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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에서 책을 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이른 봄.
버스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에 온몸이 더워지는 듯 했다.
약간의 멀미기운을 느끼고 읽던 책을 덮었다.
버스가 신촌을 지날 때 쯤 길이 꽉 막혔다.
차는 움직이지 않았고, 나는 숨이 막히는 답답함을 견뎌야 했다.
그 와중에 피로감이 극에 달했던지 눈을 감고 가수면 상태에 접어들었던 것 같다.
그때쯤이었을까.
덜컹덜컹 흔들리는 창가에 머리를 기댄 채 잠든 내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그리고 책을 사기 위해 헤맸던 종로 거리, 공부하는 세미나실, 함께 이야기하면서 기뻐하고 슬퍼했던 순간들, 좋은 사람들과 시원하게 맥주를 마셨던 일들, 사랑했던 일들, 헤어졌던 일들, 아름다운 추억들, 미래에 내가 되고자 했던 바람들, 꿈들이 순식간에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피곤함...
그 순간 그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피곤하게 느껴졌다.
Too tired to live...
누군가 내 짧은 인생에서 죽음과 가장 가까웠던 순간이 있었냐고 물어본다면,
바로 그때였다고 말할 것이다.
잠에서 깨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다시 원래의 나로 돌아와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한참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보니 그 피곤함을 느꼈던 시간이 인상에 깊게 남는다.
우리는 살면서 노력하고 힘내서 기쁨을 얻는 것을 낙으로 한다. 모든 노력은 우리를 훌륭하게 만들어주는 밑거름이라고 말한다. 노력과 활기가 우리를 삶으로 이끈다면 모든 피곤함과 게으름은 우리를 죽음으로 이끄는 것일까. 만약 그 상태가 지속된다면 나 역시 죽음에 이르렀을지도 모른다고 감히 생각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 피곤함을 느꼈던 순간이 가끔은 그립다. 우리는 피곤함 안에서 삶과 죽음을 겹쳐서 보기도 하고, 그러면서 죽음을 한번 생각해 볼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모든 삶을 되돌아보고 사랑하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때 내가 경험했듯이. 그리고 그것은 그리 나쁜 경험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