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항암 일기] 연재

[항암 일기 ⑪] 의대 증원과 항암 환자

soru 2024. 4. 23.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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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 3회 차. 이번에는 용량이 어떻게 들어가는지 확인하지는 못했다. 

이번이 3회차라 다음 외래 때는 항암제 반응 평가 검사를 한다. 

반응 평가 검사로는 초음파, PET/CT, MRI 검사가 포함된다. 

경과를 확인하고 남은 선항암의 회차를 결정하기 위해서다. 

 

의대 증원 강제 시행으로 서울대 교수 전원이 사퇴를 한다는 기사가 났다. 

전공의 사퇴때와는 결이 다른 반응들이 나타난다. 

협상을 하기보다는 힘으로 찍어 누르는 데 더 익숙한 현 정부가 

이 위기를, 내 앞에 놓인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갈는지 걱정이 된다. 

의사들의 이야기도 들어봤지만, 결국 거대 양대 기득권의 싸움이다. 

진짜 카르텔의 싸움, 피해자는 국민. 

 

그러다보니 개인적인 연락도 꽤 많이 받았다. 

다양한 연락들 속에서 은근한 공격들도 함께 들어온다. 

 

"요즘 의사 파업 때문에.... 치료에 지장 없으세요?" 
"네 다행히도 저희 병원은 아직 괜찮아요."
"네 정말 다행이네요."

 

 

이 대화의 마지막 마침표는 날 위한 공격으로 보인다. 

원래 정치적 대화를 많이 했던 사람에게서 온 연락이었기 때문에 내가 오해를 한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의료수가제와 현 정부의 의도를 외면하고 

자신의 치료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태도임을 지적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마지막 마침표는 대화를 짧게 마무리하고 있다. 

그 마침표에는 현재 치료를 받고 있는 내가 이기적인 마음으로 현 문제를 외면하고 있음을 지적함과 동시에, 

무례함을 피하기 위한 마음을 함의하고 있는 것만 같다. 

현재 치료를 받고 있는 나는 의사가 자리를 버리지 않고 치료해 주기를 바란다. 

그것을 알고있음에도 한 환자의 의지와 생각을 사상적으로 치부하는 것이

상당히 상처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과거의 나는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이제는 짧은 대화와 간략한 마침표만으로도 사람의 생각을 예민하게 캐치할 수 있다. 

그때가 되자, 그간의 내 과실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이제 예민하고 날카롭고 의도를 안다. 

그들이 공격하려는 이유와 목적, 무의식을 이해한다. 

그들을 만나거나 연락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과 힘이 있다. 

 

우연히 켜둔 TV에서 장애학 연구자 로즈메리 갈런드 톰슨의 인터뷰가 나온다.

그의 인터뷰를 보면서 나의 정체성이 이전과는 다른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정체성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공감을 시작할 수 있는 첫걸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