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항암 일기] 연재

[항암 일기] Prologue 1. 절망의 정신 지리

soru 2024. 2. 4.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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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가슴에 전에 없던 몽우리가 만져졌다. 
작은 공 같은 게 아니라 약간 주먹만 한 몽우리라, 
생리 기간에 가슴이 조금 커진 건가 싶어, 
며칠을 더 기다려 보았다. 
그래도 이런 건 아무래도 낯설어 신경이 쓰였다. 
어젯밤에는 자는 아이를 가만히 만져보다가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 
내가 이렇게 태평하게 병을 키우고 있어도 되는 걸까. 
깜짝 놀라서 어두운 침대에 누워 병원 두 곳에 예약을 걸었다. 
한 병원은 한 달 뒤, 또 한 병원은 두 달 뒤다. 
 
요즘은 유방암으로 사람이 죽지는 않는다..고 이때까지는 생각했다. 
다만 치료할 때 힘이 드는 정도일 것이다.라고. 
아이를 돌봐야 하는 유일한 사람이 아프다면 주변이 분명 불편해질 거였다. 
아이도 불안해질 것이다. 
내년에는 어린이집을 옮겨야 하는데, 
그곳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내 도움이 필요하다. 
 
뭐 이런 일상적인 생각들을 제외하면, 마음에 큰 동요는 없다. 
아직 결과가 나온 것도 아니고, 별 거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올 7월에 건강검진도 받았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악화될 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만 좀, 
내 눈빛이 반짝이는 걸 느꼈다. 
죽을 기회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요즘은 유방암으로 사람이 죽지는 않는다... 고. 
 
3년 전에 자궁에 혹이 생겼고 
2년 전에는 갑상선 저하증이 생겼다. 
여성에게 생기는 온갖 질병이 찾아오고 있다. 
여자의 신체는 너무나도 불편하고, 어딘가 잘못 설계되어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