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자본론 제5편 절대적 및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soru 2007. 11. 26.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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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장 절대적 및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적 노동

  생산적 노동자는 상품을 생산할 뿐만 아니라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자이다. 혹은 자본의 가치증식에 기여하는 노동자를 의미한다.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생산적 노동자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생산적 노동자는 노동자와 그의 노동 생산물의 관계를 내포하면서 노동자 스스로가 자본의 가치증식에 기여하는 수단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이다.
  생산적 노동이 개인에 의해 수행될 때는 개인이 생산적 노동자이고 그 한 노동자가 모든 기능을 한 몸에 겸비한다. (전면적 발전) 그러나 그러한 활동은 사회로부터 통제, 감독된다. 따라서 생산적 노동은 개인으로부터 집단으로 이동하고 결국 생산물은 집단적 노동자의 공동생산물로 등장한다. 따라서 개인이 생산적 노동자였을 때와 달리 집단적 노동자의 일부인 개인은 직접 노동 대상에 손을 댈 필요가 없다. 부속기능만을 수행하더라도 충분히 생산적 노동자가 된다. 이렇게 되면 생산적 노동자가 되는 것은 행운이 아니라 불운이다.

*노동의 형식적 종속과 실질적 종속

  매뉴팩처에서 노동자는 자본에 포섭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는 자본에 대항하고 불복종할 수 있었다. 노동자의 숙련이 생산과정에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이다. 이때의 종속을 노동의 형식적 종속(formal subsumption)이라고 한다. 그러나 기계제 대공업에 이르러서는 노동자의 숙련이 필요 없게 되어 자본의 독재에 순응할 수밖에 없게 된다. '진정한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에서 형식적 종속은 실질적 종속(real subsumption)으로 변한다.

*절대적 잉여가치와 상대적 잉여가치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을 위해서는 노동의 형식적 종속만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상대적 잉여가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진정한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이 어떠한 생산부문을 정복하자마자 실질적 종속으로 포획된다. 절대적 잉여가치와 상대적 잉여가치는 같다. 왜냐하면 절대적 잉여가치에 필요한 필요노동일을 필요노동시간으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절대적 잉여가치와 상대적 잉여가치의 '외관상 동일성'이 사라진다. ①노동생산성과 노동강도가 정해져 있을 때, 노동일의 절대적 연장에 의해 잉여가치를 증가시킬 수 있다. ②반대로 노동일이 정해져 있을 때, 노동생산성의 향상이나 노동강도의 강화에 의해 잉여가치를 증가시킬 수 있다. 
 
   잉여가치는 자연발생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노동생산성 또한 자연발생적이다. 그러나 인간이 노동을 통해 동물 상태에서 벗어나서 어느 정도 사회화되면 어떤 사람의 잉여노동이 다른 사람의 생존조건으로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렇게 사회적 생산력이 발전함에 따라 생산성이 발전하므로 자본관계의 토대는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생산성은 자연적 조건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외부적 자연조건은 경제적으로 두 개의 부류로 나뉜다. ①생활수단 형태의 자연의 부.(비옥한 토지, 물고기 많은 하천) ②노동수단형태의 부.(폭포, 항해가능한 하천, 산림, 금속, 석탄 등) ①의 경우에는 토지가 비옥할수록 잉여가치는 더욱 많아지고, 착취의 가능성도 더욱 높아진다. 좋은 자연적 환경은 인간에게 여가시간을 활용하고, 그 여가시간은 타인을 위한 잉여노동으로 지출될 수 있다. 여기에는 사회적, 외적 강제가 동원된다. 자본주의적 생산이 이 부분을 담당하지만 그 사실을 은폐한다. 오히려 자본가는 노동자의 노동의 보수를 모두 지급하며, 노동자 자신도 자본가와 같이 이윤을 얻는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노동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임금노동자가 되며, 자기 자신의 노예가 된다. 마르크스는 이런 주장을 펼치는 부르주아지의 지성이 엉터리라고 외친다.

제17장 노동력의 가격과 잉여가치의 양적 변동

  노동력의 가격과 잉여가치의 상대적 크기는 ①노동일의 외연적 길이 ②정상적인 노동강도 ③노동생산성, 이 세 가지 요인의 불변, 가변의 조합에 따라 결정된다. 아래 공식을 기억하면서 생각하면 보다 이해하기 편할 것이다.
노동력의 가치 [가변자본(노동) + 불변자본(노동생산성)] - 잉여가치 - 노동일(시간) = 상품의 가치

제1절 노동일의 길이와 노동 강도는 불변인데 노동생산성이 가변인 경우

(1)노동생산성이 어떻게 변화하든 노동일이 일정하면 언제나 동일한 양의 가치를 창조한다. 노동생산성의 변화로 상품의 양이 달라지더라도 12시간 1노동일에는 수량이 많아지거나 적어진 각각의 상품에 동일한 가치가 분배된다.
(2)노동생산성이 상승하면 임금재의 가치가 저하하므로 노동력의 가치가 저하되고, 반대로 잉여가치는 증가한다. 반대로 노동생상성이 하락하면 노동력의 가치가 높아지고 잉여가치는 감소한다. 노동력의 가치와 잉여가치가 동시에 증가하거나 감소할 수 없으므로 절대적 크기에는 변동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변동의 비율이 늘 같은 것은 아니다. 6원 = 4원(노동력의 가치) + 2원(잉여가치) 였다가, 노동생산성의 향상으로 6원 = 3원 + 3원이 되었다고 가정하다. 노동력의 가치는 4원→3원으로 25% 감소하지만, 잉여가치는 2원→3원으로 50%증가한다.
(3)잉여가치의 증가 또는 감소는 노동력 가치의 감소 또는 증가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그러므로 노동력의 가치와 잉여가치의 상대적 크기 변동은 노동력 가치의 절대적 크기의 변동 없이는 생길 수 없다. 따라서 잉여가치의 크기 변동은 노동생산력의 변동에 의해 생기는 노동력의 가치변동에 의해 결정된다.

제2절 노동일의 길이와 노동생산성은 불변인데 노동강도가 가변인 경우

(1)노동 강도가 높아지면 같은 시간 동안의 노동량이 증대하므로 같은 시간 내에 생산되는 생산물의 양이 많아진다. 노동생산력이 높아져도 생산물의 양이 많아지지만 이때는 노동력의 가치가 떨어진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노동 강도가 높아졌기 때문에 생산물의 개당 가치는 떨어지지 않는다.
(2)노동력의 가격과 잉여가치가 다음과 같이 동시에 증대할 수 있다.

새로 생산되는 가치

  노동력의 가치와 잉여가치는 동시에 증가한다는 것은 명백하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노동자와 자본가 쌍방에 이익을 준다는 주장으로 '테일러주의'가 등장한다. 즉 강화된 체제․관리를 이용해 노동을 강화하여 노동자의 임금을 올리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력의 가격 상승이 반드시 노동력의 가치 이상으로 상승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3)결국 이 또한 노동자에게 이익을 주지 않는다. 창조된 가치는 그 상품의 성질과는 관계 없이, 노동일의 길이나 강도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노동의 강도가 높아지면 일시적으로는 많은 가치를 만들어 내어 '특별 잉여가치'를 생산할 것이다. 그러나 높아진 새로운 강도는 다시 사회적 표준강도가 될 것이며 다시 일반화될 것이다. 그러면 노동력의 가치가 다시 하락할 것이다.

제3절 노동생산성과 노동강도는 불변인데 노동일의 길이가 가변인 경우

(1)노동일이 단축될 경우 : 노동생산성과 노동강도가 변하지 않으면서 노동일이 단축되면 노동력의 가치는 불변이지만 잉여가치는 작아진다. 따라서 자본가가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노동력의 가치를 감소해야 하므로 임금을 낮추어야만 한다. 현실적으로는 노동일이 단축되면 노동생산력과 노동강도의 상승이 함께 일어난다.
(2)노동일이 연장될 경우 : 이 경우는 반대로 잉여가치가 절대적․상대적으로 증대하지만 노동력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감소한다. 노동자가 더 많은 노동력을 지출하게 되기 때문에 임금이 상승하더라도 노동력의 가치를 전부 받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간의 수명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노동일의 재생에 필요한 조건은 충족될 수 없다. 오히려 다른 노동력으로 대체될 뿐이다.

제4절 노동의 지속시간, 생산성 및 강도가 동시에 변동하는 경우

(1)노동생산성이 감소하는 동시에 노동일이 연장되는 경우
토지의 비옥도가 감소하거나 기후불순 등으로 노동생산성이 저하되면 토지 생산물의 가격이 높아지고 노동력의 가치가 상승하여 잉여가치가 감소하기 때문에 자본가는 노동일을 연장하게 된다.
(2)노동의 강도와 생산성이 증가하는 동시에 노동일이 단축되는 경우
이 경우 노동강도와 생산력의 증대는 노동자가 자신의 생활수단을 생산하기 위한 시간을 단축한다. 만약 전체 노동일이 노동자가 자기 자신의 생활수단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같아진다면 잉여노동은 소멸할 것이지만, 그런 일은 자본주의적 생산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르주아 계급의 자유시간은 노동자 계급의 생활시간을 노동시간으로 바꿈으로써 생겨난다.

제18장 잉여가치율을 표시하는 여러 가지 공식

(1)  잉여가치   =     잉여가치    =  잉여노동
     가변자본      노동력의 가치     필요노동
(2)  잉여노동   =     잉여가치    =  잉여생산물
      노동일       생산물의 가치      총생산물
(3)  잉여가치   =     잉여노동    =  부불노동
   노동력의 가치      필요노동       지불노동
 
(1)공식은 개념적으로 올바른 것이다.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이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의식적으로는 완성하지 못한 채 잘못된 (2)공식을 내세운다. (2)공식은 잉여가치율이 아니라 노동자가 노동에 의해 새로 생산한 가치(가치생산물)를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서 분배하는 비율을 나타낸다. 이 공식으로는 자본에 의한 노동력 착취가 은폐되며 자본가와 노동자가 생산 가치를 분배하는 것 같은 환상을 심어준다. 현실에서는 노동력의 100%, 혹은 그 이상을 착취할 수 있다. (3)공식의 불불노동과 지불노동은 잉여노동과 필요노동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따라서 (1)=(2)=(3)과 같이 표현하는 것은 잘못이다. 자본가는 잉여노동의 기간에는 노동력을 무상으로 얻는다. 따라서 잉여노동은 부불노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자본가는 노동력의 가치를 지불하고 대신 살아있는 노동력 자체에 대한 처분권을 얻는다. 자본의 자기증식의 비밀은 노동력의 처분권에 있다.