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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작 및 기고문들

김남천,「요지경」,『조광』, 19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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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호는 아편에 중독되었다. 그는 밥도 먹지 않고 방에 앉아 땀을 흘리고 있는데, 아내는 그런 남편을 보면서 걱정을 한다. 타지에서 친구들과 술을 많이 먹어서 그런 거라며 위궤양이 심해진 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정말로 경호에게 술이 문제이기는 하다. 친구들이 주는 술을 거절하지 못하다가 결국 위궤양이 걸렸고, 위궤양 때문에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가 내린 처방을 의심 하지 않고 곧이 믿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생각하던 경호는 의사가 처방할 약으로 진통제 대신 아편제를 사용했다고 생각한다. 경호는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음에도 정말로 아편이 고통을 많이 덜어주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의사를 신뢰하게 되기도 하였다.

   중학 동창인 의사, 김상규는 경호가 이미 아편에 중독되어 있다고 넌지시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근래에 그런 사람들이 많은데 의사가 돈을 벌기 위해 의도적으로 중독을 시켜버리는 일도 있다고 한다. 병원에서 한번 중독이 되면 다른 병원으로 쉽게 옮길 수 없다고 한다. 이미 중독이 되어 있어서 매번 찾아올 수밖에 없기도 하지만 다른 병원에 가면 견뎌야 할 수치심과 죄책감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경호는 사지가 떨리고 호흡이 힘들어지자 김상규의 병원으로 찾아간다.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자 다른 생각을 하면서 버텨보기로 한다. 다른 생각이란 “북지사변, 소련의 르하쳅스키사건, 혹은 트로츠키의「더․레볼루숀․삐트레이드」” 등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들로 몸의 괴로움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아직 이른 아침 여섯시이기 때문에 상규가 병원에 없었는데, 운심이라는 기생도 상규를 기다리고 있다. 운심은 늑막염이 심해져서 급하게 왔다고 경호에게 둘러대었지만 그도 경호와 같이 약을 맞은 것이 분명하다. 경호는 약을 맞고 나오니 기문이 개운하고 유쾌하여 행복해지는 것 같다. 운심과 아침을 먹고 약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운심은 경호처럼 하루정도는 약을 맞지 않고 참아보겠다고 말한다.

   안국동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윤한국을 만난다. 윤한국은 감옥에 있던 옛 동무인데 출감한 것이었다. 자신을 찾아온 것이 의아하기도 했지만 점심을 먹으면서 천천히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점심을 먹는 내내 망설이던 그는 집안일이 어려우니 삼백원을 빌려줄 수 있냐고 묻는다. 그러나 경호는 자신의 집안 사정도 어려워 빌려줄 수 없다고 하고 돌아선다.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가 경호를 부른다. 아버지는 보호관찰소에서 심의한 결과 더는 경호를 관찰하지 않겠다는 결과를 전한다. 아버지는 흡족해서 이제는 직업을 얻고 신용을 얻어야 한다고 충고하지만 경호는 아직 건강이 회복되지 않았으니 나중에 알아보겠다고 말한다. 경호는 아버지의 말과 윤한국의 일을 생각하며, 자신의 행동이 “비겁”한 것은 아니었나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이 깊어지기 전에 다시 몸이 반응을 한다.

   경호는 무릎이 간지러워지는 것을 느끼면서 아내의 건강한 심신에 화가 난다. 그러나 다시 자신에게는 그것을 경멸할 자격도 없다는 것을 생각한다. 경호는 다시 집을 뛰쳐나와 상규의 병원으로 간다. 역시 상규는 자리에 없었으며 간호사는 경호의 행동을 의심하지 않는다. 경호는 상규의 가방에서 주사기를 꺼내 팔에 찌르고, 주사기 두 개를 주머니에 더 챙긴다. 급하게 바늘을 찌른 팔에서 피 몇 방울이 떨어지자 경호는 순간 공포를 느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마음을 제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슬퍼한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떠나서 육체와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리라 생각한다.

   정신없이 걷다보니 운심이의 집 앞에 와 있다. 들어가 보니 운심이는 금단증상이 심해져 사람도 못 알아본다. 경호는 주머니의 주사기를 꺼냈으나 차마 운심에게 주사하지 못하고 운심의 가슴팍을 안으며 서럽게 운다.

   경호의 아편중독은 근대의 특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은유이다. 과학과 의학의 정확함과 통제력은 돈의 전능함 앞에서 흐려진다. 의사들은 돈을 벌기 위해 진통제 대신 아편제를 사용하는데, 그럴수록 경호를 비롯한 사람들은 근대의 흐릿함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아편은 은밀한 유행처럼 사람들에게 유포된다. 그렇다고 해서 경호는 자신의 신념과 의지를 모조리 빼앗아 가버린 아편을 지탄할 수도 없는 처지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과정을 겪고 나니 자신의 모든 혐의가 풀리고 보호관찰의 망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편이 사회의 악임에도 불구하고, 근대의 흐름에 방해가 되었던 사람들을 포섭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경호는 자신의 육체나 마음이 점차 아편에 의해 잠식되는 것을 생각하고 극복하고자 하지만, “금단증상”은 쉽게 극복할 수 없다. 이 작품은 아편과 보호관찰, 적응과 비적응, 지식인과 기생의 문제를 복합적으로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