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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및 기고문들

돌봄의 윤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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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올해의 작가상 후보 중 이강승 작가의 작품을 흥미롭게 보았다. 
올해의 작가상 전시에서는 돌봄의 역사를 아카이브 한 작품들과 영상 작품들을 공개했다. 
먼저 자신의 물건이 아닌, 타인의 물건을 수집하여 배치하고 배열함으로써 
그의 기억을 정립하고 재단한다. 
 
이강승 작가는 "국경을 가로지르는 퀴어의 역사, 여러 가지 소수자의 역사, 그리고 그것들을 이 미술을 통해서 어떻게 재조명하고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가를 생각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1980-90년대 미국 사회에서 벌어진 에이즈 에피데믹과 현대를 연결함으로써,
'돌봄'의 의미를 생생하게 한다. 
 
프로젝트 제목인  <Who Will Care for Our Caretakes>는 미국의 시인인 파멜라 스니드의 작품에서 인용한 것으로, 파멜라 스니드 자신이 경험했던 뉴욕의 에이즈 에피데믹의 사례를 엿볼 수 있다. 
죽음을 앞둔 여러 동료 중 하나가, '지금 우리를 보살피고 있는 이 많은 사람들은 나중에 누가 보살피게 될까'
라고 말하며 던진 질문이, 2020년 팬데믹 시대에 다시금 도래한 것을 직감했던 것이다. 
결국 '돌봄'이란 우리의 미래의 모습이 되어야 하며,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여성주의 장애학자인 수전 웬델은 근대사회에서 강조되었던 '자율성'과 '독립성'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에 대해서 언급한다. 모더니즘이 자율성과 독립성, 주체성만을 강조한 결과 상호의존적인 비남성중심적인 사회의 가치를 지나치게 폄하하게 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주체성·독립성만을 강조한 결과 '돌봄'의 영역은 자주 무시되어 왔고, 독립성을 지니지 못한 존재들의 취약함과 수치심을 덜어주지 못하고 배제시켜왔다는 것이다. 
 
이제 정말로 나아가야 할 뉴노멀의 방향은 서로의 돌봄을 인정하고,
이를 현실에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윤리와 가치 정립에 있다. 
우리는 모두 상호 의존적이기도 하고 자율적이기도 하면서도 얽혀 있는 존재들임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이강승 작가의 문제의식이 그의 작품에 섬세하게,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느꼈다. 
존재의 소멸과, 그 소멸을 붙잡고 있는 듯한 금색 자수의 각인,
수화로 적혀 있는  "Who Will Care for Our Caretakes"라는 의문, 

서로를 절대 포기하지 않는 열정을 담고 있는 몸짓을 담은 영상. 이 모든 손길 하나 하나가 절대 당신을 놓지 않겠다는 열정으로 보여, 그리고 나에게도 하나의 이상을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 

한동안 자리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에이즈 에피데믹 
"또 한편으로는 말씀하신 보살핌이라는 것도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 어떤 혈연을 넘어서 세대 간에 그리고 그 커뮤니티 내부에서 그런 보살핌의 의미를 많이 찾을 수 있었던 것도 에이즈 에피데믹이었던 것 같아요. 이번 제 신작의 큰 주제가 되는 고추산이라는 싱가포르계 안무 그리고 발레 댄서의 얘기를 보더라도, 마지막에 고추산이라는 분이 사망을 하게 되는데, 1980년대 말에 사망을 하셨는데, 그 마지막 2년 동안은 주변의 친구들이 병원에도 데려가고 또 씻기기도 하고 그런 모든 일들을 다 했었고, 그래서 그런 아름다운 커뮤니티 히스토리들이 또 거기에 연관이 되어 있어요. (중략) 이런 것들이 얼마나 큰 힘을 갖고있었고, 또 이런 것들이 지속되어야 하고,  또 앞으로 새로운 미래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반드시 생각해야만 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을 해서 그 얘기를 계속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출처: https://koreaartistprize.org/project/%EC%9D%B4%EA%B0%95%EC%8A%B9/)

 

우리를 보살피는 이 많은 사람들은 누가 보살피게 될까
"이번 프로젝트의 제목이 <Who Will Care for Our Caretakes>라고, 이 말은 미국의 시인인 파멜라 스니드라는 분이 최근에 팬데믹 동안 쓰신 시에 나오는 앞부분을 인용해서 쓴 것인데, 그분은 그 애기를 자기가 직접 한 것은 아니고, 이분이 레즈비언이신데, 자기가 뉴욕에서 1980-90년대 에이즈 에피데믹 시기동안 수많은 친구들이 사망했고, 그때 그들을 보살폈던 많은 자신의 친구들과 커뮤니티의 그런 일원들이 있었고, 그때 본인의 친구였던 그렉이라는 다른 시인이 지금 우리를 보살피고 있는 이 많은 사람들은 나중에 누가 보살피게 될까, 이런 질문을 한 것을 이제 자기 시에서 인용하게 된 것인데, 그게 우리의 현실이 된 거죠.(중략) 결국 우리가 어떤 공동체로서 어떻게 나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고 이 보살핌을 계속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 것이죠. "
(출처: https://koreaartistprize.org/project/%EC%9D%B4%EA%B0%95%EC%8A%B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