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체주의 선전
전체주의 ‘운동’은 선전과 테러라는 방식으로 제국주의 내/외부를 구성한다.(이후 선전과 조직이라고 수정) 테러가 제국주의 내부를 향한 것인 반면에 선전은 전체주의의 외부의 국가들, 즉 비전체주의 국가를 향한다. 이 장에서는 비전체주의 국가들을 향한 선전의 방법과 기술을 밝히고, 선전에 동화되어 간 대중의 특성까지 드러내고 있다.
선전은 항상 전체주의 운동의 외부를 향한다. 이미 ‘운동’에 소속된 사람들은 선전의 대상이 아니라 주입식 교화의 대상이 된다. 내부에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안전감을 얻는다. 전체주의는 일단 대중을 확보하게 되면 대중이익보다는 비전체주의 국가를 향한 선전에 더욱 관심을 기울인다. 이들에게 전체주의의 실증성과 정확성을 알려 세계를 자신의 휘하에 두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체주의가 집단주의와 공리주의를 주장하면서도 실제 대중의 이익에는 관심이 없다는 사실은 전체주의가 지닌 팽창의 욕망에서 찾을 수 있다.
선전은 과학적 예언의 형식을 취하여 방법적 효율성과 실증주의적 믿음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현대사회의 기업광고와 유사한 성격을 갖는다. 사회주의와 인종주의가 과학적 확실성을 대중에게 심어주어, 그것을 “역사발전의 자연법칙”이라고 믿게끔 한 것이 그 실례이다. 따라서 선전은 방법적인 효율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내용적인 부조리의 극치를 보인다. 대중은 예언을 오류가 불가능한 선언이라고, 반드시 현실에서 실현가능한 것이라고 믿었다. 대량학살 계획을 실천할 수 있었던 것도 유대인에 대한 증오와 처리를 예언했기 때문이었다. ‘운동’의 특성은 예언의 실현가능성, 오류불가능성에서 기인하였다. 예언으로 선언된 모든 거짓말이 실현되고 현실화되기만 하면 대중의 신임을 얻을 수 있었다. 전체주의는 세계정복을 목적으로 하였고, 이는 대중의 욕구와 일치했다.
전체주의의 선전 기술을 통해 대중의 특성을 확인할 수 있다. 첫 번째 특성은 ‘신비로움’을 향한 맹목적 믿음이다. 제국주의는 국민국가의 정당 선전이나 여론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숨겨두었던 것들을 주로 선전의 주제로 삼았다. ‘신비로움’이 선전의 주제가 되었고, 그 효과로 대중은 눈에 보이는 것을 믿지 않게 되었다. 두 번째는 ‘일관성’을 열망한다는 것이다. 대중은 고향상실감, 즉 사회적 지위를 상실하고 원자화된 인간으로서 공동체적 관계의 전체 영역을 상실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사실주의, 개연성이 확실한 것, 일관적이고 단순한 법칙으로 도피하고자 했으며, 어떤 이데올로기에도 빠져들기 쉬웠다. 따라서 대중을 현실세계로부터 차단하는 능력이 요구되었다.
나치는 대중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이데올로기로 ‘유대인의 세계 음모설’(시온장로의정서)을 선택했고, 유대인은 그들이 지닌 실제 영향력이나 권력과는 상관없이 증오의 대상으로 호명되었다. 독일국민은 자신이 유대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면 가상적 안전성과 일관성의 영역에 머무를 수 있었다. 반유대주의는 “모든 개인의 사적인 실존과 관련된 일신상의 용무”를 선전의 핵심으로 설정한 것이다. 나치는 원자화되고 정의할 수 없으며 불안정하고 무익한 개인들로 이루어진 대중에게 자기 정의와 자기 확인의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가상적 안정성을 산출했다. 같은 의미에서 볼셰비키의 정책은, 당원들을 "타고난 프롤레타리아"로 조직하였다.
나치는 유대인을 향한 증오감을 유럽 전역에 선전함으로써 민족공동체를 넘어선 운동의 확장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들은 모든 독일인의 본성의 평등을 주장하였고, 모든 아리안족을 운동의 내부로 끌어들이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일관성을 요구하는 대중의 특성과 선전이 결합하여 전체주의는 더 이상 과학적인 것, 진실을 확인하는 것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예언이 실현된다는 믿음을 주는 것, 그리고 실제로 그것을 실현할 ‘운동’의 영속성이 중요했다. 따라서 그 운동을 유지하는 ‘조직’이 전체주의 운동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된다.
2. 전체주의 조직
전체주의의 조직은 전체주의 운동의 실체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전체주의는 ‘지도자 원칙’, 즉 상명하달식의 원칙으로 운동하지 않는다. 지도자는 권력과 법에 위임되어 적용되는 위계조직이기 때문에, 명령이 위계질서에 의해 실현된다는 점에서 전체 위계질서에 명령권자의 권력이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전체주의의 조직, 위계질서의 움직임이 운동의 급진성과 중요성을 결정한다.
나치는 대중을 동조자와 당원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동조자의 인원은 확대하면서 당원은 인원을 제한했는데, 이때부터 동조자가 당원을 보호해야 한다는 구호가 반복되었다. 동조자 일선조직은 외부의 정상적 세계로부터 당원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당원의 급진성과 과격성이 비전체주의 국가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완화하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세계에 나치가 집단주의적으로 비춰지지 않게 정상성의 범위를 보여주는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동조자 일선조직의 작동방식은 전체주의의 외관이자 세계의 외관이라는 이중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 덕분에 나치 내부의 계급조직이 지닌 ‘혁명적’ 신념과 ‘정상성’의 괴리감은 노출되지 않았다. 전투성이 강한 완전한 내부와 정상세계를 완전히 격리하는 것이 동조자의 역할이었다.
이러한 형태는 무한 반복된다는 특징을 지니는데, 특히 나치당의 전체 역사를 통해 볼 수 있다. 나치당은 나치 운동 안의 새로운 조직체가 무한 반복되는 점, 새로운 층이 끊임없이 구성되어 권력 중심에 있던 당이 끊임없이 원의 외부를 밀려나게 된다는 점에서 나치 운동의 핵심을 볼 수 있다. 나치 엘리트 조직 또한 나치 나치돌격대(SA)에게 밀려나고, 나치돌격대도 마찬가지로 나치친위대(AA)에게 밀려났던 것은 이 ‘운동’의 특성을 보여준다. 이들 엘리트 조직의 당 내적인 역할은 일선조직과 정반대이다. 이들은 운동의 탈퇴자에게 조직폭력을 행사함으로써 대중에게 안전감을 산출한다. 동시에 그들은 대중에게 살인의 공동책임을 안겨준다는 점에서 동조자와 다른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지도자 역시 이중기능을 지닌다. 지도자는 엘리트 집단과 분리되어 측근집단 사이에서만 알려진 익명성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대중을 선동하는 아우라, 즉 ‘막연한 주도권’을 선보이는 능력과 구성원을 수시로 바꾸는 기술을 선보여야 한다. 그리하여 지도자에게는 그의 의사(意思)가 곧 당의 법칙이 되고 그의 명령이 법률이 될 수 있도록 강한 지도력이 요구된다. 그러나 지도자의 기능은 당원들 대표하고 있어야 한다. 즉 부하와 절대적으로 동일시 되어야 하며, 살인 등의 모든 잘못에 총체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외부에서 볼 때 지도자는 전체주의의 대표자로 보이게 된다. 비전체주의 국가에서 지도자에게 조직적 변화를 요구하는데, 요구한다고 해도 그것은 실현될 수 없다. 지도자는 조직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전체주의에서 경찰조직에 권력이 집중되는 이유는 전체주의의 조직이 비밀경찰조직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경찰이 “외부의 모든 것은 소멸한다”고 한 주장은 내부와 완벽하게 동일시되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배제할 수 있다는 전체주의의 비밀과 같다. 이 조직이 중요성은 끊임없이 허구세계를 세우고 지켜갈 수 있는 능력에 있다. 따라서 급진적인 조직의 목표보다는 조직의 구성방식이 더 비밀에 부쳐진다. 예를 들어 이질적인 인종은 말살한다는 나치의 폭력적 목표과 세계혁명을 이루겠다는 볼셰비키의 급진적 목표는 선전도구로 사용된 반면에, 조직의 구성양식은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동조자는 조직의 이러한 구성방식은 알지 못했다. 동조자가 자신의 당이나 지도자가 선전하는 모든 거짓말을 진실이라고 믿은 반면에, 당원들은 지도자의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당원들은 오히려 거짓말을 현실적으로 실현하는 운동의 능력에 감탄했다. 엘리트의 높은 교육은 선전의 진의를 알아채는 데 도움이 되었다. 따라서 선전의 진실보다는 무오류성이 운동을 지속시키고 안정감을 제공할 것이라는 점에 동의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전체주의 위계질서의 특징은 ‘경신과 냉소’라고 표현할 수 있다. 동조자는 쉽게 믿으며, 엘리트 집단은 대중을 기만하는 지도자를 지지했다. 동조자와 엘리트의 각기 다른 이해방식 덕분에 전체주의 운동의 선전과 조직이 존재할 수 있었다. 전체주의 조직에서 더 이상의 과학과 진실은 필요하지 않았다. 위와 같은 위계질서와 구성원의 충성심이 있다면 전체주의의 운동은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