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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및 기고문들/<Ugly Laws> 번역 연재

<Ugly Laws>, Susan M. Schweik. Part 1. 번역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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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카고에서 장애를 가진 상태로 체포된 사람들이 단순한 구걸로 체포된 것인지, 아니면 부랑자여서 체포된 것인지 구별하기 어렵다는 점은 절망적이면서도, 중요하게 조명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겉보기에는 뚜렷하게 구별되지만, 때로는 중첩되는 두 집단, 즉 “장애가 없는” 거지와 “병들고, 기형적이고, 불구인” 사람들 간의 복잡한 관계는 Ugly Law의 출현과 큰 관련이 있다.
 
  구걸(Panhandling)은 다음과 같은 해석의 위기를 야기했다. 어떻게 하면 구걸에 성공하기 위해 거지의 페르소나를 만들어내는 ‘건강한 거지’를 구분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구걸에 성공하기 위해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어내는 장애인들이 등장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러한 딜레마는 제5장에서 설명할 것인데, 이는 장애의 시각적 수행성을 의미한다. 레너드 데이비스Lennard Davis1)의 말을 빌자면 “장애는 특별한 순간이다”. 그리고 구걸하는 상황에서는 특히 더욱 그러하다. 그 순간은 매우 복잡하다.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객관화(objectification)뿐만 아니라 상호 인정의 윤리에 대한 가능성을 포함하는 역동적인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장애를 인식하는 데에 관여하는 시선은 정규화된 시선일 수도 있고, 응시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또한 상호작용적이고 깊이 주의를 기울이는 요소를 가질 수도 있으며, 돌봄의 성격을 지니는 것일 수도 있으며, 상호주의 및 상호 인정의 요소들을 가질 수도 있다. 장애를 둘러싼 이러한 시선들은 비참함과 평등, 혐오와 인정, 매혹과 무관심 사이에 존재한다. 이렇듯 유동적이고 맥락에 따라 의존적인 양면성을 띠는 장애에 대한 인식은 Ugly Law의 기초를 마련하는 데 도움을 준 사회적 역동성의 핵심 요소이다.
 
  1896년에 윌리엄 딘 하우얼스William Dean Howells2)는 “즐거운 기부자의 고난(Tribulations of a Cheerful Giver)”이라는 짧은 글을 통해서 자유주의적 죄책감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자유주의적 죄책감이라는 관점은 내가 다음 장에서 서술하고자 하는 “구호”의 장면이 야기하는 난제들에 대해 대처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즐거운 기부자의 고난(Tribulations of a Cheerful Giver)”은 작가가 한 남자에게 돈을 기부하기 위해 결심하는 장면을 묘사한다.
 
  “나는 기부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쁜 양심을 가지고 그 자리를 떠나야만 했는데, 그건 정말이지 싫은 감정이었다.”라고 하우얼스는 솔직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나는 당연히 많은 것을 기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좋은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좋은 시민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하우얼스는 시민의 의무와 기독교의 자비라는 경쟁적 의무 사이에서 불편하게 타협할 수밖에 없었던 과정을 이야기한다. 그는 그 남자에게 고작 15센트를 주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한 기분을 느꼈다”고 기록했다. “나는 내가 거리의 거지들을 낙담시키고 아무것도 주지 않음으로써 높은 지위에 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한 번 나를 초기 기독교인 수준으로 생각한다면, 나는 반 달러(50센트)를 줘야만 했다.”
 
  미국의 사학자인 에이미 드루 스탠리Amy Dru Stanley는 19세기 후반 미국 도시의 거지에 대한 그녀의 논의를 위해 이 장면을 인용했다. 그녀는 “모든 면에서 볼 때, 개혁가들에게 가장 성가신 표본은, 일을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 건강한 거지였다”라고 설명했다. “그를 도와주어야 할까? 아니면 가난에 더 깊이 가라앉혀야 할까?” 스탠리는 “즐거운 기부자의 고난(Tribulations of a Cheerful Giver)”에서 하우얼스의 프로젝트가 바로 “이 주제에 대한 관심”에 있다고 묘사하면서 수사적으로 질문한다. 하지만 하우얼스가 정확히 노리는 주제는 건강한 거지에 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하우얼스의 에세이를 시작하게 만든 장본인인 그 거지는 그의 문화가 정의했던 것처럼 결코 건장하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자 나는 그가 손이 없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침묵으로 호소하며 버티고 있었다. 그 침묵이 그가 구걸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이것이 오히려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 남자가 정말로 어찌할 수 없는 그의 불구를 제외하고는, 나를 불쾌하게 만들 만한 것은 없었다. 그리고 그가 보여준 부동의 침묵은 확실히 인상적이었다… 나는 내가 그의 불구와 고통을 위해 신이 임명한 50달러의 위탁자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그를 위해 나에게 맡겨진 돈의 대부분을 횡령해 왔던 것이었다.

 
  이 만남을 지배하는 두 용어는 다음과 같다. 그것은 “나는 깨달았다(I perceived).” 그리고 “그의 불구(his mutilation.)”이다. 이 글에서는 하우얼스와 같은 입장의 도시 거주자들이 불구를 인식하는 것이 “건강한” 거지를 발견하는 것만큼이나 괴로운 일이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스탠리는 전후 몇 년 동안, “북부 주들에서는 산업자본주의와 임금노동이 전면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여전히 거지들은 상품 교환의 범위 밖에 맴돌고 있었다. 형사법은 구호자의 도덕적 딜레마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공했다.”라고 기록했다. Ugly Law 역시 그러한 대답 중 하나였다. 스탠리는 하우얼스가 “건강하지 않은(unsturdy)” 불구가 된 거지에 대한 일화를 생략하였다는 사실을 특수한 것으로 여겼다. 하우얼스가 생략한 것과 유사하게도, Ugly Law가 제공하는 대답은 언제나, 반드시, 모호했다.
 
  시 공무원과 도시 개혁가들이 부랑자와 거지의 사회적 문법을 해석하려고 할 때, 그리고 약함을 인정받을 수 있은 자격을 갖춘 자들과, 게으른 자들이 약함을 꾸며내어 기만하려고 하는 자격 없는 자들을 구별하거나 부정하려고 할 때, Ugly Law와 같은 법은 그들의 사회적 무기 중 하나의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도시들은 다양한 결말과 다양한 목적을 위해 이 조례를 배치했다. 이들은 법을 제정할 당시 각자가 보기 흉한 거지들을 제멋대로 다루려 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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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의 장애 연구 전문가인 Lennard J. Davis는 일리노이 대학교 시카고 예술 과학 대학의 석좌 교수 이자 응용 보건 과학 대학의 장애 및 인간 발달 교수이자 의학 교수이다.
2) 윌리엄 딘 하우얼스(William Dean Howells, 1837~1920년)는 미국의 소설가이자 비평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