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성의 옹호와 파시즘으로의 이행
-정비석 해방 전 소설을 중심으로-
1. ‘세대론’과 정비석 소설의 향방 2. 개성과 순수성의 옹호 :「성황당」,「요마」 3. 현실인식 :「이분위기」 4. 낡은 것의 청산, 새 ‘생활’의 발견 :「삼대」 5. 순수의 길, 파시즘의 내면화 |
1. ‘세대론’과 정비석 소설의 향방
정비석은 해방 이전 애욕, 성에 관한 작품을 다소 발표하였다가 40년 전후에 이르러 친일작품을 쓴 작가로 알려져 있다. 해방 이후에는 「자유부인」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기도 한다. 그러나 정비석의 행보가 정확히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연구되지는 않았다. 정비석의 행보에 집중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야 무엇이든 우리는 주목받지 못한 작가에게 집중할 필요가 있다. 정비석은 1935년에 「동아일보」의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창작활동을 시작한 이래 1980년대까지 왕성한 필력을 잃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정비석에 관한 연구는「성황당」에 국한된 것이거나 연애소설, 통속소설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춘 것이 대부분이었다. 오랜 시간 창작 활동을 전개한 정비석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활동한 시기와 작품의 상호 연관관계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우선 정비석의 해방 전 소설을 대상으로 그 특징을 찾아보고자 한다.
해방 전 정비석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1938년을 전후한 <세대논쟁>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정비석의 해방 전 문학의 흐름은 이 세대논쟁에서 비롯한다고 할 수 있다. 1930년대 세대논쟁은 등단의 기회가 넓어진 시기에 작가가 된 신세대 작가에게 문학가로서의 의식이 있는지에 관하여 기성 작가와 신세대 작가가 벌인 논쟁이다. 신세대 작가 논쟁은 유진오가 신진 작가들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시작되었다. 이 논쟁은 유진오, 김남천, 이원조 등의 30대 작가들과 김동리를 비롯한 신세대 작가들이 참여하였다. 이 시기의 신세대 작가들은 공통적으로 인간성을 옹호하고 개성을 강조하였다. 김동리는 기존의 작가들이 순수하게 창작하지 못하고 특정 사상을 먼저 강요하기 위한 수단으로 문학을 이용한다고 지적하면서, "사상도 문학도 아"닌 "文字病"에 걸려 있다고 비판하였다. 또한 신세대 작가들은 진정으로 순수한 문학을 추구하고 있으며 그 개성을 각자의 작품에 표현한다고 주장한다.
정비석 또한 「評家에의 進言」이라는 글을 통해 이 세대논쟁에 가담한다. 정비석은 이 글에서 신세대 작가의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그는 작가의 작품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작품을 두 번 이상 읽어야 한다는 것, 국내작품보다 외국작품을 더 높게 평가하는 사대주의를 버려야 한다는 것, 작가를 체계적으로 고찰할 것을 요망한다. 즉 신세대 작가의 글을 순수하게 평가해 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신세대 작가들이 지녀야 할 자세에 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정비석의 신세대적 의식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작품 분석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세대론을 중심으로 정비석 소설이 어떠한 방향으로 흐르는지 파악할 것이다.
2. 개성과 순수성의 옹호 :「성황당」,「요마」
정비석이 산골과 같은 시골을 다룬 작품들은 기성작가들에게도 그 순수성을 인정받는다. 기존의 사회주의·계몽주의·자연주의 작가들은 모두 사회관계나 계급, 혹은 환경 안의 인간 모습을 포착한다. 그에 비해 정비석의 소설에서는 캐릭터의 성격이 환경에 영향을 끼치거나 환경을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신세대 작가 논쟁에서 신세대 작가들은 기성세대 작가들이 이념에 사로잡혀 인간성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잃어버린 인간성 회복에 초점을 맞추어 작품 활동을 했기 때문에 정비석의 초기 작품도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학적 순수성에 관한 정의는 작가 사이에서도 쉽게 내려지지 않았다. 지식인들은 나름대로 순수의 정의를 내렸지만 기성세대 작가와 신세대 작가가 규정한 의미는 달랐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인간성의 옹호를 지적한다. 하지만 유진오를 비롯한 기성세대는 순수한 문학을 “심각한 인간고의 표명”, “시대적 고민 속으로 몸을 던지”는 것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신세대 작가를 대표하는 김동리는 이론과 이념에 묶이지 않는 인간 본연의 성격을 발견해야 한다고, 김환태는 “심각한 인간성을 인간적 존재”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순수한 작가는 일상생활, 즉 사실의 격류 속으로 몰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비석의 소설에서 순수성은 어떻게 드러나는지 살펴야 하겠다. 순수하다는 것은 캐릭터의 순진무구함, 사회성이 덜 침범하여 인간 본연의 감정과 욕망을 드러낸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순수성을 잘 드러내는 캐릭터로 「성황당」의 순이와 「요마」의 꼰녀를 들 수 있다.
「성황당」의 순이는 성황당의 신성함과 신비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전근대적인 인물이다. 순이와 그의 남편 현보는 산에서 자연과 함께 지내며, 세상의 어려움을 모르며 산다. 이들은 하루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수입에 만족하며 서로에 대한 애정을 키운다. 그러던 이들에게 김주사가 등장한다. 김주사는 순이의 몸을 강탈하려고 새로운 토지정책을 운운하며 협박한다. 순이는 그를 거부하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그 때문에 현보는 불법노동자로 수감된다. 국가, 일제 정부의 토지점유로 인해 땅을 일구던 순이 부부가 졸지에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이는 산에 대한 애정, 현보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산속으로 다시 들어간다. 이는 현실의 상황이 순이의 행동에 변화를 주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요마」의 주인공인 꼰녀는 부정적이기는 하지만 역시 순수한 개성을 드러낸다.「요마」에서 가장 잘 드러나는 요소는 ‘복수’이다. 주인공 꼰녀는 계모인 ‘금실에미’, 금실에미의 눈치만 보는 아버지, 애기보개로 일하는 동안 알게 된 주인영감에게 괴롭힘 당한다. 꼰녀는 자신이 괴로울 때마다 그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복수를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다 가져갔다고 생각한 주인영감에게 배신당했을 때에는 칼로 찔러버리는 상황까지 벌어지게 된다. 그리고 꼰녀는 결국 자신의 비운한 인생을 탓하며 울부짖는다. 작가는 꼰녀의 부정적인 요소마저 포용하는 것이다.
이 두 작품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어린 두 여자아이가 세상살이에서 고통을 얻게 되고 그 고통을 각자의 성격으로 돌파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 과정에서 꼰녀의 복수도 인간성의 일부분으로 인정된다. 여기에서 외부의 상황은 배경일 뿐이고 각각의 캐릭터만이 살아남는다. 선하든 악하든 인간에게 내재된 성격이 직접적으로 솔직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인간의 개성적인 측면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물의 성격을 중시하던 정비석은 장소를 옮겨 현실의 문제를 언급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과정도 모두 순수한 열정을 향한 여정임을 쉽게 알 수 있다.
3. 현실인식 :「이분위기」
「성황당」과 「졸곡제」 등의 작품에서 인간의 개성적인 성격을 강조했던 정비석은 순박한 시골에서 도시로 시선을 돌린다. 1930년대 중반 작품들이 시골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사건들을 주로 다루었다면 1939년 작품인「이분위기」를 시작으로 근대 지식인이 바라보는 현 사회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정비석은 기성작가와 달리 식민 지배체제 자체를 문제점으로 두지 않는다. 암울한 요소의 근원을 ‘침례한 분위기’에서 찾을 뿐이다. 이 침례한 분위기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는 묻지 않는다.
이 소설의 배경은 북경(북경의 장소적 의미, 식민지 조선에서 북경의 모습, 새 공간의 의미, 생활과의 연관. 만주판타지. 조선→만주→북경)이다. 북경은 30년대 중·후반에 퍼져나간 만주 판타지와 맥을 같이 한다. 만주는 조선의 궁핍한 현실을 피하기 위한 도피처로 인식된다. 이러한 인식은 한반도보다 토지가 비옥하여 농민으로서 새 생활을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지만, 실제로는 많은 조선인을 만주로 이주시켜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제의 책략이었다. 어린 학생을 만주로 보내서 군인으로 징용하거나, 농민을 이주시켜 전쟁식량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이런 만주를 거쳐 도착한 북경은 만주보다 훨씬 도시적이다. 북경은 식민지 조선인에게 유토피아적인 공간이다. 만주 판타지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이었으며 실제로 많은 조선인들이 이주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북경에 거주하는 조선인의 삶은 평화롭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정비석 역시 그런 현실을 잘 알고 있었으며, 여타의 친일작가들처럼 판타지로 북경을 미화하지도 않는다.
소설의 등장인물은 옥채와 그의 남편 병립, 그리고 옥채가 사모하는 지준이다. 옥채는 80세가 된 남편과 그의 둘째 첩에게서 괴로워하면서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병립을 만난다. 옥채는 병립과 함께 고향 땅에서 도망쳐서 북경에 도착한다. 병립은 옥채와 함께 마약 밀매업을 하면서 자리를 잡는다. 그러나 2년도 채 되지 않아 병립도 아편에 중독되어 폐인처럼 살게 되고, 옥채는 기력 없는 삶을 증오하여 병립을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병립은 중국인의 모습이나, 북경에 거주하는 조선인의 모습을 대표한다. 병립이 아편에 취해 누워 있는 북경의 방은 혼탁한 분위기를 풍긴다. 소설은 북경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조선인이 병립과 같은 생활을 한다고 암시한다.
또 다른 인물인 지준은 사회운동을 하고 감옥에서 6년을 지내다가 가족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북경으로 오는 인물이다. 병립을 떠난 옥채는 지준과 함께 지내기로 한다. 옥채는 지준이 취직하여 편안하게 살기를 바란다. 지준은 대학까지 마친 지식인이라는 이유로 여관주인인 춘택영감에게 추천받아 취직한다. 지준은 지배자의 안경을 쓰고 이 침례한 대륙에 확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반면 지준은 북경의 민회에서 서기를 맡으며 북경의 정황을 듣는데, 그때 조선인의 이러한 생활을 알게 된다.
지준은 다음날부터 거주민의상황이나 조사해보기로했다. 민회 장부에 등록된 거루민 수효는 삼천명가량인데 그 구활칠부까지가 해륙물산위탁판매업이었다.
「현형! 모두 위탁판매업이니 웬일이요?」
하고 지준은 현서기에게 의심스레 물었다.
「허허! 긴상은 아직 모르시우? 그거 모두 모루히네밀매업자들이랍니다.」
하고 현은 지준을 처다보았다.
「모루히네밀매업자라니요? 그럼 삼천명이 모두 그러탄 말씀입니까?」
「허- 그것만인줄 아시우? 민회에 등록되지않은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데 그러슈?」
조선인의 대부분이 마약중독자일 뿐만이 아니라 밀매업자로서 유통을 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밀매업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중국 대륙을 대상으로 장사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인은 마약 주독자로, 조선인은 마약 중독자이자 유통업자로, 일본인은 그것을 고치고 바꾸는 의사로 대변된다. 주인공 지준의 입장에서는 인간의 순수성을 무시하고 파괴하는 현실을 바꾸어야 할 필요를 느끼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지준이 북경에서 느끼는 심정의 변화이다. 먼저 그는 취직한 민회 서기라는 자리에 회의를 느낀다. 민회서기는 중․일전쟁에 필요한 기본적인 물품과 돈을 관리하는 자리이다. 북경까지 와서 일본 제국이 기획한 전쟁의 기반을 닦아야 한다는 것은 사회주의자였던 지준에게 고통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북경에 살고 있는 조선인의 절반 이상이 모루히네(모르핀)에 취해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북경이라는 공간에 더욱 깊은 환멸을 느낀다. 지준의 동료인 현서기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면서도 돈을 벌기 위해 북경을 떠나지 못한다. 지준은 그의 한탄을 들으며 북경에 사는 조선인의 생활에 대해 고민한다. 월급 50전 중에서 30전을 떼어가는 춘택영감, 자립할 생각 없이 아편에 찌든 채 길거리에서 구걸하고, 구걸한 돈으로 다시 아편을 사러 가는 병립, 어떻게 해서든 자신을 취직시키려는 옥채. 모두가 지준에게는 끔찍하다.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고민하던 지준은 이 모든 현상의 원인이 이 "대륙의 침례한 공기" 탓이라고 생각한다. 지준은 대륙의 침례한 분위기와 나태한 조선인을 비판한다. 조선인이 북경에 다수 기거하게 된 이유나 아편 밀매업이 활성화된 사회적 배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조선과 중국은 변화해야 할 타락의 공간일 뿐이다. 그리고는 북경 땅의 '이 분위기'를 없애기 위해서는 "억센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도중 "日支衝突"이라는 기사를 보고 희망을 발견한다. 결국 중국 대륙의 미개함과 조선인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전쟁에서 새 시대의 희망과 활기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작가는 과거의 낡은 것, 불합리적이고 비정신적인 것을 모두 쓸어버리는 도구로서의 전쟁을 긍정한다. "일지충돌"은 1937년의 중·일전쟁을 의미한다. 중․일전쟁은 당시 조선의 작가들에게도 새 질서의 상징이었다. 전쟁은 대동아공영권의 질서를 조선과 중국에 선사할 통로이며, 세계평화의 확립을 위함이었다. 중․일전쟁은 동아시아에 새로운 질서를 확립할 기회로 받아들여졌고, 조선과 만주등지는 총력전 체제로 돌입하게 된다. 많은 작가들이 이 과정에서 주체성을 확보하고자 신체제 논리에 빠져들게 되는데 지준도 이들과 다르지 않은 길을 걷는다.
4. 낡은 것의 청산, 생활의 발견 :「삼대」
앞서 「이분위기」의 지준은 "일지충돌"을 언급하면서, 강한 힘으로 낡고 어두운 것을 쓸어버리고자 한다. 이런 의식은 1940년 작품인「삼대」에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다. 1930년대 후반까지 당시 사회를 회의적으로 바라보던 작가는 이 시점에 이르러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다. 「삼대」의 주인공인 형세는 전쟁영화를 통해 강렬한 힘을 접하게 된다. 모든 나태한 것들과 낡은 것들을 파괴하는 이미지를 보게 되는 것이다.
평화스럽게 보이는 도시의 창공에는 돌연 으르렁거리는 폭음과함께 행렬도 정연한 열두대의 荒? 폭격기가 제비처럼 나타나더니 갑작기 폭 아래로 꺼져 내려오면서 폭탄들을 던진다. 열두대의 비행기에서 빗발같이 떨어지는 폭탄은 쏜살같은 속력으로 떠러저 커다란 삘딩에 붓좁기와함께 쾅! 요란한소리를 내며 폭발되자 (중략) 평화롭던 도시, 문화를 자랑하던 도시는 참으로 놀랄만한 속도로 파멸의 세레를 받는다. 그것은 인간의힘이 아니라 거대한 운명의 힘만 같았다.
이 시기에는 전쟁영화가 많이 배포되었다. 중·일전쟁이 발발한 직후 총독부는 영화보국(映畵保國)을 철저히 하라는 통지를 내린다. 이후 영화관에서는 강제적으로 뉴스영화를 상영한다. 이를 통해 지원병 홍보 영상등이 생긴다. 이 모든 것을 관리하는 조선영화령이 공포된 것은 1940년 1월이다. 형세는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영화를 접하게 된다.
형세는 영화를 통해 공포를 미학적으로 소비한다. 그리고 전쟁의 공포를 낡은 것을 청산하는 새로운 운명의 힘으로 본다. 공포를 미학적으로 체험하기 위해서는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대상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면서 전쟁의 공포와 죽음을 숭고의 ‘이미지’로 받아들일 수 있다. 숭고함은 인간을 압도하는 크기와 힘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실제로 미래파 예술가들은 전통의 소박함을 거부하고 금속화, 기계화, 속도화로 치닫는 현대문명 속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것이 파시스트의 전쟁미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실제로 피가 튀고 살이 찢어지는 죽음이 아니라 폭발의 거대함, 엄청난 속도, 공포를 경험하는 것이다. 영화야말로 숭고의 이미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매개이다.
따라서 영화를 통한 전쟁체험은 주목할 점이다. 발터 벤야민은 영화가 제공하는 복제영상이 대상과 그것을 감싸고 있는 껍질을 분리하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즉 영화가 대상이 지니는 아우라(Aura)를 벗겨내는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안에서 전쟁의 처참함은 ‘숭고와 공포’로 포장된다. 이런 감정이 미학적으로 이용되어 파시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벤야민은 파시즘에 의해 이용되는 영화는 새로운 신화를 유포하므로 주의해야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형세의 애인인 미례는 전쟁 시기에 형세에게 새로움을 발견하는 매개의 역할을 한다. 미례는 간츠메(罐詰)회사의 충실한 여직원이다. 미례의 회사는 전쟁터에 식량으로 간츠메를 보급한다. 미례는 회사에서 교육받은 내용에 충실하여 자신이 병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고, 그의 일상에서도 국가의 의도에 맞는 생활을 한다.(식민지 근대성 참조) 그리고는 더 나아가 북지로 떠나 조금 더 적극적으로 생활의 목적을 찾아보기로 다짐하기도 한다. 형세는 미례와 함께 영화를 보는데, 영화에서 접한 강렬한 힘을 미례에게 행사한다.
『정복의 아름다움을 오늘에야 절절히 깨달았어!』
하며 美禮를 마주 보았다.
『아까 그 기마병대의 영화에서 말씀이죠?』
『그래, 보는 사람이 그만치 감동될젠 실상의 병사들은 얼마나 상쾌한것일가』
『그보다두 전 피정복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봤어요. 정복이 그만치나 천진한것이라면 정복
되는 편으로도 오히려 상쾌한것 같았어요! 찰란이라는 문구의 참된 뜻을 오늘에야 알아보았어
요!』(중략)
亨世는 유난스럽게 빛나는 美禮의 눈에서 또 한번 정복의 쾌감을 맛보며 망나니같이 꿈틀거러지는 자기의 사족을 느끼었다. 식사가 끝나고 다시 거리에 나섰을때에도 둘의 가슴에는 정복, 피정복의 쾌감이 좀체 사라지지 않았다.
이들은 전쟁을 미적체험으로 접한다. 형세와 미례는 영화를 통해서 정복자와 피정복자가 느끼는 감정적인 흥분상태를 경험한다. 대화를 나눈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정복욕구와 피정복욕구를 느끼고 하룻밤을 보낸다. 형세와 미례는 영화에서 얻은 감정을 성적으로 재현한다. 두 남녀 사이에는 피·가학적 감정이 발생한다. 에로티시즘과 전쟁. 이는 형세가 제국주의 파시즘에 동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 시기의 영화에서 일본인 남자, 조선이나 중국인 여자가 섹슈얼리티적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고려할 때, 연애나 성행위가 정복을 상징한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두 사람은 같은 조선인임에도 불구하고 형세가 미례를 정복의 대상으로 느낀다는 것은 전쟁을 개인적인 삶 안에서 내면화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미례 또한 피정복자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점도 특이하다.
이렇게 형세와 미례는 전쟁이 지니는 현실적 고통을 체험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쟁을 하나의 상징으로 받아들인다. 이들은 전쟁을 '침례한 분위기를 타계'하기 위한 충격적 사건으로 해석한다. 전쟁 자체가 무료한 일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일깨울 수 있는 충격인 것이다. 여기에서는 전쟁의 역사적 의미와 그 안에서 인간이 받는 고통의 순간이 제거되어 있다. 영화는 그것을 보는 사람과 대상을 분리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례도 피해자들의 감정이 '찬란'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후방에서라도 전쟁승리를 위해 애쓰는 병사가 되고자 하는 미례의 태도 또한 좀 더 쾌활한 생활을 찾고자 하는 심정에서 비롯한다고 볼 수 있다. 이들에게 간접적인 전쟁체험은 현실을 변화하게 하는 새로운 힘의 질서를 발견하는 계기이다.
「삼대」에서는 직접적으로 세대론을 비판하고 언급하는 부분이 다소 등장한다. 형세의 이상을 붙잡는 현실의 족쇄로 가족이 등장한다. 가족은 세대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봉건적 성격을 지닌 가족과 사회주의 운동을 했던 형 경세가 형세의 이상을 방해한다. 형세의 아버지는 "구한국시대"에 병조판서를 지냈던 사람으로, 고집이 세고 전통적인 입신양명의식이 뿌리 깊게 박혀있는 인물이다. 아버지는 경세와 형세를 권력자로 키우고자 하지만 변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실패한다. 형세는 그러한 아버지를 고리타분하고 갑갑하게 생각한다. 그는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욕심을 부리는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형수와 아내 숙영은 자신들이 처한 불공평한 상황에도 불평 한 마디 없이 순종하며 산다. 형세는 이들이 비굴한 동물과 같다고 생각하며, 이들이 있는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봉건주의적 권위주의를 유지하는 아버지는 자신의 개성을 발휘할 수 없게 방해한다. 가족은 자신이 보호해야 하고 책임져야 할 부담일 수밖에 없다. 형세에게 가족은 구습의 상징, 족쇄일 뿐이다.
형세의 친형인 경세는 "변증법이니 유물사관이니 운운"하며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사회주의자였다. 그러다가 구금되어 6년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사회로 나오게 된 것이다. 형세는 경세의 관념적인 의식을 경멸한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 ‘우리’의 생활도 변해야 하는데, 경세는 굳건히 자신의 신념만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세의 존재는 신세대 논쟁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었던 기성작가들의 특징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이념과 생활 중 경세는 이념을 우선시하며, 형세는 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형세는 과거의 전통을 고수하는 아버지나, 사회주의 신념을 고수하는 형을 모두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이 소설의 제목인 '삼대'는 아버지와 형, 그리고 형세를 지칭한다. 경세와 형세를 각기 다른 세대라고 지칭한 것은 작가가 세대론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비석은 '삼대'라는 제목을 통해서 이념을 중시하는 기성세대와 형세를 구분한다. 그 자신이 새로운 시대 질서에 부합하는, '생활'을 추구하는 세대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김환태은 순수론을 주장하면서 실천하는 삶을 강조한다. 생활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것이다. 이는 카프작가들이 ‘생활’을 중시하게 되는 과정과 다른 경로를 거친다. 정비석이 생활을 추구하는 것은 순수한 정신을 옹호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성작가들의 전향과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다고 하기 어렵다. 정비석은 자기 생활에 적합한 삶의 모습을 찾아가던 중 제국에 협력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힘의 논리를 긍정하게 되는 것 또한 생활을 위한 것이다. 이론이나 사상보다는 생활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 있지만 이들에게 순수란, “일상의 격류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정비석은 김동리가 지적했던 기성 지식인들의 "문자병"을 비판했다. 그러한 정비석에게 경세는 문자병에 걸린 기존의 세대와 다를 것이 없다. 형세는 경세를 부정하며 극복하고자 한다. 형세는 모든 국민을 전쟁 수행의 도구로 만들고자하는 일제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한다. 형세는 그 자신이 파시즘 논리를 수용하면서도, 한편으로 "현대는 군중적인 힘에 지배되고 있"다고 파시즘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지적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러한 군중심리가 옳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것 또한 인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경세가 혼자 옳은 방향으로 가는 것일 수도 있다고 여기며 안타까워한다. 형세는 경세처럼 이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 아니면 긍정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를 잠시 고민한다. 그러나 형세는 다시 현실에 존재하는 힘의 논리를 거역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세상에 양심을 고집하는것처럼 미찌는일이 어디있을라구요! 혼자서만 어질(賢)려고하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자는 없다는데. 첫째 신념이란것도 사회의 경험에서 얻은것인 이상 신념도 자꾸 변해가야만 옳겠죠. 형님은 어떤시대의「理性」을 그대로 다음시대에까지 고집하고있으면 모르는결에 그것이「感情」으로 변해버린다는걸 생각해본일은 없으서요.』
형세는 신념이라는 것도 사회의 흐름에 맞게 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형세는 사회의 흐름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인간의 의지로 꺾을 수는 없다고 확신하고 있다. 결국은 아버지는 늙고, 경세가 실종되면서 '생활'을 중요하게 여기는 형세가 삼대의 모든 갈등관계 속에서 최종적인 승리를 거둔다.
그런데 이 '생활'이라는 것은 쉽게 넘겨 볼 수가 없다. 일상과 생활은 제도가 가장 가시화되지 않으면서도 깊이 침투할 수 있는 지점이다. 문제는 어떤 생활을 중시하느냐 하는 것이다. 형세는 '힘의 논리'를 거부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식민주의를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형세의 생활론이다. 순수한 개성추구가 형세에게서 생활론으로 정착한 것이다. 이 역시 세대론에서 신세대가 추구하고자 한 사항이었다. 정비석이 형세의 생활론을 통해 파시즘의 논리에 그대로 빨려들어 간 것은 그들에게는 일상으로 침투한 파시즘의 논리를 거역할 항체가 없었음을 의미한다.
{‘순수’의 길, 파시즘의 내면화 -「개척전사」,『조광』1943.10 (파시즘에 저항할 항체가 없다는 것 ↔ 한설야, 김남천과 다른 점)
*새로운 생활의 시작. 확신.
*현실 참여가 더욱 적극적으로 드러날 것이라고 예상됨. 생활에 파시즘의 내면화가 완벽하게 이루어짐. }
5. 순수의 길 파시즘의 내면화
이후 정비석은 1943년 조광에 「개척전사」라는 단편을 싣는다. 제목을 통해서 생활․의식․전통등의 다양한 방면에서 무엇인가를 개척하고 새 시대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담았으리라 생각한다. 「삼대」에서 북지로 떠난 형세와 미례는 어떤 미래를 발견했을까. 중요한 것은 정비석이 해방 전 그의 의지를 꺾거나 회피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작품활동 초반부터 인간이 지닌 개성을 옹호하려 했으며 그것을 자신의 일상생활에 녹이려 했다. 그는 식민지배가 정점에 달했을 때 작품활동을 시작한 신세대 작가였다. 이들 나름대로 삶에 대한 통찰이 있었겠지만 식민지배논리가 일상의 영역까지 침범했다는 사실을 간파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그의 작품에 그것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는 점이며, 그것을 읽어내는 것은 우리의 몫일 것이다. 순수론을 주장했던 정비석의 작품은 파시즘을 내면화하는 형세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이후 「개척전사」에서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정비석의 논리는 일관적으로 지속되어 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의 협력의 포즈는 전향이 아니라 그 자체로 생활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뿐이었다.
최예열,『한국 근․현대 비평논쟁 자료집』, 한국학술정보(주), 2007.
『조광』1939년 1월. 3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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