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장에서는 우생학 및 국가 기관의 부상을 포함하여 이 법의 틈새시장을 형성하기 위해 수렴된 광범위한 요소들을 공개한다.
①도시 미관을 위한 현대 도시 계획 및 지도 개발
②광범위한 기술 변화와 기업 권력의 증가로 인한 현대적 특징으로 발생한 부상(injury)에 대한 새로운 문화
③거리에서 이루어지는 공공단체의 행동에 대한 도시 예절과 예의에 관한 새로운 압력
④교육학적 공간으로서의 도시 공공 영역에 대한 이해의 증가
⑤도시의 동물성을 둘러싼 불안감
⑥금주 및 금주운동
⑦혐오의 수사.
1부의 말미에서 나는 Ugly Law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위선자들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보기 흉한 거지’에 관한 담론들은 대부분 모든 장애를 가진 거지들을 예외 없이 “부끄러운 불구자”라고 간단히 가정해 버린다. 그런 가정들이 Ugly Law를 더욱 심각하게 정당화한다. 나는 이 명백히 잘못된 주장을 단순히 무시하기보다는, 미국 주요 도시의 거리에서 거지들이 실존했던 역사를 기록하고(특히 뉴욕의 보워리Bowery), 그들이 도시 지형에 미친 구체적인 영향을 추적하려고 한다. 그리고 ‘보기 흉한’ 장애를 이용해 구걸을 수행한 ‘진짜 불구자’와 그들을 흉내 내는 ‘거짓 불구자’의 관계를 추적하였다.
Ugly Law를 문화적으로 재현할 때에는, 이 법을 순수한 것, 혹은 극단적인 장애인에 관한 것으로 국한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남성의 경우는 성별이 없는 존재로, 백인의 경우는 인종이 없는 존재로, 미국인은 국적이 없는 존재로, 이성애자는 성별이 없는 존재로 규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각 도시에는 하나가 아니라 수많은 Ugly Law가 있었다. ‘보기 흉한 것’의 정의와 그 처벌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혹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보다는 이탈리아인에게 더욱 가혹한 형태를 취할 수도 있었다.
이 책의 두 번째 부분인 <보이지 않는 교차로에서>는 “질병, 불구, 기형”으로 얽힌 다른 정체성 범주에 광범위하게 걸친 사람들에 대해 분석한다. 이는 어떻게 이 조례들이 국가, 인종, 성별(sex), 그리고 젠더(gender)를 대상으로 규범을 강화시켜 왔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그 법률이 성차별과 성범죄의 치안 유지와 역사적으로 관련되었음을 읽었다. 동시에 이 법률들은 토착주의, 반유대주의, 반이민법, 그리고 국가가 부과하는 인종차별을 옹호하고 있었다.
제3부 “Ugly Laws의 종말”에서는 법령이 출현한 순간을 살피고, 그 법이 도전적으로 확장되는 기록을 펼쳐봄으로써, ‘보기 흉한 거지 법령’이 하는 일을 회피하고, 대항하고, 해체하기 위해 노력했 다른 문화적 메커니즘에 대해 좀 더 길게 숙고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 법들에 대한 저항의 기록을 추적하였다. 9장, 10장, 11장에서는 1903년 당시에는 유명했지만 지금은 거의 잊힌 장애인 연주자의 회고록이나 1916년 재활치료사의 “클리블랜드 장애인 조사”,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기 흉한 거지들”이 쓴 자서전 등 중요한 텍스트를 중심적으로 비평함으로써, 왜 이러한 법이 더 이상 책에 등장하지 않는지, 그리고 무엇이 그것을 멈추게 했는지 살펴보았다. ‘보기 흉한 거지들’이 쓴 자서전에 집중하려는 이유는 법 그 자체가 ‘보기 흉한’ 대상을 창조하려는 시도에 필연적으로 동등한 입장에서 저항하는 반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자서전은 역사적 근거가 된다.
시각적으로 배제되는 장애와 푸코주의적(Foucauldian) 설명 사이의 지속적인 이론적 긴장감은 마샬 P. 와일더Marshall P. Wilder와 아서 프랭클린 풀러Arthur Franklin Fuler의 저술을 통해 어느 정도 해결된다. 이들은 시학과 장애에 대한 (그리고 장애 사이의) 새로운 탐구 노선을 제시한다.29
발터 벤야민은 “거지가 한 명이라도 존재하는 한, 여전히 신화가 존재한다”고 썼다.(505) 또 수잔 벅 모스Buck-Morss는 현재 파리의 거리 거주자들에 대해 “그들의 영속성 …… 캐릭터(성격)의 전형적인 약점(또는 강점)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은, 풍요롭고 ‘자유로운’ 사회 속에서 그러한 빈곤이 존재하는 이유를 감추기 위해 그들에 대한 신화를 창조가 필요가 있는 사회 질서의 영속성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라는 빛나는 문장을 남겼다.(114)
이 책 전체를 통해, 나는 Ugly Law의 역사에서 장애와 구걸 사이의 긴밀한 상호 관계를 강조한다. 이것은 현대 장애 문화에서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에 의해 주도된 특정 법령의 일부에서 거지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시정 조치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나는 구걸을 옆으로 제쳐두고 다른 추악한 역학관계(ugly dynamics, 추함에 대한 역학관계들)들에 대하여 여전히 많은 작업을 하고 있다. 우리는 외적인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혹은 현재진행형으로 겪고 있는 물질적 차별의 심각함을 무시한다면 거지의 존재 자체를 잊어버리는 것과 동일한 수준의 오류에 빠지게 된다. “외모 손상(disfigurement, 신체 훼손)”이 존재하는 한, 신화는 여전히 존재한다. 이 마지막 챕터는 풍요롭고 “자유로운” 사회에서 물질적 빈곤과 필연적으로 결부되어 있는 장애에 관한 상상력의 빈곤이 어째서 여전히 존재하는지에 대해 묻는다.
2004년 5월에 있었던 ‘테네시 대 레인’ 대법원 사건에 대한 의견을 일치하면서, 소터 판사는 이 Ugly Law를 대법원 기록에 남겼다. 그는 “증거들은” 미국 장애인법에 의해 “사법부 자체가 차별의 근거를 승인했었다는 것을 기록할 것이다”라고 그는 날카롭게 언급했다. 소터 판사는 몇 가지 예를 나열하면서 계속했다.
‘벅 대 벨’ 사건(1927)에서 사법부는 한 때 만연했던 정신장애인을 본인의 의지에 반하여 불임시키는 관행의 합헌성을 유지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았다. 인용한 글의 207쪽을 보자. (“타락한 자손들을 범죄로 처형하거나, 그들의 무능함(아둔함) 때문에 굶주리게 하는 것보다, 사회는 명백히 부적합한 자손들이 지속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그것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것이다. 바보들이 삼 대 이상 태어날 필요가 없다.”) 불임 시술을 강제하는 법률은 종종 무분별하게 제도화를 요구하며 특정 장애인의 결혼, 투표, 공립학교의 입학, 심지어는 공개석상에 나타나는 것까지 금지한다.
‘보기 흉한 거지’ 법령에 대하여 소터 판사가 남긴 일갈은 미국 사회게 장애인을 극단적으로 차별해 왔던 것을 노골적으로 지적한다. 대법관은 자기비판적인 태도로 훌륭하게 반성한다. Ugly Law가 모든 장애인을 대중 앞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도록 금지한 적이 있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지 않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보기 흉한 거지’ 법령에 대한 이야기, 당사자들의 기억을 법적 기록물에 쌓을 수 있었던 것 그 자체가 중요하고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소터 판사처럼 그 기억에 따라 행동하려고 노력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이 법에 대하여 “다른 악의 있는 차별과 마찬가지로 … 배려의 부족 … 이것이 우리 사회에 큰 해를 끼쳤다”고 소터는 이어 말했다.
이 책은 무관심으로 인한 해악의 역사이다. (무관심이라는 말에 힘을 실어주자.) 그것은 또한 자기 존중의 반대 형태(counterforms, 역형태)의 역사이기도 하다. 극작가 마이크 얼빈Mike Ervin은 이 법에 대한 집단적인 저항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음을 인정하면서도, 창작물을 통해 Ugly Law를 무효화하려는 가상의 역사를 펼쳐낸다. ‘보기 흉한 거지’의 체포가 “대중의 보이콧”를 촉발하는 시나리오를 구상했던 것이다.
수백 명의 병들과 기형을 가진 사람들이 장사를 하러 나가면서 시스템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어쩌면 다른 도시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노골적인 저항 행위가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경찰의 면전에서 전략을 짜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공원에서 소풍으로 하고 나비를 쫓았던 불구가 된 사람들의 무리를 두는 것만으로도 당국자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당국이 전투견이나 소방호스로 이 소풍들을 분산시켰을까? 만약 그들이 그랬다면 역사의 흐름이 얼마나 바뀌었을까? 꿈만 꿀 수 있을 뿐이다. (X)
2006년 척수 손상 독자들을 위해 활동했던 작가가 쓴 이 풍자적인 글인 <꿈만 꿀 수 있다one can only dream>는 현재의 결핍을 보여준다. 여전히 장애인들의 권리는 불안정하게 지체되고 있으며, 장애 운동은 충분히 동원되지 않으며, 여전히 장애인들이 일자리, 교육, 그리고 사회의 다른 측면에 충분히 포함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얼빈의 장난기 많고, 공공연한 정치적 수사는 또한 그의 지역사회와 거리를 담고자 하는 욕구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수사는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보기 흉한 거지’에게 빚진 것을 되돌려 주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The Ugly Law>는 클리블랜드에서 신문을 팔았던 한 남자와, 반쯤 마비된 북군 병사, 그리고 <몰리 달링>을 연기한 여자로부터 시작하여, 그 과거의 인물들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을 연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