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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김홍중, <문화적 모더니티의 역사시학> 요약 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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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진보의 역사철학 대 순간의 역사시학

  근대는 역사적 진보의 관념을 바탕으로 계몽적 이성을 강조한 시대이다. 역사적 진보의 관념은 보다 완전한 시대로 나아가는 유토피아적 사상을 담는다. 이 진보 관념은 정치적으로 민족국가의 형성을,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확립을, 사회적으로는 부르주아 시민사회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19세기 중·후반에 이르러 진보 철학의 근대적 의식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근대에 맞서는 대항근대성, 즉 문화적 모더니티를 주장한다. 그들은 진보의 역사철학과 대비되는 ‘순간의 역사시학’을 주장한다. 순간의 역사시학은 갑작스런 정지와 단절, 불규칙적인 리듬, 끝없는 회귀와 반복, 고대와 현대의 시대착오적 결합 등 시간이 반복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불규칙적이고 파편적인 시간 안에서 '희망의 원리'를 발견하고자 한다. 이러한 순간의 역사시학을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니체의 영겁회귀와 벤야민의 변증법적 이미지를 제시한다.

2. 시간체험의 구조변동 : 종합적 체험으로부터 사건적 체험으로

  칸트 이후의 진보철학에서는 경험이란 인식의 주체가 선험적 종합능력을 통해 경험에 일관적인 형식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개인의 경험하는 시간과 공간은 종합, 일체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화적 모더니티를 대표하는 시인인 보들레르는 만보객 역할을 자청하면서, 현대 인간은 엄청난 속도와 다양성으로 인해 주체가 종합의 권능을 유지할 수 없는 불안정한 존재라고 파악한다. 이렇게 거대한 도시 공간에서 경험하게 되는 즉발적이고 일시적인 경험을 충격경험(Chokerlebnis) 혹은 사건적 경험(Erlebnis)이라고 한다. 종합적 경험이 서사적으로 타자에게 전달되는 반면에 충격경험은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다가 그것이 갑자기 환기될 때에만 회상할 수 있다. 이는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보여준 무의지적 기억과 같은 맥락에 있다. 의식을 강타했던 과거의 사건은 금세 잊힌다. 하지만 그 사건은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다가 어느 순간 '사후적'으로 다시 나타난다. 이것이 바로 억압과 망각을 뚫고 나타나는 각성의 순간이다.

3. 영원을 내포한 순간의 역사철학 : 니체의 영겁회귀

  진보개념을 비판하고 사건적 체험, 순간의 체험에 관심을 둔 철학자들이 다수 등장한다. 페기(Charles Peguy)의 '순간적인 영원', 벤야민의 '기원', 니체의 '동일자의 영겁회귀', 에른스트 블로흐의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 혹은 프란츠 로젠츠바이크(Franz Rosenzweig)의 '계시'등이 그것이다. 특히 니체는 <즐거운 지식>과 <이 사람을 보라>에서 영겁회귀를 제시한다. 니체가 말하는 영원 회귀란 모든 것이 아무런 목적도 없이 영원히 되풀이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죽어도 다시 되돌아와서 의미도 목적도 없는 삶을 거듭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영겁회귀는 영원한 반복과 순환 속에서 모든 것은 '이미' 말해졌고, 모든 것은 '이미' 만들어졌으며, 모든 것은 '이미' 완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허무주의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니체는 모든 것이 동일한 상태, 동일한 순서로 반복된다고 규정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다고 여긴다. 따라서 가장 낡은 것의 반복이 새로운 것으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결국 영겁회귀로 인해 사람들은 새로움과 낡음, 일회성과 반복성의 이분법을 지워버린다. 과거는 흘러가 버린 사물로 남지 않고 다시 돌아온다. 지금 이 순간은 덧없이 흘러간 사건적 순간의 또 다른 반복이다. 니체가 본 근대는 끝없이 반복되는 영겁회귀였다. 그러나 니체는 잃어버린 시간을 순간을 통해 다시 회복하는 '힘에의 의지'를 발휘하는 인간상을 요구한다. ‘힘에의 의지’는 “전 세계를 자신의 힘에 비추어 측정하고 감지하며 형성하는 것”이다. 즉 보다 큰 힘을 실현하기 위해서 세계를 측정하고 감지하면서 하나의 관점을 형성하는 것이다. 니체는 이것을 ‘원근법적’(perspektivistisch) 성격이라고 칭한다. 근대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세계를 측정하는 원근법적 시선으로 조망하고 감지하는 감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4. 역사의 카이로스에 대한 독해법 : 벤야민의 변증법적 이미지

  벤야민은 니체보다 더욱 구체적으로 근대적인 공간 안에서 과거의 시간이 현재의 시간과 결합하는 모습을 포착한다. 그는 현대기술이 '자연을 새로운 시각에서' 다시 나타나게 하고, '인간의 가장 오래된 환상, 욕망 그리고 불안을 여는 새로움이라는 외양 아래서 다시 부활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따라서 근대는 탈마법화의 시대가 아니라 집합환몽(fantasmagorie)의 시대이다. 그에게 진보의 믿음 또한 신화적 사유양식이다.

  그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깨어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고 보았으며, 그러한 미적 효과의 창출을 위해 변증법적 이미지(dialektische Bild)라는 개념을 마련한다. 변증법적 이미지란 '순간'의 이미지이며, 그 순간에 과거의 사건들이 다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진보적 역사관은 민족, 계급, 남성 등의 승리자의 기록으로 채워졌다. 그러나 벤야민은 패자들의 역사를 끄집어낸다. 진보의 잔해들에서 패자들의 파편을 꺼내어 다시 역사서술을 하는 것이 벤야민의 역할이었으며, 그 방법론적 도구가 이 변증법적 이미지였다.

5. 순간의 역사시학의 한계와 기다림의 윤리

  순간의 역사시학은 유토피아 사상이 아니라 구원의 사상을 지향한다. 구원이란 사건이며 개입이며 순간적인 기억이다. 프루스트, 프로이트, 니체, 벤야민 모두에게 구원이란 신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서 구원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그것을 재구성하는 것에 있다. 따라서 문화적 모더니티는 시간의 가장 내밀한 곳에서 해방의 가능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주장은 수동적으로 메시아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이 시간에 적극적인 실천적 행위를 통해 근대적 연속체를 파괴하는 혁명적 개입으로 전화된다. 따라서 그들에게 사회주의 혁명은 점진적 단계를 거쳐 언젠가 도래하게 될 자동적 과정이 아니라, 번개처럼 한 순간 세계를 강타하고 정화하는 '메시아적 폭력'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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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찬국,『해체와 창조의 철학자, 니체』, 도서출판 동녘, 2001. 참조

2. 이는 이상(李箱)의 시, 오감도(烏瞰圖)의 이미지와 매우 흡사하다. 건축용어인 조감도(鳥瞰圖)에서 빌려온 이 제목은 높은 곳에서 도시공간을 조망한다는 의미를 담는다. 즉 이상은 세계를 조망, 관찰하는 시선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니체의 의견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