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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및 기고문들

김소엽 연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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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학기... 불사른 글.
조만간 수정할지도...
피흘리면서 열심히 쓴 글이니 퍼가거나 인용하실 때 제발 덧글 남겨주시길....
어차피 쓸모도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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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식민지배, 그늘 속의 여성
-김소엽 소설 연구2-
소설 「누님」,「그늘밑에서」,「폐촌」을 중심으로


1. 1930년대 중반, 김소엽의 시선
2. 김소엽의 여성들
   2-1. 기생. '성애화'된 여성 -「그늘밑에서」
   2-2. 현모양처. 전근대와 근대, 경계의 여성 -「누님」
   2-3. 농촌여성. 자본과 주체권력 안의 여성 -「폐촌」
3. 소외된 여성을 그린다는 것


1. 1930년대 중반, 김소엽의 시선

  최근에는 일제의 식민주의가 한국의 근대화를 성립했다는 의견이 일본과 한국 모두에서 강하게 주장되고 있다. 사회, 문화, 경제적인 측면에서 당시의 조선은 전근대적으로 정체되었고 미개했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근대화가 일제가 점령했던 40년간 이루어졌던 것은 사실이다. 그 시기에는 매체와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여러 가지 사상들이 혼재하였고  전통과의 결별이 주장되기도 했다. 더불어 근대성을 확립함과 동시에 국민국가를 형성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일본의 식민지로서 조선의 정체성을 재편성하고자 하는 일반 담론의 유포도 국민국가 형성의 과정 중 하나였다. 그것은 정치가, 지식인, 경제인 등의 권위 있는 자들의 입을 통해 일반 소시민에게 전달되었다. 근대 학교교육과 신문․잡지 등의 매체는 식민주의의 담론을 유포하는 장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특히 여성에 관한 담론은 가정 안에서의 질서를 확립하고 건강하고 위생적인 국민을 양산하기 위한 목적으로 정립되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교육 수준의 증대와 그를 통한 가치관의 확립은 1937년 중일전쟁의 발발로 인한 체제 강화에서 다시 확장된다. 조선 전체를 대상으로 한 황민화에 여성 또한 포획되는 과정을 겪게 된 것이다. 신문과 잡지, 소설 등 또한 이미지를 형성하고 유포하는 역할을 했다. 1923년 9월에 창간되어 1934년 4월 통권 38호로 종간한 『신여성』은 여성들을 위한 일반교양이나 계몽을 촉구하는 논문·시·소설·수필 등의 문학작품을 실었고, 아동문학에도 관심을 보여 동요나 동화를 싣기도 하였다. 이 『신여성』은 전반적으로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여성상을 추구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전통적인 여성상을 포함한 이데올로기를 전하기도 했다. 신문소설에서도 신여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강건한 어머니를 향하는 향수와 그리움의 정서를 담은 작품이 다수 등장한다. 대다수의 매체에서 반복적으로 여성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작업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비주류의 역할을 담당했고 스스로 자립성을 얻기가 어려운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 근대적인 담론 안에서 여성의 교육이 주목받고 역할이 확장되는 등 여성의 생활양식에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김소엽은 여성의 삶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다수 발표한다.「누님」,「폐촌」,「함정」(癌),「그늘밑에서」,「고요한 정원」,「끝없는 평행선」,「한교기」등의 작품이 이에 속한다. 이들 작품 중 대부분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녀와 분리된 어머니나 가족을 형성하지 못한 여성이 주인공이다. 그리고 그들은 가난하고 무지하며 전근대적인 사상을 지니는 피폐한 삶을 산다. 김소엽이 1930년대에 지배적으로 규정된 여성의 삶과는 관계가 없는 소외된 여성들의 삶을 그린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가 있을 것인가. 김소엽이 작품이나 사설, 기사를 통해 일본에 의한 제국주의를 직접적으로 비판했다는 증거는 아직 발견하지 못하였다. 다만 그의 소설에서 국적을 넘어선 자본가, 그리고 남성으로 표상되는 권력자에게 억압받는 대상을 주로 그린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따라서 그는 당시의 사회와 체제에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소엽은 조선인 여성들이 포획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던 당시의 담론에서 벗어난다. 주도적인 권력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김소엽 소설을 분석하여 그의 여성의식을 파악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


2. 김소엽의 여성들

2-1. 기생. '성애화' 된 여성 -「그늘밑에서」

  20세기 초 기생은 대중적 화제의 중심을 차지한다. 기생은 작부나 창부와는 달리 기악과 소리를 익혀 예기로 행사할 수 있었고 사숙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외모만 보고 색주가로 팔려나가거나 몸을 파는 신분은 아니었던 것이다. 보건을 담당하던 총독부에서도 기생과 창부를 구분하였다. 경성 도시에서 화려한 외모를 뽐내고 자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기생은 여학생과 함께 도시를 활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신분이었다. 기생은 자립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진 특정한 부류였다. 당시의 여학생과 기생은 각자의 외모를 뽐내며 거리를 활보하면서 '근대'를 '소비'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31년 이후에 제기된 위생담론에 여성의 매춘활동이 문제로 거론되면서 기생은 점차 추악한 직업으로 낙인찍힌다. 위생담론이 강화되면서 매춘활동은 전염병을 낳을 수 있는 부패한 직업이 되었으며, 도덕적인 단죄도 받아야 했다. 매춘활동을 하는 여자와 그렇지 않은 여자를 구분하기 위해 무자비한 훈육과 임의적인 통제가 시작되었다. 국가의 권한으로 여성의 신체는 무자비하고 가학적인 방식으로 다루어졌다.

  1938년 5월에 발표된 김소엽의 소설「그늘밑에서」에는 위생담론의 중심에 있는 '기생'이 등장한다. 1938년에 발표된 이 소설은 기생의 천박함이나 추악함을 강조하지 않는다. 오히려 작가의 시선은 팔려 온 기생의 안타까운 인생을 향해있다. 주인공 옥화가 지내는 화류가는 도시의 외곽으로, 하수도와 가까운 진창이다. 지저분한 도시의 뒷골목의 풍경묘사는 이들의 낮은 사회적 계급을 상징한다.

  '대가'(貸家)라고 써붙인 쓸쓸한 가개판장에서 저녁굶은 거지 아이가 떨고 섰다. 오고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이런 정물적(靜物的)풍경에 지친자는 저 낡은 N문의 현관과 함께 오래다. …(중략)…극장광고. 이십세기의 크리스도, 차-리 챠푸링. 사환 아이의 자전거. 옥화의 치맛자락을 찢고 지나간다.(585)
길가 가개에서 확성축음기가 그들이 좋아하는 '련락선은 떠난다'를 부르기 시작했다. 솜틀각 고물상, 리발관, 상밥집, 복덕방, 중국 료리집 모퉁이를 돌아서면 홍등이 달린 술집을 지난 골목, K시에서 유명한 D화류가이다.(587)
 
  한가지 불결한 것이 있다면 길 옆에 흘러나려가는 실개울인데, 그 물이란 언제나 구역질이 날만치 더러운 식껌언 구지렁물이다. 거기엔 왼갓 잡것이 다섞여 흘러내려간다.…(중략)… 겨울이 되어 물이 얼면 그때는 이곳이 본격적으로 위생통의 소임을 하게 되지만, 봄, 여름, 가을, 세 절기만은 없지못할 하수도 인것이다.(588)

  화려하고 복잡한 도시의 큰 거리를 돌아 골목으로 들어서면 더럽고 냄새나는 하수도가 나타난다. 하수도는 도시를 근대화 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건강한 도시 환경을 건설하며 공기와 햇빛과 물과 하수의 자유로운 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첫 번째 역할이며, 돈과 사람과 상품을 물과 같이 자유롭게 순환하게 하는 것이 두 번째 역할이다. 정화되지 않은 하천은 자본의 흐름을 자유롭게 하기 위한 도시계획에서 배제된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구획은 계급의 거리를 가시화하며, 계급 간의 도덕적 거리를 물질적으로 측정하게 한다. 생활여건 자체가 그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의 인격을 함축하게 되는 것이다. “도시의 생태와 그 주민들의 인격은 서로 거울에 비친 영상”과 같은 관계이다. 따라서 위와 같은 풍경묘사는 그 골목에 사는 옥화와 그의 동료들의 계급을 암시한다.

  D화류가는 밤마다 남자들이 끊임없이 찾아오는 곳이다. 그 때문에 기생신분은 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지 않아도 되었다. 대신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하며 자유를 누릴 수 없다. 여기서 '팔려온 몸'으로서의 기생은 과거 조선시대에 풍류를 즐기던 예악인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상품화된 여성의 몸을 의미한다. 짐멜은 '개인적 가치의 화폐 등가물'로서 살인배상금, 매춘, 매매혼, 뇌물 등을 지적한다. 개인의 가치가 개인에게 귀속되는 화폐를 통해서 표현 가능한 객관적인 가치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보상금이나 매춘에 대한 화대는 여성이 지닌 몸의 가격으로 고정되고 결국은 자본주의 질서로 편입된다. 게다가 옥화는 돈을 벌기위해 자발적으로 찾아온 기생이 아니라 '팔려온' 기생이기 때문에 근대 경성을 '소비'할 수 있는 계층에 속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옥화는 화폐로 몸의 가격의 대가를 받으면서 자본주의 체제 내에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떳떳하게 생활하기 어려운 신분이다. 옥화와 그의 친구 정옥은 '옷맵시나 말씨'에서 '화류계 여자 티'가 나는 바람에 시장이나 거리에서 쉽게 사람들의 눈에 띠고는 한다. 또 사람들은 쉽게 말을 지어 내어 그들을 곤혹스럽게 한다.

  옥화는 D화류가에서도 얼굴이 예쁘고 남자들과 잘 지내는 성격으로 유명하다. 주인도 그 때문에 옥화를 유난히 예뻐한다. 옥화는 얼굴만 예쁜 것이 아니라 '사내들의 마음을 낙궈내는 묘한 수단이 있어 수월히 쥔집의 주머니를 불리워 주었'으며 '마음이 단단'해서 '어떤자의 꾀임에도 넘어본적이 없었'다.(591) 그러던 중 주인은 옥화가 '손가'라는 남자를 만나 밀회를 나누는 것을 보고는 극도로 예민해진다. 옥화는 '어머니'라고 부르던 주인에게서 매번 화를 당하고는 괴로워한다. 주인에게 옥화는 돈을 벌어주는 수단일 뿐이다.

  이렇게 옥화와 그의 동료들은 늘 비웃음거리이지만 밤이면 꽃이 된다. 남자들은 어둡고 지저분한 골목을 지나가는 꺼림칙함을 경험하면서도 여성의 몸을 소유하기 위해 밤마다 찾아온다. 화류계에 속해있는 여성의 몸은 자신의 바람과는 관계없이 늘 성적욕망의 대상이 된다. 여성의 가치가 몸의 가치로 환원되어 남성에 의해 성애화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옥화는 손님을 맞던 중 '오가'라는 남자가 술을 먹여 겁탈하려던 사건을 겪는다. 옥화는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길거리로 도망을 나온다. 몸을 지키고자 필사적으로 집으로 도망치지만, 옥화는 다시 주인 여자에게서 ‘어염집 여자가 정절이 무슨 말이냐’는 말을 들으며 매를 맞는다. 자신의 얼굴이나 몸이 아름다움을 유지해야만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어서 얼굴에 주름이 잽히든지 세상에 남자가 없어'(591)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옥화는 돈을 벌기 위해 옥화를 인간이 아닌 ‘돈 벌어주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주인과 신체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겁탈하려는 남자로 인해 이중적인 폭력을 고스란히 받아야 한다. 옥화는 좌절하지 않고 자신과 자신의 신체를 물질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이들에게 분노와 반항심을 느낀다. 자신을 꾀어 오가에게 데리고 간 정옥을 '더러운 창부'라고 욕하면서도 같은 직업인 자신은 절대 창부가 아니라고 다짐하는 장면, 오가를 욕하면서 자신의 정절을 지키려고 하는 장면, 주인에게 얻어맞으면서도 정조를 지키겠다고 외치는 장면을 통해 옥화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다. 몸을 조건으로 경제생활을 하고 있지만 정조를 지키는 것이 자신의 영혼을 지키는 것과 같다고 여기는 것이다. 1937년에는 정조에 관한 다음과 같은 주장이 나타난다.

  대체 사람로나서 이목구비를 갓추웟다면 빈부귀천을 무론하고 누구나다-이정조권 이라는것이 있을것이다. 따라서 법률상으로본다면 아모리성적으로 무질서한 생활을게속하는 매춘부(賣春婦)라 할지라도 당자의 성교자유(性交自由)의 의사를거슬여가지고 성적관게가 있었다하면 역시 정조권을 침해하엿다고 볼수있을것이다.

  옥화의 '정조'관념은 당시에 일반적으로 유포되어있던 정조관념과 일치한다. 이는 옥화의 의식이 매우 근대적으로 정립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억압받는 현재의 삶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는 지니는 것이다. 그러나 옥화에게는 그런 의지만이 있을 뿐, 적극적인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1930년대, 기생은 어느 정도 경제적 자립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전통적인 삶을 사는 여성에 비해서 자유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게다가 지배담론이 요구하는 의식 또한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는 없었다. 여성이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또 다른 대상에게 삶의 주도권을 넘겨주어야만 했다. 그것은 '주인여자'로 표상되는 자본가이고, '오가'로 표상되는 남성이다. 옥화는 억압을 극복하고자 한다. 그러나 또 다시 옥화를 기다리는 안식처는 '손가'라는 남성일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몸'밖에 지니지 못한 여성은 떳떳한 주체로 자립할 수 없다.

2-2. 현모양처. 전근대와 근대, 경계의 여성 -「누님」

1936년 6월 잡지『女性』에는 현모양처에 관한「살림잘하시는主婦가되려면」이라는 논설이 실린다.

女子로써 살림을잘하자면 멫가지 主義 하지않으면 않될것이 있습니다. 첫재로는 아는것이있어야되고 둘재로는 돈이있어야 살림을살림답게 할것은 勿論입니다. 아는것이 없이는 살림을잘할내야 잘할 수가 없고 할줄은 알지만은 돈이 없으면 實現할수가없음으로 知識과 經濟力이 具備해야 될것은 다시말할 必要가없을것이외다.…(중략)…살림을 살림답게 하자면 消極的으로는 조치못한 習慣이나 風俗을 없이해 버리는反面에 積極的으로는 좋은 習慣을 기루고 또한끝임없이 硏究하고 생각해내서 生活을恒常새롭게 또는 進取的이되게 하여야 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기에는 여성이 과학적인 지식을 받아들여 위생과 건강 담론을 정확히 이해하여 육아와 가사 노동에 전념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한다. 이와 연관하여 교육과 잡지, 신문의 기사 내용의 대부분이 과학과 효율, 위생 등으로 지정되었다. 가정개량과 생활 합리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많아지면서 육아에 영양, 수유, 위생, 질병에 대한 지식의 필요성이 강조되었다. 좋은 국민을 양산하는 어머니의 역할이 강조되었고 그것은 애국심과 연결되었다. 또한 남자를 잘 보조하고 원만한 생활을 꾸리기 위해 가정이라는 장소 안으로 여성의 역할이 한정되었다. 당시 여성들이 가정을 단란하게 잘 꾸리는 주부가 되고 싶어 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위의 논설의 부제목 "안해는그집안에女神입니다"도 이러한 의견을 뒷받침한다.

  1936년 작품 「누님」은 “어진 어머니, 착한 아내”가 되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인물인 남순을 그린다. 남순은 시골 농촌에서 태어나 한쪽 눈을 잃고 슬픈 인생을 살게 된 운명적인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남순은 중학교에 입학해서도 '애꾸눈이 병신아이'로 취급받다가 쫓겨난다. 그 후 스무 살이 되어 시집을 가게 되는데, 처음에는 시집에 잘 적응하여 남편과 사이좋게 지내는가 싶더니 곧 그 집에서도 학대를 받고 쫓겨난다.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대로 시집살이를 시키고 남편도 무관심하게 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친정으로 돌아와서도 마음을 편하게 두지 못하고 작은 일들을 찾아서 하던 남순은 언제든지 매형이 부르면 돌아가겠다는 마음을 밝힌다.

"만약 사둔댁에서 누님을 다시 오라구 불으면 어떻게 하겠소?"
하고 기어코 뭇고 싶던 문제를 끄냈더니
"가지!"
누님은 서슴지 않고 대답한다. 이러한 그였다. 혹 누가 그더러 그까짓 시집은 단념하고 다시 개가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을라치면 그것을 큰 모욕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이미 강씨집 귀신이니 죽더래두 그 집 대문 앞에 가서 죽겠다!"
… 여기에 순진하고도 완고한 그의 동양적 윤리관이 깃드러 있는 대신에, 꽃다운 청춘을 속절없이 늙히지 않을 수 없는 기막힌 운명이 가루 누워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남순은 언제나 가정을 꾸려 안정된 삶을 누리고 싶어 한다. 남순은 현모양처가 되기를 원했지만 현실적 사정이 여의치 못했고 남편과 시어머니 또한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이런 운명적인 상황에서 남순이 평범한 현모양처가 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오히려 전근대적 의식이 바탕인 '현모양처'는 조선의 문화적 정체를 알릴뿐이다. 남순이 1930년대 후반의 교육적․제도적으로 강조되었던 "현모양처" 사상에 부응하는 인간인지 의심할 필요가 있다. "나히 삼십이 넘도록 슬하에 딸자식 하나나마 없이" 집에서 쫓겨났기 때문이다. "현모"의 역할을 하기도 전에 "양처"의 자리에서 쫓겨난 것이다.

  김소엽의 또 다른 소설 「함정」(1937)에는 건장하고 좋은 직업을 가진 남성과 결혼을 약속하고 맹목적으로 행복해하는 옥점이 등장한다. 옥점은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주변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부추기자 자신도 행복하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신념이 없고 상대방을 배려하지 못하는 약혼자에게 염증을 느낀다. 그러면서 자신의 개성을 발견하는 옥점은 현모양처의 환상을 박차고 깨어난 여성이다. 하지만 「누님」의 남순은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식과 의지가 없다. 근대적 학교제도가 도입되면서 각종의 잡지, 신문 등의 매체는 여성들에게 적절한 지식수준을 요구하였다.

  이제 태호가 남순의 모습에서 "동양적 윤리관"을 발견할 수 있다고 언급한 부분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동양적 윤리관"은 일본이라는 지배자의 시선에서 볼 때 '조선'의 전근대적인 사상을 지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동양적 윤리관"은 "전근대적 윤리관"과 동일한 의미라고 볼 수 있다. 태호는 누님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면서도 지배자의 용어로 "동양적 윤리관"이라고 언급한다. 남순은 늘 시집을 잘 간 이웃집 색시들을 부러워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다. 태호는 그런 누님의 태도에 불만을 표하는 것이다. 그는 누님이 고생스럽게 일을 하면서도 목표나 희망도 없이 사는 것이 불쌍하고 암담하다고 생각한다. 태호는 김소엽의 눈을 대신하는 인물이다. 태호가 누님을 바라보는 태도는 김소엽의 태도를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남순의 봉건적이고 전근대적인 윤리의식은 근대화되어가는 사회 안에서 변화해야했다. 가족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일자리를 찾게 된 것이다. 옛 조선사회는 온 가족이 농업에 종사하는 분업사회였기 때문에 가족 안에서 소외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가정이 담당하는 역할들이 공적 영역으로 바뀌면서 가정 안에서 여성이 해야 할 일도 제한되었다. 남순은 가족에게 피해주지 않는 인간이 되기 위해 결국 경제적 능력을 키우기로 결정한다. 그것이 자신의 의지인지 어쩔 수 없는 사회적 현상인지 알지 못한 채. 남순은 내지인 집에서 '오마니'로 지내거나 백삼장(白蔘場) 여공으로 일을 하면서 '이삼십전'이라는 적은 돈을 악착같이 번다. 그러다 결국엔 다시 집을 떠나 타 마을 공장에서 인부들의 밥을 하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남순이 선택한 직업들이 주목할 만하다. 남순이 자립적 생활을 하기 위해 선택한 첫 번째 직업이 ‘오마니’라는 것은 몸을 생계수단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음을 의미한다.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자마자 여성으로서 투자할 수 있는 대상은 여성의 몸, 즉 성적 노예가 되는 것이다. 남순이 ‘내지인’의 집으로 들어간다는 것 또한 상징적이다. 이는 김소엽의 소설에서 일본과의 관계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흔치 않은 부분이다. 두 번째로 남순은 여공으로 취직하게 된다. 그러나 공장에서도 착취를 벗어날 수는 없다. 데이비드 하비는 매춘에서 벗어난 여성들이 '여공'이라는 '수상쩍은' 직업을 얻게 되는 점에 주목한다. 경제적으로 무력한 여성들은 지배자의 위치에 있는 남성에게 온갖 수탈을 당한다. 그는 여공들 또한 성희롱과 난폭한 학대가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작업장으로 내던져진 것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이 직업들 모두 여성의 자립을 위해 선택한 것이지만 그것은 결국 사회적 ․ 경제적 ․ 성적 학대를 견뎌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폭력적인 억압이다. '장애'를 지닌 가난하고 무력한 '조선' 여성이 내지인에게 '성'적 상납을 하면서 '돈'을 벌어야만 한다는 현실은 사중으로 착취당하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남순이 현모양처만을 꿈꾸지 않고 직업을 택하는 것은 극복의지를 보여주는 행동이 아니라 근대화 지배체계에 휩쓸려 가는 것을 의미한다. 봉건적인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근대성에 의해 다시 지배받게 되는 것이다. '누님'은 근대와 전근대를 넘어선 모든 억압과 착취를 온전히 드러내고 있다.

2-3. 농촌여성. 자본과 주체권력 안의 여성 -「폐촌」

  김소엽의 소설 「폐촌」은 농촌의 암담한 현실을 그린다는 점에서 여타의 농촌소설과 다를 것이 없다. 대신 소설은 가난한 어촌의 여성이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초점이 맞추고 있다. 점순이 사는 곰나루는 노인과 여자들이 바다에서 해산물을 잡아서 살아간다. 그러나 그 윗동네인 힌나루에 술회사가 들어서면서 신작로와 발동선이 생기면서 바다의 물고기를 마음대로 잡아먹지 못하게 된다. 점순이 동네의 가난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바다와 인연을 끊은 동네 사람들은 다른 마을에서 고용어부로 일하거나 남의 땅을 소작하기 시작한다. 그것도 변변치 않아서 동네 아낙들이 술회사로부터 돼지를 먹일 모주를 받아온다. 여기에서 자본의 극악함이 드러난다. 힌나루 술회사가 들어서면서 마을이 폐촌이 되었는데, 그런 마을을 위해 술회사가 돼지 먹일 모주를 싼 값에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 모주로 돼지를 키우면서 연명하면 술회사는 다 큰 돼지를 싼 값에 다시 사간다. 모주는 값이 싸지만, 그럼에도 쉽게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새벽에도 늘 술 회사 앞에 사람들이 줄지어 선다.

  어촌의 생활을 인위적으로 막아 공장의 이익을 취하는 이들의 행태는 매우 비인간적이다. 농촌은 공장터로 사용되고 그 곳의 사람들마저도 이익을 위한 대상으로 이용되면서 고통이 증가하는 것이다. '힌나루 술회사'라는 대자본은 농촌을 순식간에 잠식한다. 마르크스는 자본가가 자본을 축적할수록 프롤레타리아, 즉 산업예비군이 증가하는데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적 축적의 절대법칙이라고 말한다. 자유로운 생산을 하던 농촌의 인구를 임금노동자로 전락하게 만들어 자본의 증식에 이용하는 것이다. '힌나루 술회사'는 돼지를 나눠주고 키우게 하면서 자본을 증식한다. 이는 비록 농민들을 임금노동자로 만든 것은 아니며 자본가에게 종속하게 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결국 궁핍해진 농민들이 '술회사'라는 대자본의 노예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농민들은 돼지를 열심히 키워 술회사에 돌려주면서 약간의 돈을 받는다. 이는 술회사가 작은 자본으로 잉여의 가치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유일한 돈벌이인 '돼지치기'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의 농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기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주인공 점순은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견디지 못하고 주변을 빙빙 돌 뿐이다. 그러던 중 점순을 주의 깊게 보던 작은 주인이 점순에게 헐값으로 모주를 제공한다. 매번 점순을 위한 모주를 준비해 두었다고 다른 사람의 절반도 안 되는 값에 넘겨주는 것이다. 점순은 모주가 꼭 필요하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오면서도 그의 눈에서 "무서운 무엇을 발견하게 되"었다. "처녀에게서 무엇을구하려는 무서운 눈"을.(536) 점순은 작은 주인이 베푸는 호의를 무시할 입장도 아니지만 자신을 만만하게 보는 것도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작은 주인은 자본가이면서 동시에 점순의 육체를 탐하는 남성으로 주체권력을 표상한다. 점순은 앞의 두 주인공과는 다르게 행동으로 반항한다. "고양이에게 오줌을 갈기는 쥐"처럼 작은 주인을 할퀴고, 서울 술집으로 팔려간다는 금주를 불쌍히 여긴다. 동리 친구 게옥은 금주를 부러워하지만 점순은 부러워하는 게옥마저 비웃는다. 점순은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갈보로 팔려가는 것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자기 손으로 목숨을 끊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보릿고개를 보내면서 하루 끼니를 찾아 먹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다 보니 생각이 약간 달라진다. 점순이는 진남포 정미소에서 여공을 구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것은받는돈이많다는것보다도 그런곳에가면 위선 자긔한몸의 먹는문제라도해결할수잇다는 가난한 처녀다운생각이엿다."(543) 점순은 떠나면서도 "래일이나 모래라도 다시돌아올수잇는자유의몸"(544)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반대하지만 점순은 반드시 정미소로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정성껏 키우던 돼지를 팔아서 뱃삯을 마련하여 드디어 섬을 떠나게 된다. 그러나 그 순간 자신을 탐했던 작은 주인이 떠오른다. 작은 주인에게 몸을 파는 것과, 공장의 여공으로 자기의 몸을 판다는 것이 다르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점순은 결국 어차피 '팔려가는 몸'이다. 여성의 몸에 있어 '성애화'나 '물질화'는 같은 의미이다.「그늘밑에서」에서 옥화가 반항적이지만 행동을 실천할 수 없는 여성상을 제시했었다면「폐촌」의 점순이는 여성의 주체성과 독립의지의 한계를 경험하고 좌절하는 여성상이다. 결국 농촌은 자본에 의해 수탈되고 소비되는 타자의 공간이며 그 안의 여성은 비참하게 물질화된다.

3. 소외된 여성을 그린다는 것

  위 세 소설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사실이 있다. 첫 번째는 주인공들이 모두 여성이라는 것, 두 번째는 그들이 하류계층에 속한다는 것, 세 번째는 그들이 몸이 성애화와  물질화를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그늘밑에서」와「폐촌」의 주인공들은 주체의식과 독립의지를 지닌 사람들이지만 두 사람 모두 남성적 폭력, 자본주의적 폭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럼에도 『그늘밑에서』의 옥화는 그의 의지를 끝까지 믿고, 『폐촌』의 점순은 한계를 느끼고 좌절한다. 주인공이 어떠한 태도를 보이든, 여성은 하위주체로서 식민지 시대를 살아갈 수밖에 없다. 김소엽은 이들의 생활과 태도를 그리면서 30년대 말기 조선에서 '주변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식민지화로 인해 조선 전역이 ‘여성화’되었고, 그러한 조선의 여성들은 자본주의와 남성 중심적 사고에 의해 이중적 하위주체가 될 수밖에 없었다. 김소엽은 근대화 과정에서 이러한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일상의  식민지화에 관심을 두었던 것이다.

  김소엽이 사소하고 주목받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눈길을 돌려 작품 활동을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물론 카프가 해체되고 일제의 식민통치에 직접적인 언급을 할 수 없는 시기에 작품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가 화려한 근대의 풍경에서 지워진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고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누님」에서의 태호의 태도, 그리고 그의 다른 소설 「한교기」에서 훌륭한 교육자인 여교장을 존경하는 모습 등을 참고하면 김소엽은 여성들이 그들 스스로의 삶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나가길 기대하였으며, 현실의 억압을 이겨내기를 원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성들은 스스로 일어설 수 없었다. 그것은 그들의 탓이기 보다는 이미 일상에 식민지화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소엽이 일제에 의한 식민통치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던 것은 당시의 하위주체가 받는 억압이 일제에 의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 텍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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