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습작 및 기고문들/<Ugly Laws> 번역 연재

<Ugly Laws>, Susan M. Schweik. 서문(PREFACE) 번역

728x90

 
 
  이 책은 장애 문학 이론 연구자로 잘 알려져 있는 토빈 시버스Tobin Siebers가 UC 버클리에서 진행한 강연으로부터 시작한다. 내가 영문학 교수로 재임 중인 버클리는 학제 간 장애 연구 프로그램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학자들의 모임이 있으며, 나 역시 이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우리는 토빈을 초대하여 강의를 부탁하였다. 토빈이 강의를 진행하면서 미국법령을 간단하게 인용했는데, 그것이 지금의 나의 연구 주제가 되었다. 그 미국법령은 이미 나에게 굉장히 익숙한 것이었다. “질병을 가지거나 신체 장애를 가진 사람들, 기형을 지닌 사람들”이 대중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도록 한 것은 미국의 법령이 그들을 “Ugly Law”라는 추악한 말로 호명하였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나는 충격을 받았고 격분했다. 당시 장애 연구를 함께 했던 동료 학자인 프레드 콜리뇽(Fred Collignon)이 나에게 기대어 속삭였다. 프레드 콜리뇽 교수는 대학에서 장애 정책을 연구했을 뿐만 아니라 도시 정책 경험을 바탕으로 도시·지역 계획의 오랜 역사를 연구했다. 그는 나에게 저 법이 줄곧 적극적으로 시행되어 왔었다는 걸 알고 있었었는지를 물었다. 나는 몰랐다. 내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갑자기 심각하게 느껴졌다. 나는 알아내야만 했다. 이 프로젝트는 그가 나에게 속삭이며 질문했던 그 순간에 시작되었다. 도시계획자와 문학비평가가 주고받은 이 대화 자체가 장애 연구의 학제 간 다양성을 예시하고 있었다.
 
  Ugly Law는 “보기 흉한 거지 조례(Unsightly beggar ordinances)”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 책 <The Ugly Laws>는 특히 1980년대와 1890년대에 나타난 다양한 형태의 담론과 지식을 통해 “보기 흉한 거지”가 어떻게 묘사되었는지에 대하여 이야기할 것이다. 나와 같은 시기에 유사하면서도 상호 연관되는 연구가 있었다. 소위 부랑자라는 주제를 문화충격으로 다룬 연구였다. 팀 크레스웰Tim Cresswell은 부랑자에 대한 그의 연구에 “보기 흉한 거지들”이란 “만들어진 것”이라는 주장을 집어넣었다. 이안 해킹Ian Hacking과 크레스웰의 논쟁에 따르면 부랑자는 말보다는 장갑에 가까운 것으로, 만들어진 것, “마치 제작된 물건들”과 같다는 것이다. ‘장갑’의 카테고리와 ‘장갑’이라는 물건은 거의 동시에 나타났다. 부분적으로 이 연구는 이들이 같은 정치적·경제적·물질적 기반 시설로부터 만들어진 자들로서, “보기 흉한 거지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것이 트램프tramp를 생성하는 것이다.
 
  나는 또한 다른 관점에서 “장갑”을 검토하려고 노력해왔다. 2004년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는 자신의 연설에서 자신의 지적 작업의 자전적 근원을 추적하였다. 이 강의에서 그는 자신이 유아기에 구개열을 가지고 태어나서 수술을 받았고, 그로 인해 언어 장애를 얻게 되어 동급생들에게 사회적으로 배제되었던 경험을 묘사하였다. 이러한 개인적 경험들은 공공 영역의 중요성과 Ugly Law의 분석에 있어서 중요한 주제인 정치적 공공 영역에 대한 그의 생각을 형성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한 사람이 타인에게 지니는 뿌리 깊은 상호 의존”과 “인간 마음의 상호 주관적 구조”에 대해 분석하면서 하버마스 역시 ‘장갑’에 대한 이미지를 사용한다. “제가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이 상상하실 수 있는 주관성의 이미지입니다. 여러분이 상상하실 수 있는 것은 그 직물의 구조를 분별하기 위해 뒤집어진 장갑, 즉 상호 주관성의 가닥으로 직조된 장갑입니다.” 만약 The Ugly Laws의 “보기흉한 거지들”이 장갑과 같다면, 나는 장갑의 안과 속을 뒤집어 놓기 위해 노력했다. 장애 운동이 제공하는 렌즈의 아래를 면밀히 들여다보았고, 장갑의 울퉁불퉁한 가장자리를 조사하였다. 이를 통해 한 장애 운동 저널의 제목이 제공하는 영속적인 이미지를 차지하고자 하였다.
 
  내가 조사하는 직조의 가닥은 곧 텍스트이다. 이 책을 위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나는 가끔 실제 장소들을 방문했다. Ugly Law에 관한 자전적인 책을 출판했던 작가인 아서 프랭클린 풀러Arthur Franklin Fuller의 버클리 생가나, 1894년 또는 1913년에 특정 신체 불구의 부랑자를 모으는 장소로 특정되었던 시카고의 거리 모퉁이나, 로스앤젤레스의 잔디 등이다. 이 장소들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실제 사람들도 인터뷰했다. 1974년에 마지막으로 체포된 것으로 알려진 “보기 흉한 거지”의 재판을 맡았던 오마하의 한 판사를 만났다. 그는 오늘날 장애 운동가가 되었다. 그러나 나의 종합적인 목표는 ‘담론’을 인터뷰하는 것이고, 내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산만하고” “보기 흉한 거지”이다.
 
  “구걸을 할 권리를 얻는다고 해서 진정으로 기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뉴욕시를 대변하였던 변호사가 1990년의 사건에서 승소하고 난 후에 남긴 말이다. 그러나 이후에 이 판결은 뒤집혀서 부랑자들이 지하철을 탈 수 있는 권리가 선언되었다.(미첼, 210) 거지들은 어떤 형태로도 이를 축하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보기 흉한 거지”와 “보기 흉한 사람들”을 만드는 메커니즘을 가능한 한 최대한 명확하게 설명하려는 시도였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Ugly Law의 문화의 모든 흔적이 결국엔 사라지기를 바랐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의 친구 마크 리몬트Mark Limont는 “이상하게 걷고, 빤히 쳐다보는 사람”이었던 그의 어릴 적 경험에 대하여 이야기해주었다. 그는 거리에 명백한 장애인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분노와 굴욕을 느꼈고, 그 남자가 집에 가서 자신을 난처하게 하지 않기를 바랐었다고 어린 시절의 기억을 묘사했다. 그는 “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의 Ugly Law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반드시 그것들을 극복해야 한다.”고 했다.
 
  이후의 모든 글은 Ugly Law를 극복하기 위한 나의 노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