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때 썼던 오답노트를 찾았다. 오답 노트에는 지금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 무수한 수학 공식들 사이에 머리를 식히며 썼던 몇몇 글들이 있었다. 그 중 몇개를 옮겨본다.
2002. 4월
<하루를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일년, 삼백육십오날, 스물 네시간, 육십분, 육십초... 라는 시간관념은 늘 뇌리속에 존재하지 않는 듯이 기생하고,
어쩌면 없는 것이 될는지도 모른다. 흔히 '유수같다'고 설명되는 무감각 속의 감각.
소크라테스가 꾸짖던 시간에의 무지는 오늘도 많은 사람들의 무감각을 스쳐지나갔다.
이런 허무주의적인 생각들도 얼마가지 못해 무너질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요즘들어 힘든 시기에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
또는 너무 높은 목표나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찾아보게 된다.
나같은 허무주의자에겐 너무도 소용없는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그게 무너져버리고, 또 한번 내가 그 사람들과의 삶에 대한 내기에서 지게된 것 같다.
<사랑> 잊어버린지 오래다. 한 사람을 멀리 떠나보내면서 그런거 잊고 지낸지 오래다.
아마 당분간은 그런 감정 느끼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된다. 아직 어린나이지만... 경험도 많지 않지만 나의 어리석고 무지함에 더 말할 것도 없지만... 정말 소중한 기억이라는 건 알고 있다.
누가 뭐라해도 그건 내 참 사랑이었다.
뿌연 먼지 속에서 그의 모습을 보았다. 하늘을 울리는 소리가 내 가슴을 빻아대었다. 아마 그게 내 첫사랑이었을 것이다.
[사랑은 스프와 같다. 처음 입에 대었을 때에는 뜨겁다가 시간이 흐르면 차가워진다.]
우리들의 사랑이 마냥 스프와 같진 않으니 '차가워진 스프'도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도 기쁠 수 있지 않을까.
<나에 대해서>
1.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길거리를 낙엽하나를 사랑하게 되는 것과 같다.
세상 만물과 '그'를 사랑하는 것은 '나'를 아름답게 만든다.
나도 한때는 아름다웠던 때가 있었던 것 같다. 엄마 아빠를 사랑했을 때? 멋도 모르고 삼촌을 좋아했을 때.
옆집 싸움 잘하는 친구를 좋아했을 때... 그리고, 우리학교 '북치는 소년'을 좋아했을 때.
2. 허무주의자? 인생에 회의를 느낀다. 나? 비록 18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럴수도 있지 않은가?
오노같은 인간이나, 이번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사람들, 내 주변에도 '위선적인 인간'들이 있으면 자조적으로 ... 세계적, 국제적으로도 허무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3. ...
2002년 10월 23일
벌써 시간이란 녀석은 우릴 훌떡 집어 삼키고 그 이상을 무언가를 위해 질주한다.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지 생각해 볼, 어떻게 해왔는지 뒤돌아 볼 여유조차 없었던 것 같다.
난 나름대로 괜찮은 성과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내 위치에서는...
아무도 축복해주지 않고 부러워하지 않아도, 난 내 행복을 위해 그들을 축복하고 부러워한다.
모순적인 이기주의다.
항상 생각하는 것이 있다. 내가 사라지면 슬퍼할 사람들의 모습. 지금은 거들떠 보지 않아도 내가 없음으로 인해 생기는 공허함... 그런 상상을 통해 난 내 존재를 부각시킨다.
너무 나약한 발상이다.
어디까지가 내 회의의 끝이려나...
-> 지금은 칠흙같은 어둠을 즐기는 중<- 소루.
========================================================================
참... 문장도 엉망이고, 창피함을 무릅쓰고 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