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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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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민

"폭민을 국민으로 동일시하는 근본적 오류" 

"폭민은 일차적으로 각 계급의 낙오자들을 대표하는 집단이다. ~ 국민이 모든 혁명에서 진정한 대의제를 위해 투쟁했다면, 폭민은 항상 '강한 자', '위대한 지도자'를 소리 높여 외친다. 폭민은 자신을 소외시킨 사회를 증오하며, 자신을 대변해주지 않는 의회 역시 증오하기 때문이다." <전체주의의 기원1>p.242

 

"폭민은 성장하는 산업 노동자와도 또 더욱 분명하게는 국민 전체와 동일시될 수 없으며, 실제로 모든 계급의 폐물들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이었다. 폭민은 이렇게 구성되었기 때문에 폭민과 그 대표자들이 계급차이를 폐지한 것처럼 보였고, 또 계급 국가의 밖에 있는 그들은 왜곡된 형태 또는 희화화 된 형태의 국민이라기보다 국민 자체(나치가 말하듯이 국민공동체)처럼 보였다. ~ 폭민이 부르주아 사회의 폐물일 뿐만 아니라 이 사회가 직접 생산한 부산물이며, 그래서 결코 이 사회와 분리할 수 없다는 것." <전체주의의 기원1>p.314

 

 

"팽창의 발견이었다. 팽창은 어떤 특별한 나라에 대한 특별한 욕망 때문에 추구되는 것이 아니었다. 팽창은 모든 나라가 또 다른 팽창을 위한 디딤돌로서만 작용할 뿐인 그런 무한한 과정으로 생각되었다. 이런 개념에서 보면 명예욕은 더 이상 자신의 국민을 위해 어떤 다른 민족을 영광스럽게 정복함으로써 충족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 어떤 사람이 개인적 자질이나 결점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가 한번 팽창이라는 끝없는 과정의 큰 소용돌이 속에 휩쓸려 들어가면 그는 곧 과거의 그가 더이상 아니고 과정의 법칙에 종속하게 된다. 또한 그는 전체 과정을 계속 작동시키기 위해 자신이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런 익명의 힘과 스스로를 동일시하게 된다." <전체주의의 기원1> p.407

 

"팽창의 힘을 대변하는 익명의 비밀 요원들은 분명 인간이 만든 법에 복종해야 한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들이 따르는 유일한 '법'은 팽창의 법이었고, 그들의 '합법성'의 유일한 증거는 성공이었다. <전체주의의 기원1> p.408

'약자의 수호자' 

'게임의 본질적인 무한성과 비밀 자체' 

'자기 삭제의 완전한 비밀'

 

"내부의 가제는 한 사람을, 그가 혼자 있을 때조차 테러의 강철 끈 속에 스스로를 맞추게 하며, 전체주의의 지배는 단독 유폐라는 극단적 상황을 제외하고는 그를 결코 혼자 내버려두지 않는다." <전체주의의 기원2> p.280

 

 

 

"다원성은 모든 정치적 삶의 '필요조건'일 뿐만 아니라 '가능조건'이라는 의미에서 '절대적 조건'이다." <인간의 조건> p.56

 

"사유는 언어에 비하면 부차적이다. 그러나 언어와 행위는 동시대적이고 동등한 것이자 동일한 지위에 속하는 것이다. 이것이 본래 의미하는 바는 대부분의 정치적 행위는 그것이 폭력의 영역 밖에서 이루어지는 한, 말을 통해 실행되며 또 더 나아가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말을 발견하는 것이 - 이 말에 담겨 있는 정보와 의사소통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행위라는 점이다." <인간의 조건>p.77 

 

 

노예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폴리스의 삶과는 대립된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유가 전적으로 폴리스 영역 내에 위치하고, 필연성은 일차적으로 전정치적 현상으로서 사적 가정조직의 특징이며 강제와 폭력은 필연성을 제어하고 자유롭기 위한 수단으로서 이 영역에서만 정당화된다는 사실을 당연시했다. 모든 인간이 필연성에 예속되어 있다는 사실은 타인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한다. 폭력은 세상의 자유를 위해 삶의 필연성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인간의 전정치적 행위이다. 이러한 자유는 그리스인이 '행복한 삶'(endaimonia)이라고 부른 것의 본질적 조건이다. 행복한 삶은 우선 부와 건강에 의존하는 객관적 상태이다. 가난하거나 아프다는 것은 신체의 필연성에 구속되어 있음을 의미하며 노예가 된다는 것은 인간의 폭력에 예속됨을 의미한다. 이러한 노예의 양면적이고 이중적인 '불행'은 노예의 실질적인 복지와는 전적으로 무관하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유인은 매일 변하는 노동시장의 불안정을 정규적으로 보장된 일보다 선호한다. 왜냐하면 정규적으로 보장된 일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제한하는 까닭에 이미 노예적인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가혹하고 고통스러운 노동을 가내노예들의 안일한 생활보다 선호하였다." <인간의 조건>, p.83

 

"아리스토텔레스가 시민의 삶이라 부른 '좋은 삶'은 단지 일상의 삶보다 더 훌륭하고 근심으로부터 자유로우며 보다 고상한 생활이 아니라, 이것과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삶이다. 단순한 삶의 필연성을 지배하고 노동과 생산으로부터 자유로우며, 자신의 생존에 대해 모든 피조물이 갖는 내적 충동을 극복하는 정도에 이르러서 더 이상 생물학적 과정에 매여있지 않게 되었을 때, 이를 '좋은 삶'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인간의 조건>, p.88

 

장 자크 루소의 "사회에 대한 반항" -> 사회의 평준화 경향, 순응주의 

"사회가 모든 발전단계에서-행위의 가능성을 배제"

"모두는 구성원을 '표준화'시켜 행동하도록 하는 경향성을 가지며 자발적인 행위나 탁월한 업적은 갖지 못하게 한다."

"문제는 이와 같은 사회적 지위와 개인의 동일화이다."

"이런 근대적 평등은 순응주의에 기초"

"그러나 공론 영역 그 자체인 폴리스는 격렬히 고민하는 정신의 소유자에 의해 침투되며, 이곳에서는 누구나 항상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자신의 특성을 부각시켜야 했고 독특한 행위와 업적을 통하여 자신이 최고임(aien aristeuein)을 보여주어야 했다. 달리 말하면 공론 영역은 개성을 위해 준비된 곳이다."<인간의 조건> p.93

 

"그리스인들은 아레테(arete)로, 로마인들은 비르투스(virtus)로 불렀던 탁월성은 언제나 공론 영역에만 주어지는 것이었다. 공론 영역에서 사람들은 타인을 능가하거나 타인들로부터 자신을 구별할 수가 있다. 공론영역에서 수행되는 모든 활동은 사생활에서 결코 얻을 수 없는 탁월성을 획득할 수 있다." <인간의 조건> p.101

 

"공동 세계는 오직 이 세계의 관점들이 다양성 속에서만 실존한다."

"본래 '박탈된'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사적인'이라는 용어는 공론 영역의 이러한 다양한 의미와 관련이 있다. 완전히 사적인 생활을 한다는 것은 우선 진정한 인간에게 필수적인 것이 박탈되었음을 의미한다. 타인이 보고 들음으로써 생기는 현실성의 박탈, 공동의 사물 세계의 중재를 통해 타인과 관계를 맺거나 분리됨으로써 형성되는 타인과의 '객관적' 관계의 박탈, 삶 그 자체보다 더 영속적인 어떤 것을 성취할 수 있는 가능성의 박탈, 사적 생활의 이러한 박탈성은 타인의 부재에 기인한다." <인간의 조건> p.112 

 

"정치적 삶을 산다는 것이 인간 존재의 가장 높은 가능성의 성취를 의미한다면, 노예처럼 자기 소유의 사적 장소를 갖지 못하고 산다는 것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님을 의미한다."

"가난은 자유인을 노예처럼 행동하게끔 한다. 그러므로 사적인 부가 공적 생활을 위한 조건이 되었던 것은 부의 소유주가 재산을 축적하는 일에 관여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용과 소비의 수단을 소유하기 위해 일할 필요가 없고 그래서 공적 활동을 위해 자유로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인간의 조건> p.118 

 

"만약 소유주 각자가 정치적 삶을 영위하는 데에 재산을 사용하지 않고 재산을 늘리려고만 한다면, 그는 자신의 자유를 기꺼이 희생하고 자진하여 어쩔 수 없이 노예가 될 수밖에 없는 존재, 즉 필연성의 종이 되고자 하는 것과 같다." <인간의 조건> p.119

 

"인간 세계의 실재성과 신뢰성은 우선적으로 우리를 둘러싼 사물들이 자신들을 산출해낸 생산활동보다 더 영속적이고 잠재적으로 제작자의 삶보다 더 영속적이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인간의 삶은, 그것이 세계를 건설하는 부단한 사물화의 과정에 참여한다. 그리고 인공 세계를 형성하는 생산된 사물들이 가지는 세계성의 정도는 세계 속에서 그 사물들이 얼마나 영속되느냐에 달려있다." <인간의 조건> p.150 

 

"고통스러운 소모와 즐거운 재생이라는 정해진 순환을 벗어나서는 어떠한 지속적인 행복도 없다. 이런 순환의 균형에서 벗어나는 것은 무엇이나-살아있음에서 오는 기본적 행복을 황폐화한다." 

"삶의 힘은 다산성이다. 유기체가 자신의 재생산을 위해 힘을 다할 때, 그는 소진되지 않는다." <인간의 조건> p.165

: 마르크스 비판. 노동의 가치를 신성하게 여기면서도 노동의 대상화를 비판하며 노동으로부터 해방될 것을 주장한 마르크스의 모순된 이론을 지적. 국부의 사적 소유나 축적만으로 해결되지 않으며, 소비를 악으로 규정하는 것도 옳지 않음을 지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