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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노트

『자본론』3권 (下) / 제6편 초과이윤이 제대로 전환. 제37장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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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다루게 될 농업은 봉건적 토지소유나 소농민적 농업이 아니라, 자본과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개입으로 전환된 형태의 농업이다. 1권 8편(시초축적)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은 두 가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첫째로는 생산자가 노예와 같은 부속물의 지위에서 해방된다는 것이며 두 번째는 노동자들이 노동조건을 수탈당한다는 것이었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농업과 노동자로부터 노동조건을 수탈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농업에서는 농촌노동자로부터 토지를 수탈하는 것을 전제한다. 그리고 농촌노동자는 자본가에게 종속된다. 즉 농업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종속되면서 토지의 의미가 변화한 것이다.

   이렇게 변한 토지는 자본가에 의해 점유된다. 자본가의 토지 소유는 지구의 일정한 부분을 개인이 지배할 수 있는 독점력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는 농민 자신이 토지의 소유자가 아니라 토지와 분리된 농업노동자이며 토지를 지닌 주인에게 종속된다. 농업노동자가 도시노동자와 다른 점은 종속의 의미로 자본가에게 일정한 화폐조세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지대라고 하며 노동을 하는 사람(임금노동자)과 지대를 내는 사람(산업자본가), 지대를 받는 사람(토지소유자)의 구분이 생긴다. 맑스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절대적 취득권을 합당하게 여기는 생각 자체가 처음부터 오류에 빠져있는 것이라고 비판한다.(759) 자본가들은 토지를 기타의 상품과 마찬가지로 가격을 책정하고 매매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인간의 토지소유를 정당화하려고 한다. 토지에 대한 적절한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에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로는 노예제마저도 정당화할 수 있다. 그리고 토지에 적절한 가격이 있다는 것 또한 허구적인 발상이다.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 중 11번째 테제. "자연통제의 진보", "공짜로 거기에 존재하는 자연"이라는 개념이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착취, 즉 "타락한 노동의 개념을 보완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지대'의 정체성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지대(地代:ground-rent)는 차지농업자가 토지소유자의 자본을 이용한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일정한 기간에 계약상으로 확정된 화폐액을 의미한다. 토지소유자의 자본은 경작지가 될 수도 있고 건축지, 광산, 어장, 삼림 등등이 될 수도 있다. 지대는 차지농업자가 임대한 기간 전체에 걸쳐 지불된다. 지대는 토지가 화폐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토지소유자의 자본은 토지와 화폐로 분리되기도 하고 일제가 되기도 한다. 토지와 일체가 된 자본은  '토지자본'이라고 표현한다. 차지농업가는 농지를 경작하고 생산물을 늘리며 끊임없이 자본을 투자한다. 하지만 자본가의 노력으로 토지의 가치가 점점 상승하여도 다시 차지계약이 갱신될 때에는 토지소유자의 지대가 증가할 뿐이다. 토지소유자는 토지를 판매할 뿐만 아니라 개량된 토지와 이전의 차지농업자가 토지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한 자본을 함께 판매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건물용 토지에서도 나타나는데 거의 모든 부동산은 소수의 대토지소유자에게 들어간다. 이것이 대토지소유자들을 중심으로 한 배제와 독점의 탐욕스러운 제도에 의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여기에서는 먼저 진정한 지대와 이자는 차이점이 있음에도 둘다 지대에 포함되어 판매된다는 것, 두 번째로 토지에 합쳐진 타인(차지농업자)의 자본이 결국 토지와 함께 토지소유자의 것이 되며, 이 이자가 지대를 계속 증대시킨다는 점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토지소유자가 차지농업자의 이윤을 자신의 이윤으로 탈바꿈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착취가 그치지 않고 농업노동자의 임금 착취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노동자 임금의 일부는 차지료의 구성부분을 이루어 토지소유자에게 지대로 들어간다. 토지소유자가 받는 지대는 임금노동자를 약탈하여 생긴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점이 변용되어 노동자의 임금이 낮아지면 토지의 가격이 상승한다는 주장으로 변화되어 착취와 약탈이 지속적으로 강화되었다. 임금노동자들은 끊임없이 일하고 생산하지만 가난을 벗어날 수 없으며, 토지소유가들, 즉 부르주아 지배계급은 나태하면서도 부를 축적한다.

<지대를 취급할 때 피해야 하는 3개의 주요한 오류>

(1) 모든 종류의 지대는 인간이 토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봉건주의적 토지소유, 소농민적 토지소유와 자본주의적 토지소유를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2) 모든 지대는 잉여가치이며 잉여노동의 생산물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서 지대는 항상 이윤의 초과분을 나타낸다. 노동자는 사회적 시간만큼 필요한 노동을 하고, 그 이외에 잉여노동을 수행한다. 필요노동은 사회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생산물로 판매된다. 그리고 지대는 잉여노동의 가치만큼 판매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대가 일반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3) 지대액은 지대수취자(토지소유자)의 행동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노동의 발전에 의해 결정된다. 토지소유자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 게다가 지대의 수준, 토지가치가 높아질수록 비농업인구도 증가한다. 생산방식의 변화로 인해 같은 일정한 면적을 경작할 때 필요한 가변자본은 점차적으로 감소하게 된다. 이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속성에 의한 것이다.
  잉여가치를 만드는 자는 노동자이고, 잉여가치와 잉여생산물의 발전에 기여하는 자는 자본가이며, 그것을 아무런 노력 없이 수확하는 자는 토지소유자이다. 토지소유자의 지위는 농산물의 시장이 확대되고 수요가 증가하면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지대의 특성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이러한 토지소유자의 지위가 특별한 것으로 보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