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항암 일기] 연재

[항암 일기④] HER2 중성... 중성??

soru 2024. 3. 12.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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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 PET CT, MRI 검사를 받은 뒤 한 주가 지났다.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갈 때까지 어떤 정신으로 살았는지 모르겠다. 

나의 불안감을 키운 건 종양의 사이즈였던 것 같다.

그즈음엔 통증도 생겨서 전이가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삼중음성일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그래도 여전히 가장 좋지 않은 쪽으로 생각이 흘러들었다.

 

하지만 다행이도 원격 전이 없는 침윤성 유방암이었다.

겨드랑이 림프에 두 개의 덩어리가 있어 림프에 암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전이가 되지 않았고, 

다른 장기나 뼈에도 전이가 없었다. 

암 캐릭터가 중요했는데, 그 결과는 호르몬 수용체 음성, HER2  중성이다. 

중성??? 

중성이 나올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중성이란다. 

교수님은 재검사를 해서 다시 양성인지 중성인지를 감별해야 한다고 하셨다.

교수님 스스로도 확신을 할 수 없게 되자 불안한 기색을 띠며 검사 하나를 추천하셨다.

 

"안젤리나 졸리 검사라고 하는데..."

라면서 운을 띄우신 교수님은, 자신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검사라 하셨다. 

BRCA 1/2 검사(+/ -) (브라카 검사)라는 건 유전성 유방암의 유무를 사전에 미리 확인할 수 있는 검사다. 

유전자 변이로 인해서 DNA 손상이 발생하면 암이 발생하게 되는데, 주로 여성 질환으로 나타난다.

유전성 유방암이나 난소암의 발병률이 증가하게 되는 유전자 변이를 확인하는 것이다. 

유전성 유방암은 전체 유방암 환자 중 5~10%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미 2013년에 안젤리나 졸리의 사전 유방 절제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일단 나에게 검사를 권하는 건, 나의 검사 결과가 삼중음성으로 나올 수 있기 때문일 거라 추측했다. 

유전성 유방암인 경우 삼중음성 유방암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교수님은 그 상황에서도 에둘러서 침착하게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두 딸이 있다면서 이야기를 꺼내신 교수님은, 

이 아이들에게 유전성 유방암이 있다면 아무 말 않고 결혼을 시켜도 되겠냐... 면서 

자식을 위해 검사를 받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아들인데도 검사를 받아야 할까요..." 하고 묻는 나에게, 

"아들이면 괜찮지"라고 말씀하시면서도 검사를 권유하시는 건, 

나에게 약간의 헛웃음을 만들어 내는 말이었다.

그다지 핵심적인 검사가 아니라는 것, 딸을 시집보내기 위해 검사를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한다는 것,

검사를 권하기 이전에 꺼낼 만한 적절한 이야기들은 아니었다.

그래도 당신도 자식이 있는 사람이니 검사를 해보는 게 어떻냐는, 약간은 합리적이지 않은 이야기.

내 입장에서는 아들이어도 유방암에 걸릴 수 있고, 작은 확률로 췌장암이나 전립선암의 가능성도 있으니  

확인해서 나쁠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 에둘러 이야기 한 배경에는,

삼중음성의 가능성을 은연 중에 드러내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이 대화를 마치고 방 밖으로 나서니, 교수님과의 대화 안에 삼중음성의 가능성이 자리잡고 있다는 걸 느꼈다. 

병원 소파에 앉아 다시금 검색을 해보았다. 

의사들은 중성이라고 해도 결과치를 보면

양성인지 음성인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는 경험 있는 환자들의 이야기도 적혀있었다. 

이 모든 말을 확신할 수는 없지만 급격히 우울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나는 여러 여성 질환을 이미 앓고 있었기 때문에

남성 여성 호르몬 수용체가  모두 음성이라는 데에서 무척 당황했다. 

 

가족들은 전이가 없다는 데에서 무척 안도하고 기뻐하셨다.

하지만 가족들은 HER2 중성이라는 것의 의미를 아직 몰랐고, 아직 기뻐할 때가 아니라는 걸 

다시 구구절절이 설명해야 한다는 게 조금 피곤했다. 

이제 삼중음성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할 때였다.

High risk TNBC라고 하는 삼중음성 유방암에는 사용할 수 있는 독성항암제나 표적항암제가 없다. 

대신 사용할 수 있는 면역항암제가 있는데, 공격성 항암제가 아니어서 효과를 확인할 수 없다.... 

는 것이 기존에 내가 알고 있는 정보의 전부였다.

그런데 2024년 1월에 나온 기사, 그러니까 결과를 듣고 나온 당일 

'키트루다'의 임상효과가 유의미하다는 기사가 나왔다. 

 

서울대병원을 중심으로 면역관문억제제인 펨브로리주맙(pembrolizumab)에 대한 임상 연구가 있었고, 

사망률이 42% 감소했다는 결과가 알려진 것이다. 

키트루다(Keytruda)라고 하는 이 면역항암제는 아직 비급여 항목이기 때문에 

암보험이나 실비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과도한 비용부담이 발생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돈을 내야 살려주실 셈이냐... 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정신 차리고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했다. 

 

HER2 중성 결과를 받고 나서는 참 돌고 돌아 어렵게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