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대중들은 예술작품에서 뭔가 마음을 따뜻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을 적극적으로 구한다. 그러한 점에서 가장 불붙기 쉬운 것이 증오의 불꽃이다. 그것은 마음의 위안을 주지 않는다. 그에 비해 키치는 100퍼센트, 절대적이고 순식간에 소비되는 성격을 가진 예술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따라서 키치와 예술은 표현의 성별화된 형식에서 통일시키기 불가능한 대립을 이루고 있다. 이에반해 앞으로 생성될 살아있는 형식에서는 왠지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 유용한 것, 궁극적으로는 기쁨을 주는 것을 포함해 '키치'를 변증법적으로 자기 자체 내에 수용함으로써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면서 키치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이러한 과제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마 영화뿐일 것이다. ... 19세기가 키치라는 기묘한, 그때까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재료 속에서 축적해온 요소를 폭발시킬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영화뿐이다.
발터 벤야민, 아케이드 프로젝트 [K 3a,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