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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및 기고문들

헤드윅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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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카메론 밋첼 , <헤드윅>, 2002.




1. 음악 영화 <헤드윅>

<헤드윅>은 음악 영화이다. 음악영화로 <비긴어게인>, <피아니스트>, <어거스트러쉬>, <원스>,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위플래쉬>, <아마데우스> 등등이 잘 알려져 있다. 음악영화는 대중들에게 줄거리나 감정을 쉽게 전달할 뿐만 아니라 좋은 음악을 통해 좋은 기억을 남게 해준다는 점에서 인기가 많다. 2시간 음악을 주로 들어야하기 때문에 지루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기 때문에, 가급적 오랫동안 들을 수 있는 대중적인 음악을 선곡하는 것이 보통이다. <헤드윅> 또한 유명한 음악 영화 중 하나이다. 감독인 존 카메론 밋첼은 <헤드윅>2년 동안 브로드웨이에서 크게 성공시킨 바 있었고, 그 인기를 바탕으로 영화 <헤드윅>을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감독은 음악의 전달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애니메이션이나 스토리텔링에 많은 공을 들여 영화를 완성하였다.

음악 영화의 특징은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영화의 진행에 긴장과 이완을 준다. 인물의 감정을 반영한다. 등장인물의 생각을 대사나 장면 없이 전달한다. 음악과 동작을 일치시켜 몰입감을 만든다. 관객에게 시간과 장소를 인식하게 한다. 영화의 통일감과 일관성을 유지하게 한다.

 

2. <헤드윅> 소개

존 카메론 밋첼이 각본을 썼으며, 뮤지컬로 공연하였다가 2000년에 영화화 하였다.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드랙퀸 공연연출가 트레스크가 각본에 맞는 곡을 만들어 공연에 사용하게 되었다. 트레스크를 중심으로 한 밴드 앵그리 인치밴드가 헤드윅의 공연에 출연하였으며, 이후에도 앵그리 인치 밴드는 영화와 뮤지컬 모두의 중심적인 멤버가 되고 있다. 1998년 외부 비평가협회 최우수 브로드웨이 뮤지컬상을 수상하였으며, 2000년에는 선댄스 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 감독상을 수상하였다. 한국에서는 2002년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 출품되어 처음 소개되었다.

* 존 카메론 밋첼 : 헤드윅, 숏버스, 래빗홀 등 연출

 

3. 단일 액자식 구성

헤드윅이 공연 중에 노래를 하면서 가사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형식이다. 실제 뮤지컬에서도 관객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영화에서는 헤드윅이 전하는 이야기를 작은 이야기로 삽입함으로써 이야기 전달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고 있다. 헤드윅은 한셀이었던 자신이 어떻게 헤드윅이 되었는지를 담담하게, 때로는 격분하면서 전달하는데, 이 때 음악은 헤드윅의 감정상태를 전달하는 중요한 수단이 된다.

 

4. 베를린 장벽과 헤드윅 (1:00~5:00)

독일 베를린 붕괴에는 독특한 사연이 있다. 1989119일 신임 중앙 위원회 정보 담당 서기인 샤보프스키가 중대한 발표를 하였다. 중앙 위원회는 동독인의 대규모 이탈상태를 방치할 수 없다는 생각에 동독인 여행의 자유를 보장하겠다는 발표를 한 것이었다.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결정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때 한 기자가 언제쯤 동독과 서독이 통일을 할 것이냐고 묻는 질문을 하였다. 이 질문을 잘못들은 서기관은 지금 당장이라고 대답하였다. 이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자 많은 동베를린 사람들이 장벽 부근의 동서독 출입지역으로 몰려가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주장하고, 실제로 붕괴해버리게 된 것이었다. 한 서기관의 말실수로 시작된 사태였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이 염원하던 일이라 수습할 수밖에 없게 된 상황이었다. 따라서 동독과 서독의 통합을 체계적으로 만들기 위해 1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였다. 지금까지도 동독인과 서독인의 완전한 통합이 이루어졌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통일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시기 동베를린 사람들이 통일을 염원했던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자유주의를 표방하였던 서베를린에서 유행하던 팝음악이었다. <헤드윅>에서도 서독의 라디오 주파수를 따서 팝음악을 접했던 헤드윅은 음악의 영향을 받으며 동독에서 벗어나기를 원하게 된다. 실제 국경을 넘나드는 자유의 의지가 팝음악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 헤드윅 제작에 큰 모티브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존 카메론 미첼은 트렌스섹슈얼을 대표하던 팝스타인 이기팝, 데이빗 보위의 열렬한 팬이었음이 알려졌는데, 실제로 데이빗 보위가 <헤드윅> 공연을 본 후 무대 뒤로 찾아와 존 카메론 미첼을 만났다고 한다. 감독은 매우 기뻐했다고.

헤드윅이란 인물은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의 사이에 낀 베를린 장벽 그 자체를 상징한다. 헤드윅은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중적인 구분으로 나누어진 성정체성 사이에 끼어있는 인물이며, 그 장벽을 부수고 자기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야만 하는 문제적 인물이다.

-공연 중 헤드윅의 공연을 불편해하는 관객들이 등장한다. 이는 감독이 스스로 이 작품이 사람들에게 어떤 불편함을 주는지 잘 알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매우 도발적인 작업임을 인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을 도발적으로 전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전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Tear me down>이라는 노래는 자신이 베를린 장벽과 유사한 존재임을 선언하고, 두 개의 갈라진 이념 사이의 존재이며, 그 안에서 분열하고 흩어진 존재라는 점을 알린다. 이념과 성 정체성 사이의 상징적 존재임을 말하는 것이다. “벽과 다리는 크게 다르지 않아. 내가 중간에 없으면 당신들은 헷갈리지벽 역시 두 가지 가치를 구분 지으면서 동시에 연결하는 존재라는 선언은 굉장히 중요해 보인다.

 

5. 이치학, 경계에 선 인물

이치학의 정체는 이 영화에서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추측해야 하는 인물이다. 초반에 등장하는 이치학은 헤드윅과 경쟁하는 인물이며, 동시에 성적으로 연결된 인물이다. 또한 억양으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소련출신의 난민(?)이라는 점이며, 성적 정체성이 모호한 인물이다. 몰래 헤드윅의 가발을 쓴 점으로 미루어보아, 이치학 역시 여성이라는 성역할을 갖고 싶어하지만, 헤드윅의 반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후반부에야 등장하는 설정이 이 두 사람이 결혼한 상태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헤드윅은 이치학이 여성의 성을 지니지 못하게 한다. 이는 헤드윅의 예민하고 공격적인 성향을 잘 드러낸다. 이치학의 자유의지를 억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헤드윅이 여성성을 담지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짝은 남성성을 지녀야만 한다는 의미로 읽히기도 한다. 이는 강제된 성역할을 헤드윅 역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보여준다. 이후에 이치학에 대해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이치학의 실제 성이 여성인지 남성인지 알 수 없게 되어 있다. 공연에서도 이치학은 항상 여성배우가 연기를 한다. 중간중간 목소리를 통해서도 여성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극에서 이치학이 여성이었으나 남성의 연기를 하는 것인지, 남성이나 여성성을 가지고 싶어하는 것인지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다. 이치학의 존재를 통해 <헤드윅>이라는 영화가 이분법적인 성을 붕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데올로기적 혼종성과 관련.

 

6. 헤드윅의 결핍에 관한 이야기 The Origin of Love (12:25~19:05)

<헤드윅>에서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주제곡이다. <사랑의 기원>에서 노래하는 것은 플라톤의 향연에서 아리스토파네스가 주장하는 이야기이다. 향연사랑에로스의 신에 관해서 여러 철학자가 토론하는 장면을 플라톤이 정리한 글이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사랑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하는 것이다. 태양의 아들인 남성, 지구의 자식인 여성, 달에서 태어난 남녀성이 인간의 본성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완성체였기 때문에 신을 위협하였는데, 그를 참을 수 없었던 제우스가 그들을 두동강이로 쪼개고, 흩어지게 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현재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 포옹하고 자식을 낳게 된 것은 본래 몸뚱아리를 한데 모아 인간의 본래 구조를 회복하려는 노력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사상이고, 자신의 반쪽을 찾아 헤매는 것이 현재 인간의 상태라고 말한다. 헤드윅은 아리스토파네스의 이 내용에서 적지 않은 위로를 받으며, 자신이 지금 고통 받는 이유가 자신의 반쪽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아리스토파네스가 이러한 주장을 펼쳤을 당시는 동성애와 이성애가 그다지 심하게 구분되지 않았을 때이며, 오히려 남성간의 동성애는 엘리트적인 철학자들의 모임을 결성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당연하게 여겨졌던 시기이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한 때 이렇게 생각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헤드윅에게는 위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헤드윅은 자기자신의 고통의 정체를 아직 알지 못한다. <사랑의 기원>을 노래로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지난 시간에 언급했던 문제적 인간의 정체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헤드윅이 그리워하는 것은 완전함이다. 사람과 사람이 흩어지기 이전, 완전해서 마음의 결핍을 느끼기 이전의 모습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완전한 사랑을 잊어버렸다고, 그래서 외롭고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는 헤드윅은 자신의 반쪽을 찾아 완전한 아름다움을 되찾고 싶어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다.

*헤드윅의 표정 : 눈썹의 모양. 고통과 슬픔, 불완전을 표시

 

7. 25세에 처음 경험한, 자유를 향한 의지와 성 정체성 Sugar Daddy((25:50)~28:11~

루터 로빈슨 대위를 만나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인식하게 되는 장면이다. 그런데 헤드윅은 이 때 로빈슨 대위를 만나서 맛보았던 구미베어 젤리의 맛으로 그 순간을 기억한다. 그리고 동베를린의 어린 소년에게 그 젤리의 맛은 권력의 맛이자, 처음으로 동베를린을 탈출하게 해주는 맛으로 기억한다. 자유주의, 자본주의, 아메리칸 드림이 헤드윅에게는 당시에 간절했던 것이다

 

8. 자유에 따르는 희생, 경계에 선 인간의 상징 Angry Inch(31:33~36:20)

2.54cm. 베를린 장벽, 괴물, 경계적 인간으로 만든 상징. 성전환 수술 실패로 인해 자신의 몸에 각인되어버린 1인치가 헤드윅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었으며, 여성이 아니면 남성밖에 수용되지 못하는 사회에서 갈갈이 찢겨버린 존재가 되어버리게 된 사건이다. 헤드윅은 <Angry inch>라는 노래를 통해 자신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 분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공연 중 싸움, 폭력사태) 밴드의 이름도 <Angry inch>라는 점에서 이 1인치가 헤드윅을 상징하는 중요한 부분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로빈슨과 어머니가 헤드윅의 탈출을 도와준 존재임에도 조금 이상하게 묘사되고 있는 이유는 어린 한셀에게 큰 고통을 준 이유를 이들에게 전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9. 트렌스섹슈얼의 인정, 자기화 Wig in a box

욕망의 삼각형을 기억하시리라 생각한다. 욕망의 삼각형의 비극을 헤드윅이 잠시 보여준다. 자신을 미국으로 탈출시켜주었던 로빈슨 대위는 자신이 아닌 또다른 소년을 데리고 헤드윅을 떠난다. 헤드윅은 로빈슨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오면 무엇이든 달라져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다지 행복하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고민해본적도 없었던 것이다. 헤드윅이 찾는 반쪽이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정말 그 반쪽을 찾는다고 행복해지는 것일까?에 대해서 고민해보게 한다. 그리고 <헤드윅> 역시 나름대로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아보는 영화라 할 수 있겠다.

세상이 약간 빛나간 밤변화를 인지하는 장면이다. 헤드윅은 로빈슨이 떠나고 나름의 생존방법을 찾아나선다. 그것이 가발을 쓰고 누군가로서 살아가는 것. 트렌스젠더로서 자신을 피하지 않기로 한다. 자기 정체성을 꾸밀 수 있게 되었다는 자각이 생긴 것이다. 그 대표적 상징물이 가발인 것. ‘가발을 쓰면 자신이 원하는 누구라도 될 수 있기 때문에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가발을 쓰고 또 다른 누군가를 흉내내는 것이기 때문에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될 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 가발 옷 : 가발을 쓰고 자신을 치장함으로써 세상에 나서겠다는 두 번째 자각.

 

10.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위로의 노래 Wicked little town(4:30~8:05)

보모 일을 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헤드윅은 운명같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10대 청소년이었던 토미를 만나게 되었던 것. 이미 관객들을 알 수밖에 없는 인물인 토미는 헤드윅이 사랑하면서도 증오하는 락스타가 되어 있다. 헤드윅은 토미가 공연하는 곳마다 따라다니면서 공연을 하고, 토미가 자신의 노래를 부를 때마다 미치도록 증오한다. 그런 토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Wicked little town>은 방황하는 청년인 토미를 헤드윅이 위로하는 장면이다. 헤드윅이 무슨 권한으로 토미를 위로할 수 있었던 것일까. 헤드윅은 이미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자기자아를 찾았다고 가정되는 인물이며, 토미는 아직 그것을 찾지 못한 어린 소년이다. 토미는 헤드윅에게서 음악과 자아, 이름을 배우고 얻는다. 토미는 이브가 아담에게 지식을 전달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헤드윅은 토미의 이브였던 것이다. 토미에게서 운명을 느낀 헤드윅은 토미가 자신의 반쪽이라고 믿게 된다.

(이 노래는 헤드윅이 토미를 위로했던 노래지만, 이후에 오히려 토미가 불완전했던 헤드윅을 이해하게 되는 노래가 되어 돌아온다.)

 

헤드윅은 토미가 자신의 반쪽이라고 믿으며, 반쪽이 되어주기를 원했지만, 토미는 헤드윅의 1인치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리고 토미는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어렸고’, ‘다른 무언가를 찾고 있었기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데에 더 급급했기 때문이다. 헤드윅은 토미에게 징표를 남긴다. 징표가 의미하는 것은 확실하지 않다. 다만 헤드윅에 토미에게 준 자신의 조각이었던 것이다. 토미는 이후 토미 노시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면서 헤드윅의 조각을 안고 산다. 헤드윅에게 토미는 자신의 부서진 조각이며, 아픈 상처였던 것이다.

 

11. 부서진 마음과 육체 Exquisite Corpse (27:28~ 34:40)

12. 화해와 화합, 온전한 자신을 받아들이기 Midnight Radio(34:45~40:20)

헤드윅은 토미를 만나기 전 나름 자신의 선택이 스스로를 완성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계속 마음 속으로 자신의 반쪽 찾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토미를 놓지 못하고 스토킹을 하고 있었던 것. 그런데 토미의 노래로 헤드윅은 자신의 조각 하나를 돌려받는다. 이마의 표식이 그것을 의미한다. 조각을 돌려 받은 헤드윅은 가발과 화려한 의상을 모두 벗어던진 상태이다. 이 상태의 헤드윅은 무언가를 깨닫는다. 무언가 완성된 것만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진정으로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화해하고 있지 못했음이다.

헤드윅은 토미와 스스로에게 위안 받고 난 뒤에야 이치학과 그리고 자신과 화해할 수 있게 된다. 자신에게 우연한 기회에 와 닿았던 라디오 전파처럼 우리 모두에게는 그러한 특별함이 존재한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밤하늘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와 닿는 라디오 전파처럼, 우리는 한 명 한 명 밝게 빛나고 있다고 노래하는 것이다.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고 세상 밖으로 나가는 헤드윅의 뒷모습이 밝지만은 않지만, 이제야 제대로 다시 시작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게 한다.

이것이 욕망의 삼각형을 벗어난 주체-되기의 서사라고 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향연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다른 반쪽을 찾고 있는 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소릴 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기의 반쪽을 찾는 것도 아니요, 전체를 찾는 것도 아니에요. ~ 사실, 인간은 자신에게 유해하다고 생각되면 자신의 손이나 발도 자진해서 잘라버리고는 합니다. 자기 것이라고 해서 덮어놓고 좋아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나는 생각해요. ~~~ 사랑이란, 언제나 자기 자신을 위해서 좋은 것을 가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음악 영화는 음악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해버리려는 손쉬운 해법을 제시하고는 한다. 하지만 그만큼 음악은 진실한 마음을 전달하는 데에 너무나도 적합한 소재이기도 하다. 실제 헤드윅이 저 길거리로 나가서 행복해졌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삶을 살아가는 태도는 달라졌을 것이며, 그것이 나름대로의 해법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