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폭력의 세기, 한나 아렌트, 부분.

soru 2010. 7. 19.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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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정치적 존재로 만드는 것은 행동능력이다.

철학적으로 말해서, 행동한다는 것은 탄생성natality이라는 조건에 대한 인간의 답변이다. 우리 모두는 탄생을 통해서 이 세상에 나오기 때문에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창조성이 갖는 고유 특성들 중의 어떤 것도 생명 과정에서 도출되는 비유로는 알맞게 표현되지 않는다. 낳는다는 것과 태어난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이 소멸이 아닌 것처럼 창조가 아니다. 말하자면 그것들은 단지 동일한 것의 상이한 국면,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붙잡혀 있는, 영원히 회귀하는 순환의 상이한 국면일 뿐이다. 폭력이나 권력은 자연적인 현상, 즉 생명과정의 발현이 아니다. 그것들은 인간사의 정치적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서 행동 능력,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는 능력에 의해서 보증되는 인간의 특성이다. (125-126)



만일 권력이 단순한 우리의 능력 we-can과 구별되는 것으로서, 우리의 의지와 동시에 우리의 능력 we-will-and-can과 어떠한 관계를 갖고 있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권력이 무능력해졌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 다시 말해서 우리가 갖고 있는 권력 전체가, 마침내 지금의 우리와 대립한다고 말할 수 있다."

모든 권력의 감소가 폭력의 공개적인 초대라는 것-권력을 쥐고 있지만 자신의 손에서 스르르 빠져나가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통치자들이든 피통치자들이든지 간에, 권력을 폭력으로 대체하려는 유혹에 저항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항상 깨닫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하다-을 알고 있으며, 모르고 있다면 알아야 한다. (131-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