰러지는 행동을 했다. 놀란 선생님이 상담을 해주셨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것도 과정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지, 고민이 되었다. 

 

  머리를 밀고 집에 온 날에는 아이가 놀랄까봐 검은 두건을 집에서도 벗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변화를 눈치챈 아이는 두건을 벗겨보려고 시도하다가 결국 자기도 보고 싶다고 직접 부탁을 해왔다. 부러 쾌활하게 "그럼 벗을 테니까 놀라지 마~, 빡빡이라고 놀리면 안 돼~"하고는 두건을 벗어 보였다. 흠칫 놀란 아이는 얼른 표정을 숨기고 몇 가지 말을 했다. "까끌까끌하다", "모자는 다시 쓰지 마라",  "사람들이 싫어하겠다" 등등 머리를 계속 만지면서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그래도 머리와 귀에 뽀뽀를 하는 아이에게서 사랑이 느껴졌다. 주문한 가발을 써보였을 때는 환하게 웃으며 "이제 사람들이 정말 좋아하겠다"며 기뻐하기도 했다. 나중에 들은 바에 의하면 많은 아이들이 엄마의 민머리를 보고 되려 엄마를 위로하려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실수로 가발이 벗겨졌을 때 "엄마 난 걱정하지 마, 하나도 못 봤어."라고 말한 5세 아이도 있었다고 한다. 

 

  아이는 이제 나의 부재에 예전처럼 충격받지 않는다. 오히려 쾌활하게 대처할 때도 있다. 미용실 장난감 세트를 가져와 나의 민머리에 빗질을 하며 까르르 웃기도 한다. 다만 이번 회차에는 아이가 감기에 걸려 고열로 고생 중이어서 자꾸 나를 애타게 찾는다. 항암 과정에서 아이의 성장과 성숙을 본다. 하지만 체력적·정서적으로 힘든 게 사실이다. 아이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