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독서노트

『포스트 식민주의 또는 트리컨티넨탈리즘』, 16장. 라틴 아메리카Ⅱ-꾸바 : 게바라, 까스뜨로, 트리컨티넨탈

728x90


 
  체 게바라 와 까스뜨로는 종속이론에 입각하여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주장을 펼친다. 그들의 정치이론은 저개발 국가들이 강력한 개발국가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종속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안적인 방법들을 제공한다. 먼저 정체적 독립이 이루어진 후에는 경제적 독립이 반드시 필요하며, 경제적 독립을 이루는 단계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제국주의가 세계 체제라면 세 대륙(라틴 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은 그것에서 벗어나야만 하며, 사회주의야말로 세 대륙의 경제와 문화가 제국주의라는 세계 체제에서 벗어나게 하는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체 게바라는 포스트모던의 의미를 새롭게 정립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는 국제적인 시각을 유지하여 세 대륙에 존재하는 빈곤과 불의,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제국주의적인 분리를 종식시키고자 하였다.

1. 동지 : 체 게바라

  혁명가이자 의사이며 지식인인 체 게바라는 인간과 인간의 원칙에 대한 모든 도덕적 가치들을 신뢰하였으며 평범한 민중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는 스스로 세계의 모든 피억압 민중을 대신하여 행동하고 말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민중의 가치와 이해관계를 가장 우선으로 여기는 민중의 일원이었다.「노동자 계급의 당 건설」이라는 그의 글에서 그는 맑스주의자는 무엇보다도 인간적인 인간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것은 혁명이 살아 있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행위임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혁명 전쟁동안 꾸바에 작은 진료소를 세우는 일을 하거나, 민중의 생존을 위해 농업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게바라의 운동은 매우 민중의 생활에 가까이 있었다.
  체 게바라는 인종적 정체성의 차이에 민감하게 반응하였고 반인종주의를 주장하였다. 그는 인종적 차이를 다듬어서 없애버리려고 하기보다, 여러 가지 차이들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억압을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인디오와 토착민의 연대를 확립하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고 많은 이들의 반감을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바라는 “혁명은 인간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공산주의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문화적 변혁이 요구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간이 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2. 새로운 인간

  꾸바 혁명은 현지 민중이 주체적으로 혁명에 가담하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주의를 추구하여 모스끄바가 지배하는 관료적인 공산주의 정당이나 근본적으로 다른 형태를 취하였다.  이 현지 민중이란 도시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라, 소수 지식인에 의해 전통 세력을 물리칠 수 있다고 교육받은 농민들이었다. 체 게바라는 교조적인 공산주의를 비판하였고 사회주의를 인간들 사이의 착취를 폐지하여 달성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것보다도 더 국제주의적인 전망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자본주의의 상품 관계와 스딸린주의적 국가 사회주의 양자 모두에서 인간적 가치들이 상실되어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게바라는 꾸바 혁명을 통해 그러한 인간적인 가치들을 복구하고자 하였다. 그가 쓴 「꾸바의 사회주의와 인간」(1965)에서는 혁명적 주체인 “개인”이 “유일무이한 존재이자 동시에 사회적 구성원이라는 이중적 존재로 정의”하려고 노력한다. 개인은 사회적인 창조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의미를 갖게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게바라는 교육이 이러한 “새로운 인간”의 주체행위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새로운 인간”의 탄생을 위해서는 물론 도덕적, 물질적 자극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새로운 가치 척도를 갖고 있는 의식의 발전”과 “사회”를 “전체적으로 거대한 학교로 전환”하는 것이 중요했다. 꾸바 사회주의의 중심 원칙은 교육이 특권이 없는 사람들이 사회적, 계급적 억압을 붕괴할 수 있는 힘을 지니게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3. 트리컨티넨탈

  체 게바라는 꾸바 내의 상황에 머무르지 않고 전 세계적인 불의와 억압과 착취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미국을 제국주의적 착취의 주역으로 생각했고 그 착취의 기반인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가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맞서서 싸워야 한다고 보았다. 세 대륙이 유럽의 식민주의와 미국의 제국주의에 맞서서 전 지구적 투쟁을 이끌어야 한다는 트리컨티넨탈 정치를 주장한 사람이 바로 체 게바라였다. 이 트리컨티넨탈리즘은 “세 대륙의 세계가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제국주의 지배 체제의 지속적인 작동에 맞서 싸우며 펼치는 이론에 대한 전망을 가리킨다.” 그는 민족주의적 국제주의자인 까스뜨로와 달리 트리컨티넨탈한 혁명 정신을 유지했다. 그는 세계의 억압이 있는 장소를 거리낌 없이 돌아다니며 자유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과 연대하고자 했다.『공산주의 선언』이 세계의 노동자들의 연대를 대상으로 했던 반면, 게바라는 트리컨티넨탈 회의에 보낸 메시지를 통해 “세계의 피착취 민중”을 주체적인 지위를 지닌 존재로 상정했다. 이는 곧 세계의 모든 박탈당한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포스트식민 주체를 변화 한 것이었다. 이 메시지는 세 대륙 전체의 주체들에게 강력하고 설득력 있게 호소했다.
  그 후, 1966년에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민중의 트리컨티넨탈 연대 회의’가 열렸다. 1955년 반둥 회의가 탈식민 국가들이 모두 모였다는 점과 두 강국과 비동맹하겠다는 전략을 채택한 점에 의의가 있다면, 1966년의 회의는 세 대륙의 대표들과 사회주의 진영의 반제국주의와 결합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었다. 트리컨티넨탈 회의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착취자에 대항하는 공동 투쟁 속에서 민중 해방 운동의 단결을 이루어 냈다”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

1. 게바라 [Ernesto Guevara (de la Serna), 1928.6.14~1967.10] 아르헨티나 출생의 쿠바 정치가·혁명가. 체 게바라로 불린다. 멕시코에 머무르면서 쿠바혁명에 참가하였다. 볼리비아 산악지대에서 게릴라 부대를 조직하여 활동하다 붙잡혀 총살당했다. (
http://100.naver.com/100.nhn?docid=8810)

2. 피델 카스트로 [Fidel Castro (Ruz), 1926.8.13~] 쿠바의 정치가·혁명가. 1959년 총리에 취임하여 1976년 국가평의회 의장직에 오르기 직전까지 총리를 지냈다. 국가평의회 의장은 국가원수로서 각부 장관으로 구성된 각료회의 의장을 겸한다. 공산주의 이념 아래 47년간 쿠바를 통치하여, 현존 세계 지도자 중 최장기 집권 기록을 세우고 있다. (
http://100.naver.com/100.nhn?docid=150314)

3.  인디오 [Indio] 신대륙 원주민의 총칭. 에스파냐인이 신대륙을 발견하였기 때문에 아메리카 인디언이라는 명칭과 함께 사용된다. 좁은 의미로는 라틴 아메리카(중앙 아메리카·남아메리카)의 원주민을 에스파냐 식으로 인디오라 부르고, 앵글로 아메리카(북아메리카)의 원주민을 영어식으로 인디언이라 불러 구별한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인디오와 구별되는 원주민은 현재 약 1800만 명으로 추정되며, 그 태반이 멕시코·과테말라의 산악이나 안데스 지대의 페루·볼리비아·에콰도르(이 지대를 일괄하여 核아메리카라고 부른다)의 산악에 산다.(
http://100.naver.com/100.nhn?docid=129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